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삶, 서울의 삶 /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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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삶, 서울의 삶 /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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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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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뉴욕을 떠난 니어링의 삶을 꿈꾸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떴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물 한 모금 마시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 책장 한구석 조용히 먼지가 쌓여가는 책 하나를 끄집어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 이 책이 필자에게 온 지는 스무 해도 더 지났다. 표지는 더러 뜯겨나가고 찢어지고 낡았다. 재생지로 만든 본문 종이는 누렇게 색이 바뀌고 글자는 잉크가 바래 윤곽이 흐릿하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자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지면 위에 어룽거려 마음이 아릿해진다. 그 무렵 필자는 신문 기자를 하다 사표를 내고 고향인 충북 괴산에 농사를 지으러 귀향한 삼십 대 초반 가장이었다. 도시의 삶은 누구를 억누르거나 짓밟아야 내가 올라선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다. 무해한 삶을 꿈꾸며 생태적 가치까지 추구할 수 있는 농부가 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니어링 부부는 미국 뉴욕에서의 삶을 깊게 회의하며 출구를 모색한다. 점점 괴물이 돼가는 자본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체제의 상징인 뉴욕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세 가지 방향을 가늠해본다. 

첫째, 미국을 떠나 남미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 니어링 부부는 이것은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가장 먼저 제외한다. 둘째, 뉴욕에 남아 협동조합 같은 공동체 운동을 하는 것. 안타깝게도 뉴욕은 그런 여지조차 없앨 만큼 삭막하게 변했다. 

결국 셋째, 뉴잉글랜드 버몬트주의 시골로 들어가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대안적 삶의 모델까지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니어링 부부는 새로운 삶의 가치와 루틴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쳐 노력한다. 자급자족,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 경제적 안정성, 일과 여가의 조화, 타인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 생활 등.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먹고사니즘’을 벗어나지 못했다.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해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2005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채용돼 귀농생활은 종지부를 찍고 다시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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