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스님과는 어깨춤을, 절에서는 소리와 빛깔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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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스님과는 어깨춤을, 절에서는 소리와 빛깔을 타고
  • 임종욱
  • 승인 2021.07.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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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학자이자 서화가(書畵家), 금석학자다. 그는 조선 후기를 풍미했다고 알려진 실학파의 일원이었지만, 학문의 방법론과 예술적인 실천으로 이 이념을 실현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시서화(詩書畵) 방면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과 성과를 보여주었고, 문화유산의 고증이나 전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이런 점 때문에 김정희는 시대적 제약을 넘어 인문주의자로서 그 가치를 평가받아 마땅하다.

김정희가 살다간 18, 19세기는 걸출한 선승들이 많이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주던 시기였다. 그들의 논리와 자세는 고루한 공리공담에 염증을 느끼던 진보적인 유가 지식인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지향하는 바도 일치했다.

김정희가 남긴 한시는 제목으로 보면 모두 377수가 된다. 이 가운데 불교를 노래한 작품은 40수 정도다. 실제로 그의 한시에는 알게 모르게 불가의 용어나 표현, 사고가 저변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도반으로서 스님들을 대하다

작품에서 볼 때 김정희가 평생 교유한 스님은 15명 안팎이었던 듯하다. 이들 중에서 초의의순(草衣意詢, 1786~1866)과의 교분은 남달랐다.

초의의순은 조선 후기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그의 정신과 관심은 워낙 닿아있는 방면이 넓고 진지해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당대 석학들과 교분했고, 개성 강한 시의 세계를 보여줬으며, 특히 우리 차에 쏟은 정성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정희 또한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좌절을 겪고 불우했을 때 많은 위로와 용기를 그로부터 얻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긴밀한 유대감을 가졌다. 김정희가 38편에 달하는 편지글을 초의에게 보낸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정희는 초의에 대해 꽤 많은 시를 남기고 있다. 이들 시에서 그는 진지하면서도 오묘한 논의와 생각들을 펼쳤다. ‘초의에게 주다(贈草衣)’란 제목의 5언 고시를 읽어본다.

竪拳頭輪頂(수권두륜정)      

두륜산 마루에 주먹 세우고

搐鼻碧海潯(휵비벽해심)      

푸른 바다 기슭에서 코를 벌름거리네.

大施無畏光(대시무외광)      

홀로 무외의 빛을 크게 베풀며

指月破群陰(지월파군음)      

지월로서 뭇 어둠을 깨뜨리는구나.

福地與苦海(복지여고해)      

복지이건 고해이건 가릴 것 없이

摠持一佛心(총지일불심)      

하나의 부처님 마음을 항상 가졌네.

淨名無言偈(정명무언게)      

정명은 말 없는 게의 노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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