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골골[谷谷]마다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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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골골[谷谷]마다 사찰
  • 김동하
  • 승인 2022.04.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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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發心과 수행修行의 공간
윤을곡 마애불좌상. 남산신성 성벽 밑 산비탈의 바위 중 하나인 삼신바위에 조각된 약사여래상. 
동남향 바위 면에 2체, 서남향 바위 면에 1체를 새겼다.

경주 남산은 최고봉의 이름 따 금오산(金鰲山) 또는 고위산(高位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남산 앞에 ‘신라 불교문화재의 보고’, ‘천년고도의 노천박물관’, ‘민중신앙의 산’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계곡 곳곳에 산재한 소규모 불적(불상・석탑 등)은 남산이 이러한 별칭을 얻는 데 중요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 때문에 생긴 막연한 기대와 경외심은 오히려 남산의 역사적 실재를 알아 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남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무엇일까? 남산은 신라 사람에게 어떤 장소였고, 어떤 연유로 그렇게 많은 불적이 조성됐을까? 

남산 불적의 가장 큰 특징은 왕경 가까이 위치한 단일 산록에 불적이 다수 밀집·분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계곡에 다수의 불적이 짧은 거리를 두고 각각 위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어떤 불적의 경우는 도저히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하기 어려운 장소에도 입지한다. 실제 발굴로 확인된 삼릉계나 열암곡 불적은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예불을 드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남산의 불적을 개개의 사찰로 이해하더라도 그곳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험한 산지 계곡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규모 사역(寺役)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남산의 불적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속세와는 분리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예불목적으로만 조성했다면, 한 계곡에 이렇게 많은 불적이 입지할 필요는 없다. 즉 불자는 기왕에 만들어진 탑상(塔像)에 예불을 드리면 되지, 굳이 가까운 거리에 또 새로운 탑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탑신앙, 공덕 쌓기 위한 수행

남산의 수많은 불적은 끊임없이 탑상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으로 생긴 것으로 보인다. 황룡사, 사천왕사, 분황사와 같은 왕경 사찰을 발굴하면, 흙으로 만든 작은 탑[小塔]이 종종 출토된다. 발굴된 소탑 중에는 매우 정성스럽게 만든 탑도 있지만, 거칠고 투박한 모습을 한 탑도 적지 않다. 이러한 소탑은 조형성이나 예술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즉 공덕을 쌓기 위한 조탑 행위 자체가 핵심이므로, 그 모양이 다소 투박하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조탑신앙은 『조탑공덕경』이나 『무구정광대다리경』의 영향을 받아 실제 왕경 내 많은 탑을 조성하는 배경이 된다. 

한편 『삼국유사』 「양지사석」조 말미에는 향가 <풍요(風謠)>가 전해진다. <풍요>는 영묘사에 불상을 조성할 때 성안의 성인남녀가 진흙을 나르면서 불렀던 노래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불상을 만들기 위해 그 불사에 참여하는 것을 공덕을 닦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조상 행위 역시도 공덕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남산에 조영된 수많은 불상과 불탑도 공덕을 쌓기 위한 스님들의 수행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남산의 수많은 탑상을 수행의 과정과 결과로 생각한다면, 산지나 계곡의 험한 환경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종교적 염원이나 깊은 불심은 최소한의 공간만 허락돼도 그 장소에 탑상을 조성할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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