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지리산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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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지리산 도솔암
  • 노승대
  • 승인 2021.11.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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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일정으로 지리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전 달에 삼정산 7암자를 순례하면서 첫 번째 암자인 도솔암을 들리지 못하고 6암자만 순례했기 때문이다.

이왕 내려가는 김에 단성 겁외사에도 들렸다.

성철 스님 생가터를 사찰로 만든 곳이다.

성철 스님이 출가 전에 수행했던 대원사도 참예했다.

지금은 석남사, 견성암과 함께 비구니스님 선방으로 유명하지만 초입의 계곡도 아름다운 곳이다.

잠은 개그맨 전유성 씨가 머물고 있는 인월 중군마을에서 잤다.

소탈하게 대접해 주시는 전유성 씨와 저녁도 함께하고 따님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제비’에서 맛있는 차도 마셨지만 사위가 보여주는 마술이 너무 재미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보여주는 마술인데 일행들은 훅~ 가고 말았다. 유쾌한 저녁이었다.

아침 7시에 전유성 씨가 맛있게 지어놓은 냄비 밥에 가져간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도솔암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은 천연의 오솔길이다. 경사가 심한 곳도 있다. 그래도 마음을 쉬게 하는 길이어서 또 오고 싶은 길이다.

도솔암은 청매 선사(1548~1623)가 수행하시던 암자다.

산 정상에 가까운데도 맑은 샘이 흘러나오고 물맛 또한 빼어나다.

틀림없이 물맛 소믈리에가 감탄할 맛이다.

스님이 주시는 차도 얻어 마시며 1시간여를 머문 후 하산.

오도재 지리산조망공원을 거쳐 남계서원을 들린 후 상경길을 서둘렀다.

 

겁외사(劫外寺) 입구 누각의 주련글씨는 성철 스님이 처음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증도가>의 첫 구절이다.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 진리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무 살 청년이던 성철 스님은 건강 때문에 드나들던 대원사에서 참선을 시작했다. 생가터에 복원한 건물.

 

대원사 가는 길의 계곡 풍경. 아름다운 계곡길이어서 이제는 주차장에서 절까지 안전한 데크가 2km가량 설치되어 있다. 평일에는 절까지 차가 들어간다.

 

대원사 석탑은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1784년에 다시 세운 탑이다. 성철 스님은 탑전에서 홀로 수행하며 42일 만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경지에 들었다.

 

지리산의 산신은 여산신이다. 마고할미, 마고선녀, 지리성모 등으로 부른다. 인근 사람들은 천왕할매라 한다. 대원사 산신각에도 여산신상과 탱화를 모셨다.

 

산신각 아래 정연하게 늘어선 장독대의 항아리들. 비구니사찰답게 정갈한 손길로 항상 어루만지는 듯 깨끗하고 야무지다. 이 절의 절밥을 먹고 싶어지네.

 

전유성 씨가 머물고 있는 중군마을 한옥집. 중군마을은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칠 때 큰 승리를 거둔 곳이라 한다. 우리는 2층 오른쪽 방에서 푹 쉬었다.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작전도로에도 가을빛이 물들었다. 저 멀리 숲길을 비추는 햇살이 마치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조릿대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 그윽한 정취가 가득하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가볍다. 온몸이 산 기운으로 채워지니 어느 신선도 부럽지 않다.

 

갑자기 된서리가 내린 탓으로 지리산 단풍도 그렇게 곱지가 않다. 그래도 이 오솔길에는 이렇게 가을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황홀하다.

 

하늘이 감추었던 땅이었는가? 이렇듯 산정 가까운 곳에 얕은 산 능선을 뒤로하고 도솔암 법당이 남향으로 앉았다. 바람도 없어 조용하고 따뜻하다.

 

너른 마당 서쪽에는 소나무 그늘 아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올망졸망 모여 담뿍 햇살을 쐬고 있다. 바람 불 때는 강풍인지라 쟁반 위에 돌도 얹혔다.

 

도솔암 바깥쪽 샘이다. 지금은 쓰지 않는 듯하지만 꽤 오랫동안 암자의 식수원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파이프로 연결해 어디든지 끌어다 쓰는 호시절이다.

 

도솔암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정견 스님이 스승 혜암 스님을 모시고 1985년 무렵 다시 세웠다. 현판글씨가 종정을 역임하신 혜암 스님 글씨다.

 

도솔암에서 내려와 오도재 지리산조망공원으로 향했다. 지리산 전체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장쾌한 지리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은 9곳이다. 함양 남계서원도 그중 하나다.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대원군 서원철폐령에도 무사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학맥은 고려 말 야은 길재에서 시작된다. 길재는 김숙자를 키웠고 김숙자는 아들 김종직을 가르쳤으며 김종직은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남효온, 강희맹 등을 배출했다.

 

김굉필의 제자가 바로 조광조다. 정여창은 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 되었지만 사대부가 정계에 포진한 후 문묘에 배향되었다.

 

장판각 문 위에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가 삼재를 물리친다는 민간풍속이 서원에도 나타난 것이다. 풍영루 누각에도 민간의 민화가 많이 그려졌다.

 

남계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 옛터에 중건했다.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된 서원이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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