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품은 지리산] 지리산, 돌에 새긴 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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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품은 지리산] 지리산, 돌에 새긴 불심
  • 유동영
  • 승인 2021.12.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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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총 13기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고 하나 눈에 또렷이 보이는 불상은 대략 8기 정도다. 본존으로 여기는 우측 부처님 몸체 하단에는 두 발이 나란히 조각돼 있다.

남원은 예부터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였다. 북쪽으로 전주에, 서쪽으로 순창을 지나 광주에, 남쪽으로 구례를 지나 순천에, 동쪽으로 함양과 합천을 지나 경주까지 닿는다. 이런 이유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뺏고 뺏기기를 거듭하는 격전지였다. 나말여초에는 당으로부터 육조의 법을 받은 선불교가 왕실의 도움으로 첫 산문을 열었다. 이즈음 세력을 불린 호족들이 훗날 남원·지리산 둘레에 많은 마애불을 불사한듯하다. 경주 다음으로 많은 마애불이 분포해 있다. 남원에서 함양에 이르는 길 위에는 마애불뿐만 아니라 다수의 벅수도 있다. ‘벅수’는 지리산 일대의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부르는 장승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대부분의 벅수는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고, 남원에서 함양을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운봉읍에 집중돼 있다. 예전 행정구역으로는 운봉읍 인근 면들 또한 운봉현에 속했다. 마을을 지키며 액을 쫓고 마을의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는 비보로서의 벅수는, 이 지역이 얼마나 많은 외세의 부침을 겪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노적봉 호성암터 마애불. 호성암이라는 이름은 스님과 호랑이의 아름다운 전설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지화를 잘 만드는 도환 스님의 모티브가 됐던 암자터이기도 하다. 공손하게 받쳐든 연꽃도, 바람에 하늘거리는듯한 옷고름도, 부처님을 받드는 대좌도, 묘하게 가위로 오려낸 종이의 선과 닮아있다. 양감이 크지는 않으나 빛이 잘 들 때는 말문이 닫히도록 아름답다.

 

신계리 마애불. 남원과 지리산 둘레의 마애불 가운데 양감이 가장 도드라지며 상호와 문양 등이 경주의 마애불들을 떠오르게 한다. 마애불은 응봉산 중턱의 자연암반에 새겨져 있다. 산을 넘으면 순창에 이르고 산을 따라 아래로 가면 곡성에 닿는다. 

아직은 마애불 주변에서 절터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혼란했던 9세기 백성들의 민심을 위로하고 기복을 위해 모신 게 아닐까 추측한다.  

 

여원치 마애불. 남원과 운봉을 잇는 여원치 마루에 있다. 고려 말,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가 고개를 넘는 순간, 한 노파가 나타나 싸울 시기와 장소 및 전략을 알려 줬고, 이성계는 황산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른바 황산대첩의 뒷이야기이다. 이후 이곳은 이성계의 여원치가 됐다. 그로부터 꼭 200년 뒤 또다시 왜군이 조선을 짓밟자,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이 권율을 만나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다. 승리를 확신한 자의 걸음, 죽음을 예견한 자의 걸음, 함께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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