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여기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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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여기 이 순간
  • 현안 스님
  • 승인 2022.03.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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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36)]
Here and Now
출처 셔터스톡

요즘 명상이나 영적 수행하는 사람들이 “여기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문구를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우리 맘속엔 늘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탐닉합니다. 맘속에서 이런 생각들을 따라갑니다. 그런 식으로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우린 과거와 미래의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순간, 현재에 큰 비중을 두지 못합니다. 그게 망상의 본질입니다. 망상의 본질은 절대로 현재 이 순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명상이나 영적 수행하는 이들은 꽤 정확합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말해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거 혹은 미래를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현재는 무시합니다. 현재가 늘 결여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좀 더 정확히 “여기에 살아라. 그리고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공간이고, 두 번째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늘 여기 말고 다른 걸 생각합니다. 망상은 항상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갑니다.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딴생각을 합니다. 안 그런가요? 그렇다면 ‘여기’란 무엇인가요? 여러분에게 “여기에 살아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여기’란 물리적으로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더 정확하게 무엇인가요? 내 방? 전철 속? 카페? 컴퓨터 앞?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여기란 바로 우리 자신을 뜻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의 몸이고, 마음입니다. 우리의 존재입니다. 우리의 웰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몸속, 존재 안에 삽니다. 그것이 여기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살아라”가 진짜로 의미하는 것은 몸을 인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식(Awareness)’입니다. 어떤 분들을 이걸 ‘알아차림’으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알아차림’이라는 단어를 쓰면, 이게 뭔가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게 해서 평범한 언어로 번역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의 첫 번째 의미는 여러분이 있는 바로 그 위치입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이 어떻게 있는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무슨 뜻인가요? 이건 시간적 요소입니다. 만약 불자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현재란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과거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이란 망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걸 읽는 바로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건 이미 가버리고 과거가 돼버립니다. ‘이 순간’이란 것에 집착할 뿐입니다. 이미 가버렸습니다.

시간의 본질은 빨리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공간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고, 시간에 있어서 우리의 시간, 수명, 삶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그런 걸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는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말한다면, 그건 “우리가 가진 전부로 최고의 인생을 살아라”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망상입니다. 그건 단지 상상일 뿐이니까요. 우리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리곤 우리 자신을 계속 바쁘게 만드는 상상의 생각들을 쫓습니다.

우리가 “여기 그리고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를 산만해지도록 두지 말라고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기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만 말하면, 그건 자칫하면 너무 자기 탐닉적이 돼버립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기, 지금에만 집중하는 것은 여러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큰 질문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입니다. 그건 여기도, 지금도 아닙니다.

요즘 우리는 현재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 길게, 더 멀리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어디로 향합니까? 이렇게 미래는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재는 볼 수 있지만 미래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혼란스러운 미래에 대해서는 묻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장거리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40~50년을 내다보고 은퇴를 계획합니다. 은퇴 계획은 한 번의 인생만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훨씬 더 긴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너무 짧은 계획을 떠올립니다. 삶이 때로는 너무 버겁기 때문입니다. 한 생애 동안 길게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엔 윤회(바퀴 속에서 돌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업을 지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업을 짓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업이 우릴 바퀴 속으로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고 삶입니다. 여러분이 직업, 돈, 사랑, 행복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고, 지금 당장은 그런 게 꽤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하는 일들에서 업을 짓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명해주신 겁니다. ‘이게 너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부처님은 그걸 보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게는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있습니다.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그의 비전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시작이 없음(무시)에서 끝이 없음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는 놀랍고, 경계선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비전은 매우 정확합니다. 이게 심오한 대승의 개념입니다. 대승의 ‘무시이래’, 즉 우린 언제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부처님만 봅니다. 부처님께서 “시작 없음이란 것이 있다. 난 볼 수 있지만, 너희는 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짓고 있는 업이 우리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걸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고통에서 해방해줄 수 있는 업을 짓고 싶어질 것입니다. 현명한 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고통의 끝을 낼 수 있는, 그리고 안락을 얻는 업을 짓습니다. 이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이건 개개인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합니다. 매 순간, 깨어있는 매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업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 깊게 선택하십시오. 바른 업을 지으십시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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