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종류의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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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종류의 쾌락
  • 현안 스님
  • 승인 2022.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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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51)]
출처 셔터스톡

우리는 늘 쾌락, 즉 좋은 기분과 즐거움을 찾습니다.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무의식적으로 쾌락을 좇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쾌락이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쾌락은 감각적인 쾌락입니다. 우리에겐 이런 감각적인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여섯 가지의 감각 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때 미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코로 좋은 향기를 맡거나, 귀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게 감각적인 쾌락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기 선호하는 감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소리에 매우 민감한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걸 매우 좋아했습니다. 뛰어난 음악을 들으면서 오는 쾌락이 항상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출가 전 가장 좋아했던 취미도 음악을 들으면서 추던 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쾌락은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에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쾌락 중 감각적인 것 외에 또 뭐가 있을까요? 바로 영적인 쾌락입니다. 이런 걸 불교에서는 안락이라고 부릅니다. 감각 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서 이런 쾌락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쾌락은 감각적인 것보다도 훨씬 더 즐겁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명상이나 다른 영적 수행을 해봤다면 이게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쾌락인 이 안락보다도 심지어 더 즐겁고 좋은 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종류의 쾌락입니다. 그것은 바로 열반의 안락입니다. 영화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힌두교나 그밖에 다른 종교에서 일컫는 열반은 사실 우리가 불교에서 말하는 그 열반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 천주교, 요가, 인디언과 같은 비불자들의 안락은 여전히 우리가 만들어내는 두 번째 쾌락의 범위에 속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란 우리가 만들어내는 안락과 다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명상 기술이 좀 있다면, 명상으로 삼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안락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두 번째 종류의 쾌락이며, 그런 안락은 여러분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출처 셔터스톡

예를 들어 여러분이 우울합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사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갑니다. 상담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여러분을 도와주려고 할 겁니다. 제각기 자기만의 의견과 생각들을 제시하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전을 내놓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명상을 해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보통 여러분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기분이 안 좋아지도록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으로 공격이 가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몸과 신경체계를 통해서도 공격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관절이든 신체의 다른 부위이든 공격이 들어오면 보통 여러분은 통증을 경험합니다. 그런 게 공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에서 겪는 통증이 아니라 어딘가 계속 통증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걸 고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아야 하는 겁니다. 뭔가를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우울할 때, 뇌를 통해서 공격을 받는 겁니다. ‘기분이 안 좋아’라는 한 생각이 심어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수많은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든 삼매에 들어가면, 감각 기관을 넘어서 일시적으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서 명상해야 합니다. 명상은 우울로부터의 탈출구와 같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질병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질병도 감각 기관들을 통해서 통증으로 경험하는 겁니다. 안 그런가요? 그런데 여러분이 명상해서 삼매에 들어가면, 감각 기관을 넘어서 위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삼매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감각 기관들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통증이 멈추고, 쾌락을 경험합니다.

출처 셔터스톡

결가부좌든 반가부좌든, 절 수행이든, 단식이든 여러분이 아프고 괴로운 것을 견디면서 수련하면 그런 일이 문득 생깁니다. ‘더는 못 참아, 안 되겠어’, ‘이젠 더는 못 참겠어’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생깁니다. 더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게 삼매에 들어간 때입니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엄청나게 좋고 환희롭습니다. 통증이 멈추고, 가벼워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명상을 가르칠 때 여러분은 이 세 종류의 쾌락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거나 향기로운 차를 마십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종류인 감각적인 쾌락입니다. 그리고 법당에 앉아서 아픔을 참아가면서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다가 삼매에 들어갑니다. 그런 게 두 번째 쾌락인 안락입니다. 세 번째 것은 좀 더 오래 걸립니다. 세 번째 쾌락은 아상의 부재, 즉 열반입니다. 가장 높은 형태의 즐거움은 자아가 없는 쾌락입니다. 그래서 사실 여러분이 불교적 명상을 배운다면 궁극적으로 이 세 번째 종류의 쾌락에 도달해야 하는 겁니다.

첫 번째 쾌락은 아무리 가장 높고 좋은 것이라도 두 번째인 안락만 못합니다. 불교 문헌엔 이런 내용이 아주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쾌락인 열반의 즐거움은 그런 안락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건 불교적 쾌락이 아닙니다. 인간의 쾌락입니다. 이 세 번째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반드시 불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 번째인 궁극적인 쾌락은 어떤 부작용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명상하길 원한다면 이 궁극적인 즐거움에 도달해보고 싶지 않나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바른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그 궁극적인 즐거움에 도달한 사람만이 여러분에게 그런 기반을 세워줄 수 있습니다.

참고: 영화 선사의 법문 ‘천상에 대한 불교의 견해’(2015년 10월 17일)

 

현안賢安 스님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미국에서 명상을 지도해왔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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