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사찰 안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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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사찰 안 산신
  • 윤열수
  • 승인 2021.11.2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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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 호랑이와 함께
법당으로 들어오다
군위 인각사 산령각.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집안의 큰 어른을 찾는 것처럼,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곳이 바로 사찰 내 한적한 곳에 자리한 산신각이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산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며, 일찍부터 산을 다스리는 산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산신도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나지만, 산신의 격을 갖춘 산신도가 그려지기 시작한 명확한 시기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된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조선시대 후기인 1800년 무렵부터 산신도가 그려지기 시작해 1800년대 말에는 사찰 수만큼이나 많이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산신신앙의 흐름을 따라 산신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후, 사찰 내 산신각에 모셔진 산신도를 중심으로 발생과정과 유형을 탐구해보도록 하겠다. 

 

산신각 형태의 변모

산신각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사찰에 산신각이 세워지기 시작한 때는 조선 후기부터다. 산신각은 원래 불교와 관계없는 자연환경에서 발생한 민중 신앙물이었으나, 재래신앙인 산신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 불교와 습합하고, 사찰 전각의 내외호신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사찰 내에 세워지게 됐다. 산신각 기록 중 가장 빠른 것은 인악(仁岳) 의첨(義沾)의 문집인 『인악집(仁岳集)』(1746~1796) 권2에 기록된 해남 은적암의 「산령각기(山靈閣記)」가 있다. 

산신, 독성, 칠성을 모시는 전각은 대체로 삼성각(三聖閣)이라 부르며, 그 밖에도 산신각(山神閣), 산왕각(山王閣), 산령각(山靈閣), 영산각(靈山閣), 산신당(山神堂), 산제각(山祭閣), 지령당(至靈堂), 성모각(聖母閣), 성산각(星山閣), 칠성전(七星殿), 북극전(北極殿) 등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지고 있다. 

산신각의 초기 현판 명칭에는 산령각이 많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다양한 이름으로 변한다. 특히 19세기 말에는 칠성을 중심으로 한 전각들의 명칭이 각(閣) 또는 당(堂)에서 가람배치 상위 개념인 전(殿)으로 변화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각들의 명칭을 살펴보면 산신이나 독성 또는 칠성을 단독으로 모시는 전각도 있지만 대체로 칠성을 중심으로 좌우에 산신, 독성을 함께 모시는 삼성전(三聖殿)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위 인각사 산신각은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형태로 신주를 모시는 교의(交椅, 제사용 의자)를 확대한 제의용이었다. 원래 사찰 산신각이나 명산 산신도량은 전각 밖에서 기도 드리는 형태로 대부분 작은 건물이었는데, 대중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산신각은 점점 확장 불사의 대상이 된다.

 

산신도의 유형

산신은 작가의 활동 범위나 화원의 계보, 계열에 따라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또 지역이나 시대 변화, 시주(施主) 물품의 많고 적음, 크기, 채색, 형태, 동기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현재까지 조사 가능한 140여 축의 산신도 가운데 연대가 분명한 작품으로 은해사 성보박물관 산신도(1817년)가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됐고, 의성 고운사 산신도(1820년), 영남대 박물관 산신도(1821년), 은해사 산신도(1825년), 경남 해인사 산신도(1831년) 등이 이른 시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꼽힌다. 사찰 내에 봉안된 산신도 중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그림들을 검토, 비교해 보면 그 특성을 알 수 있는데, 크게 제I형식, 제II형식, 제III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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