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한국 고대 산신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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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한국 고대 산신신앙
  • 최광식
  • 승인 2021.11.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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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천으로서 산신,
불교와 융합되기까지
태조, 고종 등의 어진을 그린 근대 화가 채용신이 그린 단군상.

산에 하강해 마을 형성한 건국자들

불교, 유교, 도교 등 외래 종교가 전래하기 이전에 한국인은 천신(天神), 산신(山神), 수신(水神)을 믿고 숭배했다. 역사의 시작과 함께 천신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와 농경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자손을 낳아 국가를 형성하게 하고, 결국 산신으로 자리해 오랫동안 국가의 안위를 돌보고, 가족들의 건강과 생명의 탄생에 이바지했다.

단군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농경 생활을 시작하게 하고, 단군을 낳아 고조선이라는 국가를 형성하고, 마침내 산신이 되어 가족의 건강과 신생아의 출산을 보호하는 보호령으로 남아 삼신신앙의 형태가 됐다. 천신이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산신은 할머니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보아 산신할머니나 삼신할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신라 육촌의 육촌장들도 산으로 내려와 마을을 이루었으며, 이들이 박혁거세를 추대해 신라를 건국했다. 알천 양산촌장 알평은 표암봉으로,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는 형산으로, 무산 대수촌장 구례마는 이산으로, 취산 진지촌장 지백호는 화산으로, 금산 가리촌장 지타는 명활산으로, 명활산 고야촌장 호진은 금강산으로 내려왔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주목할 점은 육촌장이 모두 산으로 내려왔다는 점과 육촌장이 자리 잡은 지역 모두 마을 이름 앞에 산 이름이 붙는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 온 유이민(流移民) 집단이 먼저 산에 올라가서 자기들이 살만한 곳이 어디인가 살펴보고, 특정한 산을 선정해 산 주위에 마을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관국에 간 석탈해도 토함산에 올라 양산을 바라보니 호공댁이 길지여서 거짓 꾀를 내어 취했다고 한다. 그곳은 나중에 월성이 되는데, 탈해는 문무왕 대에 토함산의 산신이 돼 동악신으로 숭배됐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 감응해 대가야왕 뇌실주일과 금관국왕 뇌실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고 한다. 천신과 산신의 교감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 잘 나타나 있다. 천신은 동심원으로, 산신은 가면 형태로 표현돼 제의의 대상이 됐다. 한편 김수로왕은 김해의 귀지봉에 내려왔다고 기록돼 있다.

고대국가의 건국자나 시조들은 산으로 하강하고 산에서 그들이 거처할 자리를 모색한 후, 산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마을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공통점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로, 마을이 산을 등지고 앞에 시내를 끼고 있는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은 바람을 막아주며 비가 올 때 물을 모았다가 비가 오지 않을 때 물을 공급한다. 산에 있는 나무는 땔감을 제공하고, 그 열매와 뿌리는 식량자원을 공급한다. 이처럼 산은 삶의 원천이기 때문에 산을 공경하고 숭배하는 신앙이 일찍부터 싹텄다고 할 수 있다.

 

국토 수호자로서 숭배된 산

산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숭배의 대상이 됐다. 백제와 신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삼산에 대한 신앙과 제의가 이루어졌다. 백제는 오산, 일산, 부산 등 삼산에 각각 신인(神人)이 살면서 서로 왕래했다고 한다. 오산, 일산, 부산은 모두 부여의 왕경을 둘러싸고 있다. 삼산이 신앙적으로뿐만 아니라 국토방위와 도성 수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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