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본 가르침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연기(緣起)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불교 교리는 인과설, 윤회설 등의 업(業, karma)설에 기인한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한 이래 다양한 불교사상이 전해지고 취사되며 약 1,70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 사이 한국 불자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신앙은 단연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다. 관음은 현세의 구복을, 지장은 내세를 구원해주는 신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을 다루는 지장신앙은 한국 사찰 대부분에서 만날 수 있는 명부전(冥府殿)을 통해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명부전은 현판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의 세계와 관련 있다. 명부전의 주존(主尊)은 지장보살이고, 그의 역할은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의 모든 중생을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장보살은 지옥을 중심으로 한 저승세계를 구원하는 인물로 인식됐다. 이는 시대에 따라 정토·나한·시왕신앙과의 결합에 따른 결과다.
삼국시대, 지장신앙의 도입
지장신앙은 삼국시대 처음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경우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흠명 6년(欽明, 545)에 장육(丈六) 불상을 보냈고, 민달 6년(敏達, 577)에 지장상을 전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 처음 지장신앙이 나타나는 시기는 신라 진평왕 대(579~632) 원광 법사에 의해서다. 그가 지장 신앙자였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나타나지 않으나 ‘점찰보’를 경영했다는 기록으로 ‘점찰법회’를 주최했음을 알 수 있다. 점찰법회는 『점찰경』을 근거로 하는 법회다. 점찰(占察)은 선·악이 쓰인 나무 막대를 던져서 나온 결과에 따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수행하는 점이라고 해서 단순히 길흉을 따지는 점술과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점찰경』의 설주(說主)가 지장보살이며, 참회와 지장보살 경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점찰법회는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진평왕 대 지혜 비구니에 의해 대중화되고 매년 열리는 의례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원효 대사에 이르러 지장신앙은 정토신앙과 만나면서 점찰법회에서 죽은 사람을 위한 추선(追善)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지장신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몸에 극단적인 고통을 가해 이를 이겨내는 참법을 행한 진표 율사에 의해서다. 진표가 활동한 시기에 지장신앙의 핵심경전인 『지장경』을 비롯한 지장삼부경이 모두 소개돼, 독립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는 기초가 마련됐다. 점찰법회는 내생의 복을 구하는 법회로 인식돼 김대성이 지었다는 석굴암 본존 뒤편의 감실(龕室, 불상 등을 봉안하기 위한 곳)에 다른 보살상과 함께 지장보살상이 모셔지게 됐다. 이는 8세기 밀교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지장화상법’이 소개되고, 왕실은 물론 백성들을 위한 진표의 서민적인 전법활동이라는 밑거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오대산에서는 『십륜경』에 근거해 남방에 해당하는 붉은색으로 지장방(地藏房)을 뒀다. 이와 함께 지장보살을 예배하며 『지장경』을 암송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는 관음이나 미륵신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유행한 신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장보살, 시왕을 거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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