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 나한도・나한상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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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 나한도・나한상 깊이 읽기
  • 신광희
  • 승인 2021.08.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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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끼고 앉거나
등 긁고 코를 후비거나
그림 1. 선정에 든 나한, 조선 1624년, 순천 송광사.

부처님과 불법을 따르고 수호하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가? 아니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강인한 존재인가? 나한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분들이다. 수행으로 깨달음의 경지인 아라한과를 이룬 스님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한은 일신의 깨달음 도달에만 머물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나약한 중생들을 보살피는 ‘이타행’을 실천하는 분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한은 대중에게는 ‘나도 열심히 수행하면 성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선망의 대상이자, 내 삶의 행복을 도와주는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부처님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제자들에게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이 복덕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특성은 불교 문헌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시각화한 나한상과 나한도를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그들의 모습에는 어떠한 의도와 내용이 담겨 있을까? 나한을 떠올리면 자유롭고 해학적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불가의 스님들은 불·법·승 삼보 중 하나일 정도로 귀한 존재들이다. 나한 역시 불제자들이므로 역대 나한 이미지를 보면 수행자의 본분, 즉 예불과 수행을 비롯해 절에서의 일상생활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경전을 독송하거나 필사하기도 하며 여럿이 모여 경전 내용을 토론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큰스님의 법문을 경청하는 모습도 있다. 암굴(巖窟, 바위에 뚫린 굴)에 앉아 참선에 든 모습(그림 1)도 있고 아미타불 혹은 관음보살 그림을 걸어두고 합장 예배하는 모습도 보이며 향로를 들고 염불하는 모습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승복을 손수 깁기도 하고 개울가에서 승복을 빨거나 서로 삭발을 해주는 모습 혹은 욕실에 들어가는 모습도 묘사되곤 한다. 이는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아라한이라 하더라도 본래 불교 수행자이므로 그 본분에 충실해야 하며 더 나아가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해야 하는 소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신통력으로 중생을 돌보라

나한은 불·보살에 못지않은 위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이들은 특유의 신통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능력으로 중생을 어려움에서 구제한다. 초기 경전인 『사십이장경』 등을 보면, 나한은 하늘을 날 수 있고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며 수명을 연장할 수도 천지를 움직일 수도 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위력은 나한 표현에도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일례로, 응진전 내 나한상을 보면 눈썹이 매우 긴 존자들을 볼 수 있다. 김룡사 <십육나한도>(그림 2)를 보면 눈썹이 너무 길어 옆의 존자와 시자가 들고 있기까지 하다. 

부처님은 나한 경지에 이른 제자들에게 ‘너희는 미륵불이 올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이 땅에 남아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를 내렸다. 56억 7,000만 년이 지난 후 미륵이 올 때까지 중생 곁에 있어야 하므로, 나한은 그들이 지닌 신통력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중생 곁을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해 눈썹이 긴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하며 살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고려와 조선 왕실에서는 국왕이나 비빈, 혹은 세자 등이 병약하면 나한전에 가서 기도하게 했는데, 이는 나한이 ‘무병장수’를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한 조각이나 그림을 보면, 나한이 호랑이를 옆에 끼고 앉아 있거나(그림 3) 여의주로 용을 부르는 모습이 매우 많다. 이 역시 나한의 신통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 경전뿐만 아니라 역대 고승전 등에도 ‘호랑이에 의한 재난이 많았는데 나한이 나타나면 맹수들이 귀의, 복종할 정도였다’는 내용이 아주 많이 쓰여 있다. 맹수들도 그들의 위력에 압도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호랑이는 때론 구법 순례의 길을 동행하며 스님들을 호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가뭄이 들 때마다 나한에게 기도하면서 용이 내려오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우게 했는데, 갑자기 용이 발우 속으로 내려왔고 하늘에서는 곧 큰 비가 쏟아졌다’고 쓰여 있다. 용은 전통적으로 물을 상징한다. 고려 때도 가뭄이 들었을 때 나한재가 빈번히 개최되었는데, 이 역시 나한이 지닌 신통력과 연관이 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가뭄은 중생들이 극복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재해였으며, 중생들은 가뭄이 계속되면 절대자, 특히 나한에게 기도를 통해 의지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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