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천축선원 대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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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천축선원 대인 스님
  • 김남수
  • 승인 2021.1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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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위성에 있는
한국 사찰 천축선원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 1,250명과 함께 계셨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금강경』의 도입구다.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은 기원정사를 말한다. 부처님 재세 시 코살라국의 수도였으며, 부처님이 가장 많이 머물던 도시다. 『금강경』을 비롯해 수많은 대승경전이 설해진 곳이다. 그곳에 한국 사찰을 세우고, 인도 성지순례 하는 이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는 스님이 있다. 

인도 순례자뿐 아니라 인도 주민들을 위해 학교와 보건소도 운영한다. 현지 주민들이 천축선원에서 운영하는 보광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5: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천축선원은 기원정사 주변의 어느 나라 사찰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외국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센터가 됐다. 천축선원은 초가집에서 시작해 250명 넘는 순례객이 일시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대인 스님이 기원정사 옆에 사찰을 세운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님이 본래 한국 사찰을 짓고자 했던 곳은 인도가 아니라 네팔이었다. 설산으로 유명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근처, 구릉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은 트레킹으로 많은 이들이 안나푸르나를 순례하지만, 스님이 터를 잡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한국인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네팔 주민들과 함께 땅을 물색하면서 ‘이곳이 내가 머무를 곳이구나’라는 마음을 가졌다. 축대도 쌓고 법당터도 마련하는 등 상당한 진척이 있었으나 예기치 않게 떠나게 됐다. 일본 불교의 물량 공세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조직을 지닌 그들이 필요하리라 생각하며 물러났다. 안나푸르나에 발을 들여놓은 지 4년 만이다.

귀국해 잠시 있다 인도 순례를 떠나 1년 정도 머물렀다. 기원정사와의 인연이 이때 시작됐다. 한국 사찰이 없었기에 미얀마 사찰에 짐을 풀고 기원정사를 청소하면서 한 달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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