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과 6년간의 인연
상태바
[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과 6년간의 인연
  • 준한 스님
  • 승인 2022.09.28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의 팔만대장경이 건넨 무언의 설법

2007년 3월, 청소 당번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에 입방했다. 전국 본말사에서 모인 해인사 해병대(?) 지원 스님은 총 33명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모두 뒤로하고, 입산 순서대로 형과 아우가 되는 승가 공동체다. ‘해병대 잡는 해인사’라는 악명을 가진 소위 사관학교 스타일의 승가대학이 바로 해인사 강원이다. 

덕숭총림 수덕사에서 행자 생활한 필자는 방장스님의 낚싯줄에 걸려, 해인사로 향하는 걸망을 쌌다. “해인사 가서 공부해야 중의 기본 자질을 갖출 수 있다”라는 말씀에 해인사 입방 결심을 한 것이다.

입방한 지 일주일째 될 무렵. 매주 일요일 도량 대청소를 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보호하는 장경판전 앞에 전 대중이 집합했다. 인원 파악 후 각자 청소구역이 배정됐는데, 우리 도반 33명 중 필자가 팔만대장경 청소 당번이 된 것이다.

‘Oh my Buddha! 팔만대장경이 내 청소구역이 되다니!’ 

매주 일요일 아침, 장경판전이 필자의 청소 놀이터가 된 것이다. 유유자적 판전을 누비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청소’ 시간을 가지던 중, 한쪽 구석에 앉아 빗자루를 내려놓고 해인사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쉬고 있었다. 뒤에서 갑자기 장주스님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이 들려왔다. 수십 년간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호위무사 대장 노스님이셨다.

“네 이놈! 청소도 안 하고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거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뛰어오시더니 마당 빗자루로 사정없이 내 등짝을 후려치셨다. “잘못했습니다. 스님!” 하며 나는 도망치고, 노스님은 빗자루를 들고 내 등 뒤를 술래잡기하듯 쫓아오셨다.

그렇게 해인사 팔만대장경 천년의 역사 속에 한 줄을 더 이어 쓰게 됐고, “부지런히 청소 수행을 하라!”는 장주스님의 일갈이 마음 병에 꽂힌 장침이 돼 아직도 필자의 삶에 선지식으로 살아 있다.

 

2008년 3월, 소방 훈련

매일 아침 6시 강원 1, 2년 차 스님들 50여 명이 함께 사용하는 관음전 대방에서는 전 대중이 모두 모여 발우공양을 한다. 사중의 모든 스님이 같은 시간에 한방에 모여 전통식으로 식사를 하는 의식이다. 먹는 것도 수행으로 여겨왔던 부처님 가르침을 잇는 수행 전통이다. 

발우공양이 끝나기 직전, 오늘은 주지스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

“며칠 전, 대한민국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나 내일 중 소방 훈련이 있을 예정이니 대중스님들은 인지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해인사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사부대중이 모여 소방 훈련 연습을 한다. 매뉴얼에 따라 각자 위치와 역할이 분담되고, 일사불란하게 화재에 대처하는 연습이다. 천년의 역사를 견뎌온 찬란한 보물인데 어찌 우리 후손들이 가볍게 여길 수 있으랴.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