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수행자가 염불을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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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수행자가 염불을 시작한 이유
  • 현안 스님
  • 승인 2022.04.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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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39)] 선(禪)과 정토(淨土)의 동시 수행
출처 셔터스톡

출가 전 미국에서 ‘공원에서 참선’ 모임을 운영할 당시 저는 선(禪)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이 선 수행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 마음의 작동 원리, 선정의 단계, 수행의 경계 등을 이야기할 때 스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선(禪)에 대해 바르지 못한 자부심이 있었단 걸 알았습니다. 그땐 그런 자부심이 내면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영화 스님이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리석었다”라고 법문할 때 속으로 ‘나는 안 그러니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예전을 돌이켜보니 마음속엔 항시 선을 수행한다는 미묘한 자부심이 깔려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승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혜와 통찰이 깨어났습니다. 그때 속으로 ‘아!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있게 되고 싶어’라고 느꼈습니다. 전 그런 생각과 느낌을 그냥 제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맞다고 믿고 쫓았습니다.

출가 전 제 관심은 오직 선(禪) 공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이 찬 메디테이션(참선)을 지도할 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와드렸습니다. 선 수행에 대한 법문에 더욱 귀를 쫑긋했습니다. 염불과 참회법을 하는 일요일엔 절에 거의 가질 않았습니다. 첫 몇 년간 예불이나 불경강설에도 별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제게 개인적인 선택은 없습니다. 그것이 출가자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도량의 시스템에 따라서 모든 걸 다 참여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덕분에 선(禪)뿐 아니라 염불, 참회, 불경 공부 등을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예전에는 오만하고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광대한 불교 가르침 중에서 아주 작은 귀퉁이 하나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거나 좋아하는 것에 매달립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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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시간만 있으면 스승님의 옛 법문을 듣고 받아쓰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계속 놓쳐왔던 정토, 염불, 참회, 예불, 진언 등에 대한 다양한 법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영화 스님과 함께 예불해볼 수 있던 기회도 놓쳤고, 더 방대하고 풍부한 법문도 편식해서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런 제자를 어리석다고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재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제가 수행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늘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곁에 머물면서 더 많이 배울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실 처음 묘법연화경의 신해품을 읽었을 때 눈물이 흘렀습니다. 영화 스님은 마치 신해품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10여 년간 인내와 자비로 제게 많은 걸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스승님은 한 번도 제가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올 것인지, 잘 해낼 것인지, 수행에 있어서 성취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기대하며 압력을 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되어서야 그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스승님에게 빚이 너무 많습니다. 전 염불도 잘 못하고, 정토불교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스승님이 제자들에게 서방극락정토에 가고자 하는 노력을 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스승님의 말씀을 따라왔고, 그의 말씀이 모두 옳았기 때문에 정토불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스승님의 정토불교에 대한 가르침을 한국의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또한 스승님에 대한 은혜를 갚는 방법입니다.

영화 스님은 지난 세월 동안 선과 정토를 둘 다 지도해왔습니다. 스승님의 지도 스타일은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동양적인 방식과는 다릅니다. 스승님의 선(禪)에 대한 지침은 매우 명료합니다. 예를 들면 결가부좌 자세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학생은 불편하고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첫 시험에 직면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잃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픔을 견뎌야 하는 이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앙종 선 훈련의 비밀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진전입니다. 왜 진전을 강조할까요? 그래야 우리가 선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 수행의 목표는 깨달음입니다.

정토는 어떤가요? 아메리칸 스타일의 정토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보통 많은 사람이 간절하게 염불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왜 이들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일까요? 영화 스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염불만 하면 아주 먼 훗날, 셀 수 없이 많은 생을 거친 후 언젠가는 왕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아메리칸 정토불교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번 생이 끝날 때 정토를 가고자 합니다.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번 생이 끝날 때 당장 정토에서 왕생하길 원합니다. 그러니 절에 가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생이 끝날 때 정토에 갈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정토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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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한 대승 정토법을 추구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정토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 스스로만 구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구하고자 정토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더 많은 이를 구하기 위해서 정토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정토법입니다. 본래부터 정토법의 의도는 우리 자신만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지긋지긋해. 난 꼭 서방극락정토에서 왕생할 거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수행으로 힘을 얻고, 괴로움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의 괴로움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도 “정토에 가서 아미타 부처님께 가족과 친구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선과 정토는 함께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큰 시너지가 생깁니다. 선정으로 힘을 얻으면 더 용감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대승, 즉 큰 수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도 짊어질 힘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냥 무조건 정토에 가야겠다는 작은 희망보다 더 큰 서원을 세워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을 열고, 자신이 몰랐던 더 큰 힘과 지혜를 내면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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