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두타산 무릉계곡 용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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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두타산 무릉계곡 용추폭포
  • 노승대
  • 승인 2021.08.1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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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두타산 무릉계곡 용추폭포에 다녀왔다.

두타산, 청옥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은 워낙 기암절경이 펼쳐진 곳인 데다, 풍부한 수량과 너른 반석이 어우러져 일찍이 무릉도원에 비견할 만하다하여 무릉계곡이라 불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경이라는 용추폭포까지는 왕복 6km, 급경사 길이 없어 산천풍광을 즐기며 걸어볼 만한 숲길이다.

초입의 삼화사는 신라 때 처음 지어진 사찰로 오랫동안 이 지역의 중심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멸된 후 다시 일으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산사태로 또다시 인멸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농부의 밭갈이에 신라시대 철불이 발견되어 다시 향화를 받들게 되었으나, 옛 절터가 1977년 쌍용양회에 흡수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보물 2점과 무형문화재인 수륙재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무릉계곡은 어느 지정문화재보다도 계곡 전체가 보물이다.

수많은 석각이 남아있는 무릉반석, 이 지역의 정신문화를 잇고 있는 금란정, 깊숙한 계곡가에 있었던 거제사 터나 관음암 등은 다 이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더구나 용추폭포를 오고 가며 만끽했던 여유로운 마음과 청량감은 바로 우리들이 가져갈 수 있는 보물일 것이다.

이보다 더 귀한 보물이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 삼척지방 유생들은 향교에서 유학을 연마했으나 경술국치 후 향교가 폐교되자 금란계를 만들어 그 뜻을 잇고자 했다. 금란정은 해방 후 지었다.

 

한쪽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이 무릉반석은 1,000여 명이 거뜬히 앉을 수 있다. 그 위에 양사언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 묵객의 각자가 있다.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초서 글씨. 무릉도원이며 신선들이 사는 풍광을 갖춘 두타산 명승지라는 뜻이다.

 

반석교에서 내려다 보면 용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다 남긴 자국이 물속에 남아있다. 검은색 돌이 띠처럼 남아 있어 마치 용의 배가 스친 듯하다.

 

삼화사 입구 십이지 석상. 12띠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갖춘 신상(神像)으로 부처를 도와 사람을 보호한다고 한다. 『약사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삼화사 3층석탑으로 석가탑양식을 잇고 있는 신라시대 석탑이다. 보물 제1277호. 상륜부에 여러 부재를 끼워 넣는 철제 찰주(刹柱)가 남아있어 흥미롭다.

 

삼화사 철제 노사나불로 보물 제1292호다. 복원 중 등판에 새겨진 글에 따라 불상은 노사나불이며 880년경에 부모님을 위해 조성했음을 알았다.

 

삼화사 경내에서 남쪽을 바라다본 풍경. 거대한 암벽이 마치 절을 호위하듯 웅장하게 버티고 섰다.

 

학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학소대. 왼쪽 아래 절벽 위에는 학의 모형을 만들어 세웠다. 언제 다시 학의 그림자를 볼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양쪽으로 갈라져서 뻗어 올라간 적송. 늘씬한 미녀의 다리처럼 쭉 뻗어 올라갔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다본 계곡 풍경. 기이하게 솟은 암벽, 넉넉히 흐르는 맑은 물과 듬성듬성 놓인 거대한 바위들이 시원하고 호쾌한 느낌을 선물한다.

 

산을 찾은 이들이 놓아 준 먹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다람쥐. 사람의 손길에 익숙한 듯 갈 듯 갈 듯하면서도 열심히 먹는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겠지.

 

쪽동백나무꽃이 빗속에서도 열심히 피었네. 동백기름은 남쪽에서만 나기에 귀한 여인들이 썼고 어디나 있는 쪽동백 기름은 주로 서민의 아녀자들이 썼다.

 

마치 병풍이 펼쳐진 듯 높이 솟은 암벽이 길게 막아섰다. 이름도 병풍바위다.

 

양쪽 수직 절벽 사이로 계류가 흐른다. 수량이 좀 더 늘어나면 30m 풀장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양쪽계곡에서 물이 쏟아지니 이름도 쌍폭이다. 태고의 세월을 지내온지라 물빛도 검다. 이무기라도 사는 걸까?

 

용추폭포 초입에 쓰여 있는 각자. 이태백의 시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에서 ‘별유천지(別有天地)’만 초서로 썼다. 인간 세상이 아닌 세상, 신선 세계다.

 

용추폭포 중 제일 아래 폭포다.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어 그 위의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급경사 계단 길을 다시 올라가면 중간 폭포를 볼 수 있다.

 

유한준(1732~1811)의 이름이 무릉반석에도 크고 깊게 새겨져 있더니 여기에도 있다. 적어도 200년이 넘은 글씨다. 그 아래 용추 각자도 있다.

 

철제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가 바라다본 제2폭포. 제1폭포는 다시 오른쪽으로 숨어 잘 보이지 않는다. 수량이 늘어나면 볼 만 하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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