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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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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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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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를 기록하다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저작·역자

민병래

정가 20,000원
출간일 2022-09-02 분야 인문
책정보

ISBN: 979-11-90136-84-6 (03340)

판형: 135*200 mm

쪽수: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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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한국에 갇혀 있는 사람들 비전향 장기수들의 마지막 호소를 담다. 이것은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과거엔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끝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몇 년이 더 지나면 이 문제는 ‘자연적으로’ 소멸할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두 죽어 없어지면서.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더 늦기 전에,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비전향 장기수. 붙잡힌 옛 인민군 포로나 남파 간첩들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고 북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이들. 감옥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들의 존재는 1980년대 말부터 알려지고, 1990년대 인권과 남북 교류 및 화해를 위한 송환 운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그 결과 2000년 9월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송환되었지만, 그때 송환되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왜 그들은 송환되지 못했는가? 왜 지금까지도 송환을 간절히 바라는가? 북에 남아 있는 친지도 없을 것이고, 산 세월도 이제는 남쪽이 훨씬 더 길 텐데 돌아가려는 강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어떤 심정으로 전향을 거부하고, 남한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가? 이 책은 그들의 처연한 삶을 담고 있다.

이제 살아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아홉 명, 그들도 80~90세이니 당장 1년 뒤도, 한 달 뒤도 장담할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2년간 준비하는 동안에도 네 명이 숨을 거두었다. 이 책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아마도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민병래

1960년 강원 출생.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이다. 1998년부터 한글을 모르는 노인과 이주민을 상대로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다. 2016년 촛불 광장에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2020년 우연히 송환되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들을 찾아가 삶의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묶은 이 책이 더 늦기 전에 2차 송환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서로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민병래의 사수만보』가 있다.

목차 위로

• 서문

김영식 | 내일 죽는다 해도 통일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양희철 | 삼백 마리의 생쥐를 잡아먹고 지켜 낸 사상의 자유

박종린 | 두 개의 나라, 두 번의 무기징역, 하나의 조국

양원진 | 신념을 지키고 정치적 삶을 완성하렵니다

박순자 | 이름이 셋인 여전사, 그녀의 마지막 소원 두 가지

김교영 | 지리산의 빨치산에서 길음동의 여관 주인으로

강담 | 고마운 아내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한 소원

박희성 |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된 건 매한가지인데…

이광근 | 암호문과 무전기 대신 미싱을 잡다

조상이 | 열아홉에 남으로 내려온 소년, 일흔 노인이 되었습니다

오기태 |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 비전향 장기수, 그들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

― 추천의 글: “그 사람은 당신네 나라 백성이 아닙니까?” _ 임헌영

― 해제1: 국가 폭력과 0.75평의 ‘광장’, 그리고 주체적 삶의 ‘틀’ _ 정찬대

― 해제2: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시간이 없다 _ 권오헌

상세소개 위로

“비전향 장기수가 아직도 있어?”

과거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지금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2000년 9월 2일 이루어진 장기수 송환이 워낙 떠들썩했던지라, 송환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이 그때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당시의 송환에는 조건이 있었다. 바로 ‘비전향자’여야 한다는 것.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사상전향 제도를 두며,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투옥된 이들에게 북한을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버리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 이를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만 송환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전향이라는 게 끔찍한 고문을 동반하며 강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강제로 전향시켰다는 걸 인정치 않고, 전향이라고 판정된 사람은 송환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1차 송환이 끝난 이후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강제전향 무효선언을 하고 2차 송환을 촉구했다. 강제전향 무효선언을 한 이들과 1차 송환에서 신고 누락된 이들 등을 포함해 모두 33명이, 2차 송환 신청서에 이름을 올렸다(나중에 추가로 13명이 더 신청해 46명이 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강제전향은 위헌적인 사상전향제도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법 행동이기에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는 판정을 내려, 송환을 희망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통일부에서도 2005년경부터는 ‘2차 송환 희망자’를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희망자’로 정식 명명하며, 강제전향당한 이들도 비전향 장기수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2차 송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송환 이야기는 쑥 들어갔고, 문재인 정부 때도 2차 송환은 공식 논의되지 않았다. 당연히 앞으로도 전망은 어둡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작은 불씨라도 될 수 있기를 저자는 간절히 소망한다.

돌아가지 못한 11인의 사연

저자 민병래는 2020년 봄에 우연히 미송환된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생존해 있는 장기수 15명 중 건강이 안 좋아 인터뷰가 불가능한 4명을 빼고 모두 11명을 만나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심정과 미래의 소망을 글로 적어 이 책에 담았다.

김영식(1933년생), 양희철(1934년생), 박종린(1933년생, 2021년 사망), 양원진(1929년생), 박순자(1931년생), 김교영(1927년생, 2021년 사망), 강담(1933년생, 2020년 사망), 박희성(1935년생), 이광근(1945년생), 조상이(1950년생), 오기태(1932년생, 2020년 사망).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은 분단과 냉전의 모순을 온몸으로 보여 준다.

그들은 대체로 청소년기에 해방을 맞았고, 전쟁이 일어나자 조국을 지키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군에 들어가 전쟁터에서 싸웠다. 정전 후 사회에서 재건을 위해 힘쓰다, ‘통일사업’을 해 보겠냐는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나섰다. 그러다 남쪽에서 체포되어 징역을 살았다. 0.75평의 독방에 갇혀 전향을 강요하는 고문도 당했다. 그런 수십 년의 옥살이 뒤에도 감시와 차별과 주거 제한은 이어졌다. 그렇게 다시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 몸은 쇠약하고 기억도 흐릿하다. 마지막 소원은 고향과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 그러나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소외된 존재를 위하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는 누구일까? 순위를 매길 일은 아니지만, 비전향 장기수만큼 소외된 이들도 없지 않을까? 다른 사회적 약자들도 여러 고난을 겪긴 하지만, 적어도 문제가 인식은 되고 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는 지금 그 존재 자체가 망각되었다. 다른 사회 이슈들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기대할 수 있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속절없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니 남은 시간이 줄어들 뿐이다. 게다가 보통 안타까운 사정을 겪는 이들이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달리, 많은 한국인들은 장기수들을 ‘간첩’이나 ‘빨갱이’로 취급하며 적대감을 표출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끌어안지도 않고, 그렇다고 돌려보내지도 않으면 사실상 이곳에 가두어 놓고 있다. 이제는 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 없는 송환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책속으로 위로

김영식이 2000년 11월 18일에 양심선언을 한 것은 2000년 9월 2일의 1차 송환에서 탈락한 게 중요한 계기였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합의했고 이에 따라 그해 9월 2일 63명이 1차로 송환되었다. 그런데 당시 실무를 맡았던 통일부는 송환 대상의 기준으로 ‘비전향’을 내세웠다. 전향하지 않은 이들만 북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장기수와 인권단체, 통일운동 관련 단체가 당시의 ‘전향’이란, 고문에 의한 강제전향이라고 항변하며 “희망자 전원 송환”을 요구했지만 통일부는 요지부동이었다. -23쪽

1972년 유신체제가 만들어지고 반공을 국시로 이데올로기 전쟁에 나선 박정희 정권은 감옥 안의 장기수를 ‘방치’할 수 없었다. 더더욱 한국전쟁 이후 20년 정도 징역 선고를 받은 비전향 장기수의 출소 시점이 임박했던 터라 정권은 체계적인 전향 공작 계획을 세웠다. 당시 장기수가 있는 감옥에는 중앙정보부는 물론 보안사, 치안본부 대공국의 담당관이 배정되어 있었다. 중앙정보부가 ‘조정권’을 갖고 대공심리전국이 주도하여 광주, 전주, 대전, 대구 등 교도소별로 전향공작반을 만들었다. (…) 이 과정을 거치며 많은 장기수가 강제전향을 당했다. 전향서에 도장은 찍혔으되, 지독한 고문으로 강요된 것이었기에 본인의 의지가 결코 아니었다. -48쪽

“저는 34년간 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저 북측의 지시를 전달하고 교도소 내에서 인권투쟁을 벌인 정도였습니다. 내게 내려졌던 징역 34년은 분단이 안긴 과도한 형벌이고, 양심과 사상을 옥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죽음과 함께 이런 야만의 시대가 끝나길 소망해 봅니다. 제 마음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코리아’라는 하나의 조국이 있지요. 어서 하나의 나라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90쪽

“그래서 다음 날 퇴근해서 왔을 때 내가 앉혀 놓고 그랬어. 나는 괜찮으니 당신 북으로 가라, 고향 아니냐? 당신 맘 다 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는 거야. 60년간 기다렸을 북쪽 아내에게 ‘여보, 나 돌아왔어. 고생 많았지…’ 그 말 한마디만은 하고 싶다는데 그 모습이 짠했어요. 사실 난 속으로 서운했지. 펄쩍 뛰지는 않아도 ‘당신 두고내가 어딜 가냐’ 그런 소리 듣고 싶었는데 그다음 날부터 송환서류 낸다고 들떠서 움직이는 모습 보니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더라구. 그때는 이 양반이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양반을 여기 두고 떠나는 셈이 되었네….” -191~192쪽.

박희성은 그렇게 마음먹고 적십자사 홈페이지에서 먼저 신청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치면 올바른 입력이 안 되었다고 계속 접수가 거부되었다. 몇 날을 씨름하다가 결국 현장에 가서 접수키로 한 것이다.

“할아버지, 신청서에 헤어지게 된 경위를 안 쓰셨네요.” 박희성이 서류를 내밀자 적십자사 직원은 친절하게 빈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난 북에서 임무 받고 내려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헤어졌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담당자는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과 함께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박희성은 적십자사 직원의 되물음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북에서 통일사업 하려고 내려왔다가 잡힌 사람이라고요.” 박희성이 답하자, 담당 직원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해당이 안 될 것 같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희성은 함께 온 김영식과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된 건 매한가지이니 상봉 신청을 받아 줘야지요. 신청도 안 받아 주면 말이 됩니까?”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박희성이 다시 빈칸을 채워 제출하니 이번엔 주민등록번호가 문제였다. 담당 직원은 주민등록번호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접수가 안 된다고 나무라듯 얘기했다.

―199~200쪽.

“저는 부탁드립니다. 적대를 청산하는 큰 뜻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2차 송환을 간절히 바라는 어느덧 구순을 넘나드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둘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도 강담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정덕 선생을 비롯 여러 동지들이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올해 구십 살인 저도 오늘,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2차 송환을 바라는 우리들을 보내주는 일은 평화를 위한 중요한 걸음입니다. 6·15선언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미국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님께서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조차 늦추면 안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

오기태 선생은 2020년 12월 4일 필자에게 생애를 들려주었다. 그날 힘주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올릴 것이라며, 그 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청원서를 올렸는데도 2021년까지 송환이 안 되면 연변을 통해 온성으로 가서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는 구술 3일 후인 2020년 12월 7일 새벽 3시 56분에 돌아가셨다.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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