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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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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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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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이며 오직 일심뿐이다

 

소설 원효
저작·역자 이지현 정가 15,000원
출간일 2021-10-22 분야 입력하세요
책정보

ISBN9788974799465(8974799464)

쪽수264쪽

크기140 * 215 * 17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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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알고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았다는, 이른바 ‘해골 물’ 일화로 잘 알려진 원효 대사. 그런데 이 일화가 뜻하는 바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헌법학자인 이지현 작가는 원효의 <판비량론>을 탐독한 뒤 충격을 받았다.

<판비량론>은 원효가 당대의 유명한 고승 현장 법사의 논리를 비판하며, 인간의 심신을 치밀한 논증 방식으로 파헤친 책이다. 책을 읽은 뒤 원효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승가에서 속세로, 지아비이자 자식을 낳은 평범한 거사로, 거지들 속으로 들어간 원효의 파계가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법학자로서 바라본 원효는 만법의 이치, 즉 깨달음과 실천이 한 치 어긋남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작가는 ‘해골 물 일화’에서 벗어나, 원효가 평생의 삶을 통해 전파하고자 한 가르침을 통사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기 소설의 형식을 빌렸다. 원효의 저서와 논문, 설화 등 각종 문헌을 섭렵하여 역사적 사실을 줄기로 삼되, 원효의 삶에서 공백으로 남은 부분은 당대 역사와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하여 채웠다. 삼장 법사와 손오공, 용왕과 용, 살아 있는 시체들, 요석과 의상 대사, 당 태종, 문무왕 등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엮여, 마치 1,400여 년 전 서라벌 땅으로 되돌아간 듯 거대한 판타지로 펼쳐진다.

어쩌면 원효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 땅에 마음껏 펼치고 사라진 것인지 모른다. 1,4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각자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이 책은 원효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주춧돌이자, 오늘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쓰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소개 위로
이지현

 

법학박사이며 헌법학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국회와 행정부에서 일했고, 여성단체와 문화예술 단체에서 활동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불교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불교를 통해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오랜 꿈을 일깨웠다. 법학자의 시선으로 《판비량론》을 읽은 뒤 원효의 삶을 소설로 그려내기에 이르렀다. 무엇에도 걸림 없는, 원효의 무애(無碍)와 일심(一心) 사상이 한 마음과 한 세상을 밝힐 것이라고 믿는다. 법학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쓴 책으로는 역사 인물 허균을 다룬 《400년 만의 만남-그리운 허균 당신에게 보냅니다》, 청소년 법 교양서인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가 있다.

 

이지현(지은이)의 말

“이 책은 원효 대사께 바치는 헌사이다. 원효는 모든 사다리를 미련 없이 걷어차 버렸다. 화랑으로 승려로 출세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출구를 스스로 닫아버리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 고통받는 이들과 온전히 함께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처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그 남자는 신라에서 태어나 보살이 된 역사 속 인물이다.”

목차 위로
작가의 말

삼장 법사, 당나라로 돌아오다
아비규환의 전쟁터

1
출가를 택하다
당나라 유학을 내던지다
공덕천녀와 흑암천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
요석을 만나다
요석의 고백
대안 스님의 조언
요석궁에서의 사흘

3
헐벗은 천민들과 함께
의상과 손오공
나당전쟁의 승리
죽은 자를 진혼하다

4
황룡사의 권승들
역병의 마을
설총의 눈물
아수라 흠돌의 계략
자의 왕후와 신궁

5
당나라에 끌려온 백제 여인
용마를 타고 용궁으로
비열한 음모
끝없는 모욕과 모략
저잣거리의 눈물

6
황룡사의 문을 열어라
당나라에서 온 천 명의 유학생
첫새벽의 열반
약사보살로 부활하다

후기
원효 행장과 관련 사건
상세소개 위로
원효는 왜 거지들 속으로 들어갔을까?
깨달음과 파계는 같은 자리에 있다

일본 교토 고잔지(高山寺)에는 13세기에 그려진 원효의 가장 오래된 초상화가 남아 있다. 다듬지 않은 거친 수염과 마르고 검게 그을린 얼굴은 원효가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짐작케 한다. 2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학자로, 여러 종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불교 사상을 통합한 사상가로, 만법의 이치를 깨친 수행자로, 저잣거리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철저한 실천가로 살다간 원효. 그는 이론과 실천이 완벽히 들어맞는 성현이었다. 원효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원효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원효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저 유명한 ‘해골 물의 일화’는 그의 사상적 핵심인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무애(無碍)의 뿌리이다. 한마디로 줄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알고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았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종종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고 오독되는 ‘일체유심조’의 본래 뜻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이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과 더러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없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낼 뿐이다’라는 것, 각자의 마음이 현상계를 만들어내고 마음이 사라지면 이 현상계도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분별이 떠난 그 자리, 공(空)의 자리를 깨치면 나와 남, 나고 죽음, 옳고 그름 등 분별로 인한 번뇌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그 번뇌조차 자유자재로, 바르게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근본 자리를 깨친 원효에게는 승과 속, 수행자와 범부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중생은 구제와 교화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며 자유와 해탈로 함께 가고자 하는 스승이자 도반이었다. 이 맥락에서 원효는 파계는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거지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원효의 파계와 요석과의 혼인 등 파격 행보만을 가리켜 비난한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원효는 생의 모든 순간을 향상(向上)과 깨달음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았다. 원효가 떠난 지 1,400여 년이 지난 오늘, 원효를 읽는다는 것은 분별하지 않는 궁극의 깨달음의 자리를 알아 내 삶으로 살아내는 데 있다. 원효가 온 삶을 통해 보여준 바로 그 자리를 ‘쉽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간절한 바람으로 저자는 이 책을 써야만 했다.

뒤돌아보는 원효,
원효에서 시작되는 K-불교를 꿈꾸며

원효가 바꾸고자 한 세상은 1,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사회와 가정, 개인의 고통은 줄지 않았다. 원효는 여러 불교 종파를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으로 통합했다.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라고 하면서,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되 모두를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려고 했다. 오늘날 개인과 사회가 껴안고 있는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원효는 이미 1,400여 년 전에 설파했다. 원효가 온 삶으로 보여준 메시지는 당대 일본과 중국, 멀리 인도에까지 전해졌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원효를 부처와 동격으로 추앙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고승 대덕인 원효 대사, 원효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법학자인 이지현 작가는 원효의 《판비량론》을 읽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왔던 젊은 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현실 법(法)을 다루는 학자로서, 여러 학설의 대립과 분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나아가 하나로 통합한 원효의 저술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간 법(法)과 만물의 이치를 다룬 법(法)의 세계를 오가면서 저자는 원효의 삶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원효의 삶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전문 소설가가 아닌 그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난해한 한자어로 얽히고설킨 논리를 좇느라 생긴 두통과 함께 읽어낸 《판비량론》, 이어서 원효의 저술과 사료, 전기, 소설, 논문 등 온갖 자료를 섭렵하는 동안 작가는 매일 밤 꿈속에서 거지들과 함께 울고 웃는 원효, 저술에 매달리며 밤을 새우는 원효, 전쟁터에서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원효, 그리고 그런 원효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기도하는 요석의 애달픈 목소리를 들었다. 설렘과 감동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것이 바로 《소설 원효》이다. 미사여구나 복잡한 심리 묘사에 기대지 않고, 작가만이 느끼고 바라본 원효의 마음을 솔직하고 담백한 직설로 담되, 당대의 역사를 씨줄날줄로 엮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냈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히면서도 매 순간 원효의 감정과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작가의 탁월한 감정이입이 있기 때문이다.
원효가 열반에 든 후 설총은 아버지의 뼛가루를 흙과 섞어 소조상을 빚어 분황사에 모셨다. 설총이 예를 다하자 원효의 소조상이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는데, 그대로 굳어 ‘뒤돌아보는 원효상’이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분황사의 화재로 ‘뒤돌아보는 원효상’은 소실되고 말았지만, 모든 중생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아미타부처님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오늘날 우리에게 원효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우리가 하나임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당당할 것입니다. 늙음 속에서도, 병듦 속에서도, 삶의 무지막지한 혼돈이 가로막을 때에도 우리는 사자처럼 장애를 해치우고, 늠름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완전한 불성으로 존재의 기쁨과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원효를 만나고 원효의 큰바다에 몸을 맡기면 반드시 행복과 축복이 오리라고 감히 약속드립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오직 일심(一心)뿐입니다.”



이 책의 요약

1
열여섯 화랑 서당(원효의 어릴 적 이름), 차별과 불평등, 탐욕과 불의로 가득 찬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그가 본 빛은 불법(佛法)이었다. 그리고 택한 승려의 길에서 스스로 ‘원효(元曉, 새벽)’이라 이름 지었다. 원효가 꿈꾼 세상의 첫 새벽은 그렇게 밝아왔다.

2
시원하게 들이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고 “모든 세계가 분별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깨달음을 얻은 뒤, 원효의 구도는 더욱 뜨거워졌다. 원효에게는 승속을 초월한 삶의 모든 순간이 향상(向上)과 깨달음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였다. 그 길 위에 요석이 있었다.

3
원효가 깨달은 분별없는 본래 마음은 ‘나와 남이 하나 되는 자리’, ‘둘 아닌 하나의 자리’였다. 스스로 파계하고, ‘소성(작은) 거사’라 칭하고, 거지 소굴에서 뒹굴면서 원효는, 그들과 함께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벗어날 ‘지혜의 방편’을 완벽하게 갖춘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났다.

4
‘극락정토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본래 마음을 깨닫는 지금 이 자리가 정토’라고 생각한 원효. 그는 ‘둘로 나뉘지 않는 분별없는 존재의 참모습’ 그대로 바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방편으로,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북치고 꽹과리 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5
원효의 사상적 핵심은 일심(一心), 불이(不二), 일미(一味), 화쟁(和諍)으로 통한다. 생겨남과 사라짐, 삶과 죽음, 미와 추, 나와 남, 있음과 없음, 주관과 객관, 성스러움과 속물스러움, 고요와 움직임 등 모든 분별을 떠날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진리이다.

6
원효는 죽음을 직감하고 저잣거리에서 다시 수행자로 돌아와 토굴로 들어갔다. 젊은 날 당나라 유학 중에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던 토굴과 비슷한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아들 총은 아버지의 유골로 소조상을 만들어 그리워했다. “아버지 계신 극락으로 가고 싶다”라고 읊조리는 총의 뒷모습을 소조상이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았다. 뒤돌아보는 원효의 시선은 1,400년 지난 지금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책속으로 위로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네.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던 잠자리가 사실은 무덤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귀신이 달려드는 공포를 느꼈네.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짐에 따라 똑같은 현상도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네. 이 세상은 오로지 마음뿐이네. 모든 것이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네!” (46쪽)

잠시 후 원효의 무애춤이 시작되었다. 원효의 춤판이 시작되자 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젓가락으로 숟가락으로 난타를 치며 합세했다. 거지 떼들도 질세라 표주박을 두들기며 원효의 춤에 박자를 보태고 추임새를 넣었다. 추임새는 점차 지며 모두의 함성이 되었다. 저마다 가슴에 피맺힌 한을 관세음 보살의 노래로 풀어내고 있었다. 원효는 외쳤다. “뒤집기 춤으로 세상을 뒤집어 거꾸로 된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 봅시다! 잘못 보고 속지 말고 뒤집어야 제대로 보일 것이오.” (56쪽)

“나는 밤에 뜨는 달빛으로 살아가고 당신 원효 스님은 새벽을 알리는 별빛으로 비춰주시구려. 아니 태양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달과 태양은 스치듯 만나고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지요. 그래도 좋습니다. 스쳐 가도 좋아요. 영원으로 간직하면 될 일입니다.” 원효는 요석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72쪽)

“공주로서의 체통과 왕실의 안위를 생각해야 할 것이야. 왕가의 여식과 출가한 스님의 혼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안 될 일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요석 공주가 스님을 연모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왕가에는 늘 괴이한 헛소문들이 있어 왔으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요석은 어찌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진심에 대한 왕후의 반대가 가슴을 도려내듯 아팠다. (74쪽)

의상 스님, 저 차가운 바다가 저를 따뜻하게 안아줄까요? 살아서 당신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이미 저는 죽은 것입니다. 살아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봅니다. 그러니 죽어서, 이렇게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 스님 곁에 있겠습니다.

푸른 바다, 푸른 용이 되겠습니다.
해동 땅으로 스님을 따라갈 겁니다.
저의 환생은 당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의 환생은 당신은 만나는 것입니다. (107쪽)

“스님께서는 버러지보다 못한 저희의 영혼을 위로해주러 오신 거지요? 살아서는 평생 사람대접 한 번 못 받다가 죽어서나마 스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너무 감사합니다요.” 원효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망자의 손을 잡았다. 죽은 사람의 손은 온기도 느낌도 없었다. 원효는 망자의 가슴에 한동안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아프고 멍든 가슴이었다. 원효는 망자의 피맺힌 한이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어 저세상으로 가기를 바랐다. (121쪽)

사람들 속으로 원효가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 환자들의 피고름을 닦아내고 미음을 끓여 먹이며 열을 내리는 약초를 구해오기도 했다. 이미 수행의 과정에서 몸을 치료하는 법을 체득했기에 정성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하나하나 살려내었다.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들은 마치 살아있는 귀신처럼 괴이한 악취를 풍기며 신음했다. 원효는 냇가로 가서 병자들의 옷을 빨았다. 몸이 조금 나아진 아낙들이 원효를 따라와 같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139쪽)

“저는 아버지께서 쓰신 수많은 불법 책을 읽으며 이미 아버지를 깊이 만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는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이라고 하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중생과 함께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신 분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어리석은 총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자라도 밟아보고 먼발치에서 절이라도 올리면 족합니다.” (149쪽)

참선을 한다는 것은 잠깐이라도 골똘히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나를 잊음으로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것이니라. 우리는 앉아서만 삼매에 드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깨어 있으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깨어 있으므로 매 순간 삼매에 드는 것이니 그것은 늘 설레는 일이고 늘 맑아지는 일이며 늘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될 것이다 (224쪽)

“나는 제자를 두지 않는다네. 오로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부처의 길을 걸을 뿐이네. 우리는 이미 하나의 마음이며 하나의 몸일 뿐일세.” 원효는 깊은 음성으로 화엄의 세상이 펼쳐질 벌판을 가리켰다. “앞으로 우리는 화엄벌에서 화엄장을 열어갈 것이네.” (234쪽)

“그리운 마음에 아버님의 유골로 소조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인연에 연연하지 말라 하셨지만, 자식 된 자로서 아버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은 저희들은 중생을 사랑하는 아버님의 마음을 견고히 하고자 합니다. 저 설총, 아버님의 뜻에 따라 중생을 위하고 백성을 위해서 살다가 아버님 계신 극락정토로 가겠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설총은 그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원효의 소조상이 고개를 돌려 설총을 내려다보았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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