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년 말콤에게서 온 편지
상태바
미국 청년 말콤에게서 온 편지
  • 현안 스님
  • 승인 2021.09.0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7)

미국에서 운영했던 참선 반 참가 학생 중 기억에 남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수십 년간 다양한 영적 수행을 하고 요가를 지도하던 고령의 백인 여성,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을 정도도 극심한 고통을 겪어온 백인 청년, 중국계 캐나다인이자 레즈비언 대학교수, 플로리다에 사는 콜롬비아계 중년 직장인, 천재적인 두뇌의 중국계 엔지니어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중엔 아직도 매주 줌으로 열리는 청주 보산사 참선 교실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참선 반 학생 중 하나였던 말콤은 미국 백인 청년으로 중부지방 출신이었습니다. 말투도 완전 미국 컨트리 스타일(아래 말콤의 유튜브 영상 참고)이었죠. 사실 처음 그를 만났을 땐 참선 반에 오래 다닐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불안증과 산만함 때문에 전혀 요점이 맞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고 참선 자세를 설명해줘도 매번 잘 들리지 않는 듯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참선 반에 오긴 했지만 앉는 자세를 시도하려는 마음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말콤이 참선 반에 찾아왔는데 어쩐지 무척 차분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매일 앉는 연습을 했답니다. 그 후로 그는 계속 진화했습니다. 그냥 앉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위산사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법문을 듣기 시작했고,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서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요즘 뭘 해서 그렇게 많이 변했냐’고 묻기 시작했고, 말콤은 배운 내용을 친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참선의 자세와 기초에 대한 비디오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틈날 때마다 친구들에게 챤(선禪의 중국식 발음) 메디테이션을 소개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그의 순수한 마음이 친구들에게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말콤이 지난해 제게 보낸 편지를 여러분에게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참선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말콤의 모습. 

저는 아주 힘든(hardcore) 명상법을 배워서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 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편히 앉아서 눈만 감는 게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호흡의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챤 메디테이션에서는 아픔과 불편함을 모두 겪어야 합니다. (장시간 가부좌를 틀기 때문에) 다리와 발은 점점 마비되고,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격렬한 아픔의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이런 걸 진작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우린 모두 각자의 길이 있으니까요.

저는 올해 38살로 미국 LA(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도시)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미국 남동부에 있는 주) 작은 마을과 속도가 빠른 LA 사이를 오가며 자랐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달라졌고, 두 가지 환경이 주는 차이점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여기저기로 이사를 다녀야 했고, 고등학교도 6번 옮겼습니다. 그래서 안정성은 부족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최고의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저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늘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집안 사람 중 유일하게 마약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23살에 조지아주(미국 남동부에 있는 주) 유명 대학에 지원해서 장학금도 받았지만, 저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뭐든 똑바로 생각할 수가 없었고,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가야 했습니다.

이후 LA 노스할리우드 지역으로 돌아와 식료품점과 코카콜라 회사에서 8년간 일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번뇌에 사로잡혀 아무도 믿지 못했는데, 특히 영적인 건 뭐든 다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명상만은 늘 배우고 싶었습니다. 워낙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라 항상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처음엔 레이키(Reiki) 기치료 옴 명상을 하게 됐고, 이후에 ‘바키 마가라’라는 곳에서 가르치는 명상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12월 위산사 밋업(Meetup) 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비구니 스님이 절 맞아줬는데 “뭔 이유가 있어서 왔네요!”라고 말하며 영화 스님의 참선 지침서를 건넸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변화시킨 엄청난 책이라 느끼던 차에 위산사의 토요 참선 교실까지 초대받았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나름 몸이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참선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연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반가부좌로 앉은 지 20분 만에 아픔의 고비가 찾아왔거든요. 이후 두어 번 더 참선 교실에 갔지만 계속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건 매일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마음이 동요되고 산란해진다는 걸 잘 몰랐습니다. 얼마 후 아픔을 견뎌내야 마음속 문제들과 막 내달리는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됐습니다. 그 후로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수련했습니다.

요즘 아마존 배달직원으로 일주일에 55시간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빠지지 않고 시간을 내서 앉습니다. 결가부좌 자세로 최소 20~30분씩 매일 앉는 게 유익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안으로 한 시간 도전하는 게 목표입니다.

결가부ㅈ
결가부좌로 매일 수련하는 말콤의 최근 모습.

저는 즉시 스스로 변하고 있음을 알아채기 시작했고, 한 번도 가능할 것이라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인내와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냥 매일 앉는 것만으로도 직장에서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산만하거나 참을성 없던 제가 더 참을성 있고, 생산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직장에서는 업무 집중도를 높여줬고, 퇴근 후 손도 대고 싶지 않았던 일들도 더 수월히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챤 메디테이션은 절 더 강하게 만들어줬고, 몸속 기운을 변화시켜서 번뇌를 없애줬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런 체험 때문인지 저는 늘 모든 이들에게 챤 메디테이션을 권합니다.

이런 건 누구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결가부좌에서 오는 아픔만 견뎌낸다면 언젠가 감사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챤 메디테이션은 제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앞으로 저는 무엇이든 다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영상: 유튜브 채널로 결가부좌 자세를 설명하는 말콤의 모습.

 

사진. 현안 스님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