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괄허취여 ‘바람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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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괄허취여 ‘바람과 달’
  • 동명 스님
  • 승인 2022.09.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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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바람과 달(風月)
_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바위샘은 밝은 달을 맞이하고(巖泉迎白月)
뜰앞의 잣나무는 맑은 바람 끌어오네(庭柏引淸風)
몸은 소리와 모양 속에 앉아 있어도(身是坐聲色)
마음은 소리와 모양을 떠났어라(心非聲色中)

[감상]
바위샘이 밝은 달을 맞이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뭐꼬?

뜰앞의 잣나무가 맑은 바람을 끌어옵니다.
이 뭐꼬?

무엇을 보든 화두를 놓지 않는 선사의 경지는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에 오롯이 나타나 있습니다.

“몸은 소리와 모양 속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소리와 모양을 떠났어라”

『금강경』에 다음과 같은 사구게가 있습니다.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현실 속에서 우리는 소리와 모양 속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상은 그럴진대, 거기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경지를 괄허 선사는 참 멋지게 읊었습니다. 이렇게 본성대로 살아도 자유로운 경지가 곧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경지일 것입니다. 평상심은 때로 지극히 낭만적이기도 합니다.

산승은 물 속의 달이 너무 좋아서(山僧偏愛水中月)
달과 함께 찬 샘물을 두레박으로 길었네(和月寒泉納小缾)
돌아와 동이 안에 쏟아 붓고는(歸到石龕方瀉出)
아무리 물을 휘저어봐도 달은 간데없네(盡情攪水月無形)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차가운 샘에서 길어올린 달(寒泉汲月)」

오늘 밤에는 초승달이 떠오를 것입니다. 보름달만 건져 올리라는 법이 없지요. 초승달을 건지면 머리에 꽂는 비녀로 쓸 수 있을까요? 제게는 비녀를 꽂을 머리가 없습니다. 초승달을 건져 올려서 펜으로 써보겠습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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