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한거都心閑居] 우리가 꿈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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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거都心閑居] 우리가 꿈꾸는 세상
  • 석두 스님
  • 승인 2022.05.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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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세상은 전쟁과 대통령 선거 얘기뿐이다. 도심 포교의 일선에 있는 소승은 이 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산승들의 여유가 부러울 뿐이다. 하지만 한 생각 돌이켜보면 전쟁이 없던 시절은 인간사에 없었다. 이런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던 옛 스님들은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갔을까? 그분들의 상황대처법을 배운다면 더 현명하게 지금의 사태를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스님은 금(金)나라와 대치하는 격변의 시대인 남송 때의 스님이다. 강원에서 지금까지도 교재로 사용하는 초학스님들의 선 지침서인 『서장(書狀)』의 저자이기도 하다. 『서장』은 대혜 스님이 당시 남송의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모음이다. 사대부들의 선수행 관련 의문과 스님의 답변을 추린 편지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스님은 당시 대표적인 주전파(主戰派, 전쟁을 주장하는 파)였다. 주화파(主和派,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인 재상 진회(秦檜, 1090~1155) 일파와 맞서다가, 16년간 귀양살이하게 된다. 이 힘든 시기에도 참선법을 지도하며 재가불자들의 수행의식을 고취하려 했다.

늙은이가 태어나자마자 야단을 떨어(老漢纔生便着忙)

미치광이처럼 일곱 걸음을 걸었네(周行七步似顚狂).

수많은 어리석은 남녀 속여 놓고는(賺他無限癡男女)

눈 부릅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開眼堂堂入鑊湯).

 __  대혜종고

나라의 명운이 다해가는 암흑의 시기에도 선(禪) 정신에 투철했던 스님의 기백이 보이는 선시다.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반어법(反語法)으로 표현했다. 진제의 진리 속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광인(狂人)은 부처이고, 부처는 광인인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어리석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이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는 광인이다. 더 달콤하고, 더 탐스러운 유혹은 중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보다 치명적이고, 보다 자극적이어야 중생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무색무취(無色無臭)인 불교를 포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임을 소승은 통감하고 있다. 

중생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속여야 한다. 속여서 같이 가야 한다. 대승보살의 운명이자 소명이다. 하지만 수행자 본인의 마음마저 속이면 안 된다. 늘 자신에게 당당하고 솔직담백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수행의 향기와 힘이 나온다. 대혜 스님의 당당함은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의 안녕과 국토의 보전, 그것은 실천이 결여된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만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보현보살의 행원력(行願力)은 중생의 세계 속에서는 적극적인 실천 행동만으로 시현(示顯)되는 것이다. 중생의 안락과 평온을 위한 일이라면 지옥행도 스님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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