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말라버린 삶에서 ‘평생의 공적’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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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말라버린 삶에서 ‘평생의 공적’ 이루다
  • 석한남
  • 승인 2021.07.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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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 제주에서 피운 꽃
<김정희 필 세한도(歲寒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손창근 기증. 추사는 제주 유배 생활의 신산한 마음을 담아 황량하고 쓸쓸한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 유배를 떠나다

의금부의 문초(問招, 죄를 따져 물음)는 매섭고 잔인했다.

안동 김씨 가문이 경주 김씨 가문을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공작이었다. 10년 전 마무리 되었던 윤상도의 옥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추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 오히려 안동 김씨가 얽혀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상소 당사자인 윤상도 부자가 능지처참을 당했고, 탄핵 주체였던 안동 김씨 김양순(金陽淳)이 고령의 몸에 신장(訊杖, 죄인을 신문할 때 쓴 몽둥이)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추사는 6차례에 걸친 문초에 36대의 신장을 맞아 초주검이 됐다. 그는 당시 우의정이었던 친구 조인영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해남 이진포에서 제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바닷바람이 살을 에는 1840년 음력 9월 27일의 일이다. 

 

절망과 분노의 시절

절도안치(絶島安置). 말 그대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것이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귀양살이하는 집 둘레에 탱자나무 가시를 둘러 죄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최악의 유배형이다. 추사에게 내려진 형벌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한 가장 혹독한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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