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여기 _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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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 _ 클로드 모네
  • 보일 스님
  • 승인 2022.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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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

나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올까. 어떤 이는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돈이나 권력 혹은 명성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맺음하는지는 인류의 역사가 잘 설명해 준다. 아마도 진정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과거의 전통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데 역량을 낭비하거나 혹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걱정, 근심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순간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몰입하려는 시도가 의지와 노력이다. 그래서일까. 불교 수행자들의 수행은 전통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화두를 들든 호흡에 집중하든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이다. 

매 순간 오롯이 지금, 이 순간과 이 자리에 몰입했을 때 비로소 나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어쩌면 늘 반복되는 수행,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 순간을 놓치기 때문에 세상의 경이로움과 마주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빛의 화가’의 탄생과 인상주의

여기 수행자와도 같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다 간 남자가 있다. 바로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이다. 삶의 매 순간을 포착하며 치열하게 살다 간 이 남자는 산업혁명과 대혁명의 기운이 유럽을 휩쓸 무렵,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네는 어릴 적부터 예술가를 꿈꾸면서 자란다. 

어린 모네는 학교에서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캐리커처를 능숙하게 그렸는데, 순식간에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청년이 된 모네가 파리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화가들은 이전 세대 거장들의 화풍을 모방하는 데 그칠 뿐 창의적인 작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모네가 또래의 젊은 신인 화가들과 교류하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 와중에 모네는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전쟁(1861)에 참전했는데 장티푸스에 걸려 전역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그림이라고 하면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 정교한 명암법을 바탕으로 한 역사화, 종교화가 대세였다. 즉 성서와 역사나 신화 속 인물을 주제로 한 아카데미즘이 주류로 인정받고 선호됐다. 

모네의 눈에 비친 당시 화풍은 창의성 없는 진부한 반복과 복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네는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상상력과 시도를 이어간다. 모네는 집 밖의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다. 모네는 ‘빛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야외의 광선 묘사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다. 

급기야 사물 본래의 색채가 아닌 눈에 비치는 대로 그려내는 기법으로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낸다. 모네를 비롯해 르누아르, 피사로 등 회화의 새로운 기법을 고민하던 이들은 19세기 당시 프랑스 주류 미술을 대표하는 살롱전에 번번이 출품을 거절당하자, 그들만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무시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했고, 자신들을 ‘인상주의’로 부르기 시작한다. 자연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는 그들의 창의적 도전은 결국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사조를 열었고, 그들에 의해 예술은 다시 진화하고 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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