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미얀마 불교의 참여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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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미얀마 불교의 참여와 갈등
  • 김남수
  • 승인 2021.06.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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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박사(동국대 강사, 불교문예연구소 연구원).

정기선 박사의 미얀마 인연은 1990년대 초부터이다. 대학 졸업 직후 공채로 여행사 입사했다. 외국 여행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직장 상사의 제안으로 함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보고자 나간 곳이 미얀마였다. 미얀마 초기 정착에서 가장 큰 고역은 고수가 들어간 미얀마 음식이었단다.

미얀마 일을 하면 할수록 ‘이 나라에서는 불교를 모르면 살아남기 힘들겠구나, 불교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당시 미얀마 승가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였던 우 삔야디빠 스님과 우연히 인연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승가대학을 운영하면서 미얀마인들을 위한 구제사업, 외국 대사관과 연결하여 대학생들을 위한 외국어 교육 등 여러 일에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던 분이었다. 스님이 건네준 책, 그리고 이어진 스님과의 유발제자의 인연으로 불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30년. 근래에는 동국대에서 미얀마 불교를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쳤다. 지금은 미얀마 불교문화 중에서 한국의 불교가 수용할 수 있는 사안들을 고민해왔으며, 코로나19 이전까지 미얀마 현지를 오가며 조사와 연구 활동을 전개했다. 

인터뷰는 5월 27일 불광미디어 사무실에서 진행되었으며, 이후 전화로 보충하였다.

 

▷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미얀마 현재 상황과 최근에 들은 소식은?

미얀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에 쿠데타로 인하여 미얀마가 제가 살았던 1990년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군부독재의 폭압,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미얀마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하여 매우 우려가 큽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지금의 항쟁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양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만달레이를 비롯한 지방에 있는 여러 중소도시에서 아직도 많은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에 항쟁하고 있고요. 그런 항쟁이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 국경 지역에서는 국지전이 예전보다 심하게 벌어지고 있고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얀마 내부의 힘만으로 풀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글로벌부디스트 홈페이지)

제가 현재까지 미얀마와 접촉을 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메신저와 페이스북이었습니다. 현지 교민과는 보이스톡으로 소식을 주고 받았고요. 그렇지만 인터넷이 자주 끊기고 현지인들도 불심검문 때문에 많이 조심을 하더군요. 

만달레이 미야타웅 수도원에 항쟁을 주도하던 스님은 5월 16일 이후로 저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스님에게서 들었던 소식은 5월 10일 밤, 군부가 갑작스럽게 수도원에 들이닥쳐 항쟁에 사용했던 도구들을 다 수거해 가고 수도원 안에 거주하던 정인(淨人)들과 일반 재가자들을 다 잡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스님을 체포하러 들어왔는데 스님께서 운이 좋으셔서 미리 알고 피신해 있는 상태입니다. 피신한 이후로 딱 한 번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 스님이 2007년 항생에도 참여했던 스님이세요. 스님께서 저에게 전해주는 정보가 미얀마 승가의 현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계기였는데, 스님께서 그런 상태에 처해 있어 굉장히 아쉽고 스님께서 평안하시기를 빌고 있습니다. 

 

▷ 미얀마에 애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2007년 샤프란 혁명을 생각합니다. 당시에 스님들의 참여와 폭이 아주 넓었었는데, 이번 쿠데타에서는 그렇지 못한 거 같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미얀마와 관계를 맺고 있고 지금도 미얀마의 불교문화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여러 사람이 저에게 쿠데타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가장 많이 물어보는 공통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왜 미얀마의 스님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의아했습니다. 우리나라 일부 언론에 나온 것이나 뉴스에 나온 것을 보면 신부님이나 수녀님께서 군경 앞에 무릎 꿇고 시위대를 잡아가지 말 것을 호소하는 그런 장면들이 여러 번 뉴스에서 방영되거나 신문에 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의아하게 생각해서 왜 미얀마 스님들이 2007년 샤프란 혁명과 달리 움직이지 않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내가 알기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독립 초기, 그리고 1988년에 일어난 8888항쟁, 1990년대의 만달레이 항쟁, 2007년도에 샤프란 혁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항쟁에 있어서 스님들이 지도자이거나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2021년도 쿠데타에는 미얀마 스님들이 움직인다는 뉴스를 저도 별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미얀마 현지에 있는, 사실 제 조카처럼 생각하는 아이를 통해서 미야타웅 행진을 주도하고 있는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정기선 박사 제공)

쿠데타로 미얀마의 사원 수도원에 대한 상황은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 스님을 통해서 여러 가지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는데, 제가 그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그런 상식을 많이 뛰어넘어 미얀마 스님들이 아직도 여전히 민중 앞에서 여전히 항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스님의 경우에는 가사를 벗어 던지고 군경의 앞을 막아서면서 양팔을 벌리고 ‘나를 쏘고 가시오. 당신들은 이 시위대를 잡아갈 수 없습니다’라면서 항의하는 스님들도 계시고 상당히 많은 사람이 여전히 항쟁 행진을 주도해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미야타웅 항쟁의 경우에는, 2월 1일 쿠데타가 발생하고 일주일 후에 만달레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월 11일까지 그 항쟁 행진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무려 110여 일간을....

총탄이 많이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폭발음에 울리고 사망자 속출하고 있는 그 만달레이 거리에서 스님과 일반 재가자들이 불교 깃발과 여러 가지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행진이 그나마 평안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 행진을 유지했다는 것이고요. 이 행진의 선두에 스님들이 앞장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발우를 뒤엎다

두 번째는 미얀마 스님들이, 특히 소장파 스님일수록 복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복발(覆鉢), 복발 갈마(覆鉢 羯磨)라고 해서 율장에 규정이 되어 있는데 재가자가 스님들에게 불이익을 도모하려고 하거나, 스님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으면 그 재가자의 집에서는 공양을 받지 않는 그런 처벌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지 못하게 되면 그 집안은 공덕을 지을 수 없게 되는 가장 강력한 처벌 규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복발갈마를 진행하는 스님들. 사진 정기선 박사 제공.

현재 미얀마의 스님들이 군부에 대해서 공양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군부의 공양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거든요. 

외국인 수행자들의 복발 운동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5월 15일 촬영된 것인데요, 미얀마 승단의 전통은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은 아마도 비구니계는 다른 나라에서 받고 미얀마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인 듯합니다. 이같이 최근까지도 스님들의 복발 운동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발우를 뒤엎은 외국인 비구니 스님들(5월 15일 촬영). 사진 정기선 박사 제공

▷ 2007년 스님들이 주도한 샤프란 혁명에 놀란 군부가 아무래도 승단과 스님들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겠죠? 

2021년도 일어난 쿠데타에서 스님들이 (예전과 같이) 나오지 못하게 된 몇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쿠데타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2007년도에 샤프란 혁명까지 들어가야 하는데요, 샤프란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시에 샤프란 혁명의 주요 지도자가 스님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우 감비라(U Gambira) 스님이 계셨는데. 스님이 전국버마승려연합(ABMA)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었죠. 이것이 촉발되면서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의 여러 가지 폭압을 반대하는 여러 가지 항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 감비라(U Gambira) 스님. 사진 위키피디아.

이때 군부가 좀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31명이 목숨을 잃었거든요. 항쟁은 그 당시에 진압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요구에 의해서 2008년도에 미얀마에서 신헌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2007년도 샤프란 혁명 당시에 항쟁에 참가했던 스님들과 여러 승가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던 군부가 이번 2021년도에는 쿠데타 이후 주요 대규모 사원과 수도원에 무언의 압박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2007년 샤프란 혁멍. 사진 국제엠네스티
2007년 샤프란 혁명. 사진 국제엠네스티.

실제로 비교적 규모가 큰 만달레이의 한 수도원에는 주지 스님을 찾아가서 ‘스님들은 스님들의 의무만 다하십시오’ 이런 압박성 발언을 한 경우도 있고요, 주지 스님은 그것에 대해서 ‘승려의 의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송하는)기도하는 것이고 수행을 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중생들의 평화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을 한다’까지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과거 2007년의 샤프란 혁명 당시와 달리 현재 미얀마 승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미얀마의 스님들이 현재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군부의 압박과 외부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과거와 같이 원활하게 항쟁에 앞장설 수 없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탑의 나라, 미얀마

그러나 미얀마의 승가는 언제나 항상 국가적인 위기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참여해온 역사적인 전례가 있습니다. 다만 일부 친정부적인 성향의 스님들을 비롯하여 장로급 스님들께서 군부 쿠데타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에 대해 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일반 민중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미얀마 스님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침묵으로만 그치지 않고 아마 곳곳에서 여러 가지 구호의 손길, 자비의 손길, 여러 가지 평화의 손길을 미얀마 시민들과 함께할 것으로 굳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부는 특히 대규모 승원을 일상적으로 감시하였다. 집단으로서의 승단이 나서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정기선 박사는 양곤과 달리 만달레이를 비롯한  지방 도시는 아직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양곤은 외국인과 대사관이 많이 있는 곳이기에 군부가 초기부터 진압한 곳이고, 현재 군부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지역으로 본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만달레이는 식민지 시대부터 여러 항쟁의 본거지였기에 마소에인, 모가웅 등의 수도원에서는 복발갈마와 함께 내부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극우 불교 민족주의 승려 ‘우 위라투’
미얀마 승단의 구조와 딜레마(예고)

미얀마 승단과 스님들에 대한 기대는 우리만은 아닌 듯하다. 예상하듯이 미얀마 승단도 위로 갈수록 보수적이고, 항쟁에는 소장파 스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승단의 참여와 비참여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기대와 냉소, 미얀마 승가의 내부 구조에 대해 마지막으로 다루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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