[시가 말을 걸다] 유자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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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유자효 ‘나무’
  • 동명 스님
  • 승인 2022.10.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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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수백 년 세월을 흘려보낸 느티나무
수백 년 세월을 흘려보낸 느티나무

나무
_유자효

나무가 잘 늙으면
좋은 고목이 된다
마을을 지키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주기도 한다
좋은 재목이 되기도 한다
대목의 손에 다듬어져
집이 되어 생명을 지키는 나무
아무리 잘못 늙어도
나무는 도끼질 아래 장작으로 패어져
방을 따뜻하게 하는
아궁이 불길 속에 지펴지기도 한다
버릴 게 없다
나무는
마치 잘 늙은 사람이
버릴 게 없듯

(유자효 시집, <포옹>, 황금알 2022)

[감상]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인연으로 세상을 살게 되었느냐에 따라 나무의 생애도 가지가지입니다. 어떤 나무는 정원에 심어져 정원사의 관리를 받으며 살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바위틈에 뿌리를 뻗어 혹독한 환경 속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해가기도 합니다.

나무는 조용히 세상이 유지되는 데 큰 몫을 합니다. 산소를 뿜어냄으로써 공기를 정화시키고, 비가 오면 물을 품었다가 서서히 내뿜으로써 계곡을 만들기도 하고, 땅을 기름지게 함으로써 다른 생명체들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동물들이 쉬어가거가 기거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기도 하며, 죽어서는 사람들의 땔감이 되거나 목재가 되거나 적어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이 됩니다.

유자효 시인은 이 시에서 나무가 늙으면 다음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첫째, 나무가 잘 늙으면 좋은 고목이 된답니다.
둘째, 역시 나무가 잘 늙으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기도 하고, 그 나무는 어김없이 넓은 그늘을 제공합니다.
셋째, 나무가 잘 늙으면 좋은 재목이 되기도 합니다. 그 경우 잘 다듬어져 집이 되기도 하고 가구가 되기도 합니다.
넷째, 잘못 늙었다 해도 땔감은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네 가지 정도를 말했지만, 두어 가지 더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아무 쓸모 없이 늙어버린 나무도 덩굴식물들이 타고 오를 수 있는 지주대가 되어줍니다.
여섯째, 아무 쓸모 없이 늙어버린 나무도 수많은 곤충이나 미생물의 안식처가 됩니다.
일곱째, 아무 쓸모 없이 늙어서 죽은 나무도 이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이 됩니다.

잘 늙은 사람은 잘 늙은 나무에 비해 그 가짓수는 적을지 모르지만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째, 그는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로 후배들로 하여금 인생을 잘살 수 있도록 인도해줍니다.
둘째, 그는 중요한 순간에 바른 결정을 해주기도 합니다.
셋째, 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회향하라’는 가르침을 전범(典範)으로 보여줍니다.
넷째, 그는 젊은이들이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다섯째, 그는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에 비해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나무처럼 우리도, ‘늙은 사람이 버릴 게 없듯’,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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