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변산 수성당과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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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변산 수성당과 내소사
  • 노승대
  • 승인 2022.06.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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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 왔으니 대표적 문화유산인 수성당과 내소사를 안 들를 수 없다. 수성당은 원삼국시대부터 바다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던 곳이다. 오래된 만큼 여러 가지 전설도 따라붙었다. 처음 혼자 답사올 때만 해도 길 표시도 없고 외딴곳이었는데 이제는 입구에 많은 건물과 주차장까지 번듯하게 들어섰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어찌 옛 모습만 찾을 수 있으랴.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미는 여덟 딸을 낳아 7명은 칠산 앞바다 일곱 섬을 다스리게 하고 자신은 막내딸과 함께 죽막동 높은 절벽 아래 여울골에서 바다를 지킨다. 사람들은 개양할미를 바다의 신인 수성(水聖)이라 부르며 풍어와 바닷길의 안전을 빌었다. 이곳 이름이 죽막동이니 3m가 넘는 시눗대가 집단적으로 자생해서 임진왜란 때는 화살을 만들어 군대에 보급했고 그로 인해 죽막동(竹幕洞)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나무로 장막을 친 동네라는 뜻이다. 전에는 시눗대 사이 좁은 길을 해치고 바다에 내려가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제 너무 길을 넓혀 놓아 그 재미가 반감됐다. 좀 아쉽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 혜구 두타 스님이 소래사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인조 11년(1633)에 중건했으며 7년 뒤에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소사를 찾는 사람이 제일 명품으로 치는 장소는 울울창창 전나무 숲길이다.

 

변산반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만들어 놓은 마실길은 서해를 바라보며 걷다가 이러한 시눗대 터널도 만날 수 있다. 목재데크를 깔지 않아 더욱 정겹다.

 

구암리 고인돌군이다. 바위가 9개라서 구암리(九岩里)라 불렀지만 조사결과 고인돌이었다. 동네 집 곁에 있어 정겨웠는데 정비 후에는 오히려 썰렁하다.

 

수성당 옆 누석단이다. 우리 전통의 돌탑으로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에 많이 분포돼 있다. 초를 켤 수 있게 단장을 했다. 전통신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개양할미를 모시고 있는 수성당이다. 딸 8명을 합쳐 9명이었기에 구랑사(九娘祠)라고도 불렀다. 1801년에 세워진 건물이 있었으나 1996년 신축했다.

 

수성당 내부에는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다. 개양할미와 딸들, 산신, 용신, 쇠로 된 말을 타고 서해를 지키는 장수도 모시고 있다. 관리자가 있어 깨끗하다.

 

내소사 입구의 할아버지 당산이다. 예전에는 액막이 장승도 있었으나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스님들과 동네 사람들이 정초에 함께 제사를 모셨었다.

 

절 안에 있는 할머니당산이다. 최남선의 <심춘순례>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큰 새끼줄을 감는 것은 같다. 2009년 복원됐으나 코로나로 중단된 상태다.

 

설선당과 생활공간인 요사가 같이 붙어있는 특이한 구조다. 요사에는 공간을 늘리기 위해 눈썹지붕을 붙여 놓았다. 마당에 우물이 있는 ‘ㅁ’자 양식이다.

 

설선당과 요사를 연결하는 건물 툇마루 위에 걸린 내소사 현판이다. 한석봉의 필체를 이은 작품이나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필력이 있음이 느껴진다.

 

설선당의 부엌으로 대중들을 위해 밥을 짓는 공간이다. 이층으로 만들어 부뚜막공간을 따로 분리했다. 밥을 풀 때 불티나 재가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큰 무쇠솥이다. 저 정도 크기면 200~300명 밥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삽으로 밥을 퍼야 한다. 왼쪽에 있는 것은 국수틀이다.

 

봉래루 누각 밑을 통과해 대웅보전 마당으로 올라설 수 있다. 자연히 머리를 낮춰 공손한 자세를 갖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큰 절은 대개 같은 양식이다.

 

새가 날개를 펼친 듯 날렵한 자태의 대웅보전이다. 임진왜란에 불타 인조 11년(1633)에 중건했다. 대웅보전 현판은 누가 보아도 원교 이광사 솜씨다.

 

법당 서쪽, 자연석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 얼마나 됐을까? 400년 가까운 세월, 수없이 갈라졌지만 만져보면 부드럽고 따듯하다. 모진 풍파를 이겼네.

 

대웅보전 충량의 용은 눈을 부릅뜬 채 물고기를 힘차게 물었다. 법당을 화재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물고기를 물었으니 물에 사는 수룡이네.

 

법당 천장에는 연꽃줄기와 물고기도 나타났다. 임진왜란 후기의 법당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호남지역 사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단청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누가 문을 여는 통에 새는 그림을 미처 그리지 못하고 날아갔다. 어딜까?

 

고려시대 동종이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 청림사에서 조성한 종으로 1850년 땅속에서 출토되어 내소사로 옮겨왔다. 대나무모양 음관이 뚜렷하다.

 

해안 스님(1901~1974)의 비와 승탑. 일주일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아 많은 사람을 교화했다. 스님의 뜻에 따라 해안 범부(凡夫)의 비라 새겼다.

 

내소사의 명물 전나무 숲길. 오대산 월정사 숲길과 함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주말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방문해서 호젓하지 않은 게 흠이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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