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골골[谷谷]마다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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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골골[谷谷]마다 석탑
  • 심주완
  • 승인 2022.04.28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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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석탑, 한국적 석탑의 정체성 세우다

경주 남산. 산산골골 절이 있고, 탑과 불상이 봉안돼 있다. 토산은 쌓아 올리고 석산은 깎아내어 탑과 불상을 봉안했다. 수행할 수 있는 자리면 사찰을 지었고, 성스러운 자리엔 탑상(塔像)을 새겨 자연스레 천불천탑의 성산이 됐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석탑이 경주 남산에 밀집돼 있다. 우리나라 석탑은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형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석탑, 그 독창적인 형상은 남산과 조우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남산은 소규모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약 10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다. 가히 우리나라 석탑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7세기 황룡사 구층목탑을 모본으로 바위에 탑을 새기기 시작해 8세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이 세워지고, 9세기 이 글의 주인공인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건립된다. 초기에는 탑곡 마애탑과 같이 신성시되는 강인한 바위에 탑을 새기기 시작했지만, 그 바위 위에 석탑을 올려놓으면서 발상의 대전환이 이뤄졌다. 

 

상상 속 거탑의 실현

삼국시대에 신라 불교는 왕실을 중심으로 신앙됐지만 원효와 의상대사의 영향으로 남북국시대인 통일신라 때부터 점차 대중화됐다. 불교의 대중화는 왕실과 귀족 중심의 불교가 성행했던 경주 도심지에서 점차 경주 남산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남산은 형식과 격식에 얽매인 아카데믹한 도심의 불교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앙처로 최적이었다.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그 시발점이다. 탑이 자리하고 있는 용장골은 남산에서 가장 큰 봉우리인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다. 용장골에서 가장 큰 사찰이 용장사다. 우리나라 법상종을 개창한 태현 스님이 거주했고,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으로 유명한 설잠 스님이 주석해 『금오신화』를 집필한 명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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