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and 49 Days
우리는 보통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사는 것 자체가 고단하기 때문에 먼 미래까지 그려본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다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설령 젊고 건강하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시간 차이일 뿐입니다.
영화 스님은 죽음과 49재에 대한 법문을 많이 해주십니다. 사람이 많이 아픈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통증 때문에 약에 취해서 마비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주 안 좋은 징조라고 하셨죠. 절에 가끔 오시는 어떤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이분의 아버지는 병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 뇌사상태에 빠졌습니다. 그의 가족은 뇌사상태의 아버지를 4개월간 살려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입니다. 이런 결정은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이 가족은 영화 스님께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49재를 즉시 시작해야 할지 4개월 기다렸다가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이럴 때 출가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가족의 뜻을 따라야겠죠?
불교적 관점에서 뇌사상태는 죽음으로 간주합니다. 의학적으로도 죽음이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몸의 온기가 사라지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고, 의식이 떠날 때를 죽음으로 봅니다. 체온은 인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족의 질문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몸은 아직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죽었다고 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이분의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무척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스님은 이들에게 아버지를 그만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질질 끌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나이가 들고 많이 아픈데, 설령 뇌사상태에서 다시 깨어난다 해도 좋은 삶을 살기는 힘들 것입니다. 안 그런가요? 이제 놓아줄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가족이 기다려달라고 했다면, 4개월을 기다렸다가 49재를 해드려야 했을 겁니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고, 어떻게 죽음에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삶에 매달립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괴롭히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는 죽음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가 있습니다. 대승불교에는 아주 포괄적인 정보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 즉 다음 생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로 대승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애도하는 방법에 대해 되도록 울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가 죽으면 주변 사람이 괴로워합니다. 죽은 자의 가족은 번뇌로울 겁니다. 어떤 이는 자책하며 살아있을 때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감정적으로 죽은 자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감정적인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집착을 부리면 죽은 자는 정토에 가는 걸 힘들어하게 된다고 합니다.
비극적인 죽음 대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현재의 삶을 잘 살기 위하여 처절하게 살고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들의 과거 즉 전생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음 생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러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선행, 즉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래야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불교는 매우 간단합니다. 악행을 피하고 선행을 하고, 다른 이를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할 방법입니다.
불교에서 우리의 관심은 죽은 후 기독교의 천상과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법계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게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죽은 후 축생계(Animal Realm), 아귀계(Hungry Ghost Realm) 또는 지옥계(Hells)로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죽을 때 아픔, 괴로움, 분노를 겪으면 낮은 법계로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화롭게 죽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겪는 마음의 경계는 다음 생에 이에 상응하는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영화 스님은 우리가 죽는 순간, 즉 마지막 숨을 쉬기 전 하는 마지막 생각이 다음 생에 갈 장소의 문을 열어준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죽기 직전 마지막 생각이 분노라면 지옥으로 갑니다. 예전에 어떤 여자아이가 사고로 죽게 됐습니다. 그녀의 가족이 영화 스님께 49재를 요청했는데, 영화 스님의 말씀으로는 이 아이가 죽는 순간 너무 깜짝 놀라서 멍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축생계로 갈뻔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교에서는 죽음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은 일단 삼악도, 즉 축생, 아귀, 지옥의 세계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떨어지면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죽으면 사찰에 가서 도움을 청하셔야 합니다.
사찰에 가서 불경이나 부처님의 명호를 염송하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에 찾아가서 죽은 자를 위해 도움을 청하고, 출가자가 정직하게 불경을 염송해 준다면, 죽은 자가 더 낮은 법계로 떨어지는 것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여러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죽은 자를 위해 염불해 주면 된다고 믿는다면, 그건 마치 여러분이 스스로 아픈 자를 집에서 수술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라면 이런 중대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겠습니다.
불교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불법이 있습니다. 바로 49재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복을 지어서 죽은 자가 정토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서방극락정토는 이런 말법시대에 갈만한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49재법은 대승에서만 존재합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생불이 되어 다시 여기 돌아오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그런 걸 권하지 않습니다. 극락정토로 가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정토에 가서 부처가 되는 것이 이 세상에 돌아와서 라마승(불교의 한 갈래인 라마교의 승려)이 되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훨씬 유익합니다.
불법은 자기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신다면,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길지 잘 아신다면, 이 세상에서 왕생하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생의 과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권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훨씬 더 따뜻하고, 편안하고, 돈도 있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지만, 죽은 후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오직 카르마 즉 업만 쫓아와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죽는 순간 과거의 모든 업이 달려와 우리를 괴롭힌다고 합니다. 업보는 우리 스스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업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업보(Karmic retribution)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이에 대해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괴로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몇 안 되는 사람만이 이를 피하며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죽은 후 더 낮은 법계로 떨어지기가 매우 쉽습니다. 죽은 후 업보가 찾아오면, 현재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압도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살면서 업보를 압도적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한번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누구든 죽으면 의존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업보가 오기도 전에 빨리 도망가야만 합니다. 스스로 현생의 업보도 감당할 수 없다면, 죽은 후의 업보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49재의 법입니다.
참고자료: 영화 스님의 영어 법문(2017년 9월 10일) https://youtu.be/u7ea2BHavGE
*덧붙이는 말: 수행과 불교 공부에서 생긴 질문이나 문제가 있으시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다음 글에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