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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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부처님 오신 날
  • 현안 스님
  • 승인 2022.05.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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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42)]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친인 마야부인은 출산할 때가 다 되어서, 친정인 이웃나라 궁전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야부인은 친정에 도착하기 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상의 용들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켜드리기 위해서 감로수를 뿜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에 행하는 욕불(浴佛) 의식의 유래입니다.

이 욕불 의식은 우리 스스로의 탐하는 마음, 화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씻어내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일은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욕불의식을 하는 동안 씻어내는 때는 아기 부처님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씻어내는 것입니다. 아기 부처님은 우리 자신의 불성을 뜻합니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우리는 모두 타고난 불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불성은 청정합니다. 우리 마음이 괴로운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이 탐하고, 화나고,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모든 불교의 수행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우리 스스로의 때를 씻어내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은 우리 자신의 때를 씻어서 청정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타고난 불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그렇게 하려면 삼독(三毒]이 존재하는 곳을 식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다음 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자신의 탐하는 마음, 화나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보아야만 합니다. 다른 이의 탐진치를 보면 안 됩니다. 이건 우리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불교 공부와 수행을 하다 보면, 특히 삼매의 힘이 개발된 이들은 이런 실수를 흔히 저지릅니다. 수행하면 그 선정의 힘과 지혜로 다른 사람의 문제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의 수행은 다른 이의 잘못이나 성격 결함을 보는 게 아닙니다. 그건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가 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갖고 있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러분을 존경해주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혼란입니다. 그런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보지 마십시오. 그냥 조용히 하다가 자리를 뜨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냥 그들이 자신의 괴로움이 몰두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여러분이 그 괴로움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우린 자신의 탐진치를 식별하는 데만 집중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걸 닦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만 닦으십시오.

출처 셔터스톡

그렇다면 우린 무엇으로 탐락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매우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탐욕스러운 걸 인지할 때마다 그걸 줄여야 합니다. 탐욕스러운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우리에게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해야 합니다. 욕정을 줄이고 스스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가 났음을 알아차릴 땐 어떻게 할까요? 함께 있으면 감당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무얼합니까? 그런 이를 매일 만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 너무 사악해서 견딜 수 없을 땐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앞서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화가 났다면 그건 여러분이 화가 날 지경으로 다른 이의 허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긴대로 할 수 있도록 그냥 두십시오. 여러분은 어째서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만큼, 그 사람의 잘못을 보고 있는 건가요? 물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겐 참기 어려운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습기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악한 면과 아픔을 보면서, 계속 그 사람을 탓합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린 참고 참다가 흥분합니다. 그리고 멈추질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우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제발 돌아오지 말라고 말해도 계속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린 피하고 싶은데, 자꾸 와서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싫고 괴로워서 그런 사람을 피하고 싶고, 차단하고 싶은 경험이 있나요?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면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창피함을 느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화내면서 그런 걸 창피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심지어 더 창피해야 합니다.

무엇을 창피하게 여겨야 할까요?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서 창피함을 느껴야 합니다. 첫째로 다른 이의 잘못을 계속 보는 점에 창피해야 합니다. 사실 우린 마음 깊숙이 있는 이런 유혹을 견디지 못합니다. 우린 다른 이의 잘못을 보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우린 그렇게 하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다른 이의 잘못을 보는 걸 너무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우린 스스로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걸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싶어 하는 그런 미세한 욕구를 창피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이의 잘못을 보면 우린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끼고, 자신이 옳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그런 걸 매우 좋아합니다. 그걸 창피하게 여기십시오. 우린 모두 그런 습기를 갖고 있지만, 아무도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린 감히 우리의 그런 면을 직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창피하게 여겨야 할 두 번째는 자비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우린 정말로 자비가 부족하고, 수행할 줄 모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치가 떨리게 싫어하고 미워한다면, 우린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에게 자비가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린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보질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만 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위대함만 보고, 상대의 고통은 보질 못합니다. 그들의 괴로움을 보는 건 거부합니다. 그들이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행복하다면 당신하고 같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너무나 비참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사람을 피하십시오. 그들이 이미 비참한데 그걸 여러분이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다면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주십시오. 이건 듣기엔 좋지만, 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이 너무 비참해서 당신을 화나게 할 정도라면, 당신에게만 그러는 게 아닐 겁니다. 그들은 아마도 많은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참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곤란에 처할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보복을 한다거나 벌주려고 뭔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화가 나면 스스로를 멈추지 못합니다. 화가 나면 자길 괴롭게 한 사람에게 벌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게 수행입니다. 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기 쉽다면 그건 수행이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이란 여러분이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결점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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