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학산 대원 대종사 | 정가 | 29,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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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1-05-26 |
분야 | 불교 |
책정보 |
판형 신국판(152×225mm)|두께 26mm | 양장 | 440쪽 ISBN 978-89-7479-919-9 (03220) |
한국불교계의 살아 있는 큰 스승, 대원 스님의 삶과 수행
마음의 어둠을 단박에 끊어내는 선(禪)으로 풀다
불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 있다. “남진제 북송담”. 부산 해운정사의 진제 큰스님과 인천 용화사의 송담 큰스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이제는 “남진제 중앙대원 북송담”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선지식으로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 큰스님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대원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살아 있는 큰 스승이다.
대원 스님은 세납으로 팔순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름과 겨울, 여섯 달의 안거 때마다 방부(房付, 선방에 들어가 정진하겠다는 신청서)를 들인 후학들과 나란히 용맹정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평생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온 스님의 치열하고 올곧은 수행 여정과 지혜의 가르침을 모았다. 출가자와 재가자에 대한 경계를 두지 않고 수행을 지도하며 가르침을 펼쳐온 대원 스님. 책갈피마다 스스로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라는 깨우침의 길이 펼쳐진다.
대원 스님은 출가 이후 제방 선원을 돌며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지식을 모시고 수행하며 공부를 점검받았다. 이 책에 담긴 대선사들과 대원 스님이 나누었던 법거량(法擧揚, 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은 요즈음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스승과 제자의 불꽃 튀는 선담(禪談)은 마음의 어둠을 단박에 끊어내는 선(禪)의 정수, 그것이다. 이 밖에도 스님의 수행기, 법어, 법문, 대담을 통해 대원 큰스님의 사상과 법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학산 대원 대종사(鶴山 大元 大宗師)
1942년 경북 상주 출생. 1956년 만 14세의 나이에 상주 남장사로 출가(은사: 고암 스님, 계사: 동산 스님)하여, 1958년(만 16세)에 사미계를, 1962년(만 20세)에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6년 일대시교를 이수한 뒤 혼해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21년간 제방선원을 다니며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여러 선지식들 회상에서 정진했다.
1972년 해인총림에서 방장실을 찾아 참문하고 공부를 점검하던 중 홀연히 깨닫고 오도송을 지어 고암 상언 대종사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1986년 전법게와 부촉을 받았다. 같은 해 계룡산 제석골 제석사 옛터에 학림사를 창건하고, 1995년 오등선원을 열어 조실로 추대된 큰스님은 2001년에는 오등시민선원을 개원하였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최초로 진행하기도 했다.
2010년 전국선원수좌회 수석대표를 역임하였으며, 2013년에는 해인총림 서당, 고암문도회 회주로 추대, 동년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위원에 위촉되었다. 또한 2014년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서받았으며, 2017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자문위원,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의장에 위촉, 고암문도회 문장으로 추대되었다. 큰스님은 현재도 간화선 수행 가풍의 진작과 선불교 대중화에 진력하고 있다.
법어집으로 『철벽을 부수고 벽안을 열다』, 강설집으로 『무구자 도인 주해 반야심경』, 『대주선사어록 강설』, 『금강경오가해 강설』 등이 있으며, 현재 BBS불교방송에서 『조주록』을 강설하고 있다.
착어
一. 학산 대원 대종사 수행기
출가
행자 시절 별명 “대근기”
첫 번째 오도
일대시교를 이수하다
두 번째 오도
고암 스님 - “팔구에 바다도장에서 보세”
전강 스님
금오 스님
성철 스님
군 입대
세 번째 오도
영운견도와 오매일여
향곡 스님
경봉 스님
전법을 받다
월산 스님
계룡산 학림사 창건 인연
二. 학산 대원 대종사 법어‧법문
|상당법어|
무슨 곳을 향해 이 세상에 출두함인가
일체중생이 존귀한 성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오두생모
진실하고 청정한 본심
본래 없는 것
마음 부처의 눈을 열어 성불하리
무엇이 성도인가
|초청법회 법어|
여러분이 다 부처입니다
수행으로 행복 찾기
확실히 살아 숨 쉬는 공부
한로축괴, 사자교인
선과 깨달음에서 본 인문학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것
절대 평등한 존재의 가치
주인으로서 복되게 사는 법
닦아서 얻어지는 게 아닌 것
|도서 수록 법어|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본분소식으로 만천하를 다 응하고 쓰니 매일매일이 좋더라
화두란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주제 법문|
화두 해결에 생명을 걸어 보자
구모토각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
대승보살의 마음
바로 알아차려라
마음의 눈
코로나19 사태와 인과법
망념, 가장 무서운 병균
무엇을 어디서부터 닦느냐
모든 건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뜻대로 잘 사는 법
三. 학산 대원 대종사 인터뷰‧대담
본래 깨끗한 마음 알아야 시비 없이 살 수 있어
수마 조복 받으면 공부 쉽고 자신감 생긴다
세상 시름 싹 날린 선승의 사자후
“어려워도 살아 보겠습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효봉, 고암, 경봉, 향곡, 성철 스님을 잇는
한국불교 선종사(禪宗史)의 산증인
충남 공주에 위치한 계룡산 제석골. 이곳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가 확연하다. 화려한 간판 불이 경쟁하듯 번쩍이는 모텔촌을 지나 낮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네온사인 불빛에 반사되어 더 어수선해진 마음은 순간 정리되고, 계곡물의 흐름마저 정지된 듯 고요가 찾아든다. 학림사(鶴林寺) 오등선원(五燈禪院)에 닿은 것이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선불장(選佛場)이자 용맹정진의 가풍으로 이름난 이곳에서 낮과 밤의 경계는 무너진다. 전국에서 찾아와 방부를 들인 수좌들의 화두 일념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마저도 소음에 불과하다. 이곳의 선장(禪杖)이 바로 학산 대원(鶴山 大元) 대종사(大宗師)이다.
대원 스님은 1956년 만 14세 어린 나이에 출가를 결심하고 스스로 절(상주 남장사)로 들어갔다. 당시 주지스님은 절에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열네 살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워도 살아 보겠습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그 다짐처럼 스님은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꿋꿋이 공부를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참선(參禪)에 정진해 온 이 시대의 진정한 대선사(大禪師)는 그동안 걸어온 세월의 흔적이 무색하게 세납 팔순의 나이에도 출가자, 재가자의 경계를 두지 않고 나란히 앉아 용맹정진해 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큰스님의 형형한 눈빛은 마주 앉은 이의 마음을 꿰뚫는 힘이 있다.
“자기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너뿐이다!”
한국 선종사에 남을 법거량의 기록
치열한 구도의 길에 스님은 막힘이 없었다. 구박과 일갈, 불친절함으로 일관한 스승의 방편에도 지치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오직 한 가지 염원으로 스님은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지식을 찾아가 문답을 주고받으며 수행을 점검받았다. 책 전반부에 서술된 대원 스님과 선지식의 법거량(法擧揚)의 일화를 통해 우린 구도에 대한 수행자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우리 선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이 더 빛나는 이유는 스승과 제자의 문답으로 단박에 드러나는 깨침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께서 물으시길,
“그럼 너는 오매일여를 어떻게 정의 내리겠는가?”
“오매일여는 만들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오매일여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음만이 영원한 오매일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네가 오매일여에 대해 한마디 일러 보아라.”
“푸른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푸르른데, 진흙 속에서 해와 달은 항상 뜨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 성철 스님께서 흔쾌히 손을 잡으시면서 기뻐하셨다.
“그나마 오매일여와 씨름하고 자기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너뿐이다!”
(-성철 스님과의 문답 중에서)
“아무리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러면 잣나무에 올라가게. 꼭대기에 손을 잡을 수 없는 끝까지 올라가!”
“끝까지 올라가서 어찌합니까?”
“거기서 한 발 내딛고 나갔을 때, 그때를 당해서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이겠느냐?”
(-고암 스님과의 문답 중에서)
젊은 날 대원 스님의 모습에서 우린 수행자의 용맹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 법거량이 선사들의 할(喝)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선사들에게 자신의 공부를 점검받던 선불교의 전통이 지금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수행기는 오늘의 불교계에 ‘의심과 분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오도, 그리고 깨달음 이후의 길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행자 시절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스님의 별명은 대근기(大根機)였다. 어려운 수행을 끝낸 큰 수행자라는 뜻이다. 배고픔과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참기름 한 방울까지 간섭하는 스승의 훈계와 다그침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스승의 행동 하나, 무심코 던지는 말의 행간에서 스님은 고심을 거듭하며 그 깊은 뜻을 헤아리려 했다. 스님은 모두 세 번의 오도(悟道, 깨우침)에 이른다. 깨우침에 대한 간절한 염원, 반드시 이루겠다는 절차탁마의 태도, 그리고 스승에 대한 믿음이 그 과정에 녹아 있다.
5년여 공양주 생활을 군말 없이 해내던 스님의 일화이다. 50명 분의 밥을 가마솥에 앉히면 늘 밥이 눌었다. 밥이 눌면 스님이 먹을 밥은 없었다. 배가 고파 눌은밥을 주걱으로 긁어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나타난 스승이 호통을 치며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밥을 태워 절집 재산을 없앴다는 명목이었다. 스님은 밥이 눋지 않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님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그 기도 소리를 노스님이 듣고는 밥이 눋지 않는 법을 알려주곤 이렇게 말했다. “다른 놈은 다 도망갔는데 너는 가지 않았구나.” 노스님은 스님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했더니 밥은 더이상 눋지 않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바로 일념(一念)과 스승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대원 스님은 1986년 학림사를 창건하고 1995년 후학 양성을 위한 오등선원, 2001년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오등시민선원을 열었다. 스님이 평생 보여준 치열한 구도의 길이 많은 이들의 감화를 불러와 이뤄진 일이다. 수좌들의 공부 점검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가르침을 열어 준 스님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생활선(生活禪)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고(苦)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깨달음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가. 스님은 행(行)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의 에너지 기운을 밖으로 드러낼 때 천하 만인이 다 좋아하게 됩니다.” 스님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깨끗한 본성을 드러내도록 이끄는 것. 대원 스님의 공부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큰스님의 피땀 어린 수행
대중을 위한 바른 이정표가 되다
이 책은 지난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학림사 오등선원에서 펼친 법문은 물론, 제방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설하신 수많은 법문 중 31꼭지를 선별하여 담았다.
황금으로 만든 집에서 황금 침대에서 잠자고, 황금 쟁반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의식이 잘못된 사람이 일시적으로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해도 곧 퇴락하여 가난해져서 열악한 환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깨끗한 의식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 동산(洞山)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세간에서 무엇이 제일 괴로운가?”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지옥이 제일 괴롭습니다.”
동산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느니라. 이 옷을 입은 인연으로써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이니라.”
(-본문 중에서)
올해로 세수 여든, 후학을 가르치는 일은 조금 내려놓아도 될 때이지만 스님이 주장자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망념(妄念)에 오염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삶을 사는’ 대중들 때문이다. 시대의 스승이자 수행자로서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참으로 어렵고 혼탁한 시절, 그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우치도록 도와 대자유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큰스님의 원력은 푸른빛이 형형한 칼날 같다. 법석(法席) 위에서의 걸림 없는 법문 가운데 뿜어져 나오는 할은 자성(自性)을 캄캄하게 덮어버린 우리의 마음 앞뒤를 단박에 끊어내기 때문이다.
本來淸淨眞自性(본래청정진자성)
不假修證不費力(불가수증불비력)
人人卽用直此心(인인즉용직차심)
卽是如來慈悲行(즉시여래자비행)
본래 청정해서 참 자성이기 때문에
닦아 증득함을 빌리지 않고 힘을 소비할 것이 없다.
사람 사람이 바로 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쓰면
곧 이것이 여래의 자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스님의 원력은 선사의 향기가 밴 법력(法力)으로 여문다. 스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고 다 갖추고’ 있지만 ‘병들고 어리석어 보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 칼날을 드리운다. 내 앞에 놓인 화두를 목숨 걸고 참구하여 타파해야 한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깨 위로 내리꽂히는 죽비 같다.
대원 큰스님의 첫 법어집이 출간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그 자체로 길을 헤매고 있는 대중을 위한 바른 이정표가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지난한 길 위에 있는 우리들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큰스님의 피땀 어린 가르침이 있어 다행이다.
어느 날은 주지스님이 ‘사라’를 가져오라 하셨다. 그런데 ‘사라’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감히 묻지 못하고 채공간으로 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가지고 갔다. 네 번이나 연거푸 그게 아니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그때 한 생각 난 것이 ‘사라가 다른 게 아니라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나오는 ‘사라사라 시리시리’의 그 사라를 말하는구나. 이제 알았다!’ 하고 스님께 갔다.
“사라 가지고 왔느냐?”
“예! ‘사라사라 시리시리’가 아닙니까?”
“저놈이 미쳤구나!” _ 29쪽
“관세음보살을 하니까 내가 도를 통했는가, 환히 다 보이고 아는 게 나왔습니다.”
“뭐? 아는 게 나와? 뭘 알았는데?”
“신도가 며칠 전에 몇이 오는 게 보이고, 스님들한테 편지 오는 게 다 보이고, 기피자들 잡으러 순경이 오는 게 미리 보이고……, 다 보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은 심리가 어떻고 하는 게 다 보입니다.”
“아! 그렇게 알아졌어?”
“예. 그게 견성(見性)한 건 아니겠지요?”
“견성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절 집안에 아주 삿된 고약한 무당이 하나 나오겠어. 이거 큰일났네!” _ 38쪽
“도자기를 굽다가 작품이 잘못되면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공은 잘못된 작품을 가차 없이 꺼내서 버리고 새로 도자기 작품을 구워냅니다. 새로 만들어야지요. 그러면 되지 뭐가 어려울 게 있습니까?” _ 82쪽
성철 스님께서 물으시길,
“그럼 너는 오매일여를 어떻게 정의 내리겠는가?”
“오매일여는 만들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오매일여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음만이 영원한 오매일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네가 오매일여에 대해 한마디 일러 보아라.”
“푸른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푸르른데, 진흙 속에서 해와 달은 항상 뜨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니 성철 스님께서 흔쾌히 손을 잡으시면서 기뻐하셨다.
“그나마 오매일여와 씨름하고 자기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놈은 너뿐이다!” _ 105쪽
“그럼 저도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적양화의 의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자네 밥 먹었는가?”
“예. 먹었습니다.”
“바리때 닦았는가?”
“예. 바리때 닦았습니다.”
“닦았으면 가서 차나 한잔 먹고 쉬게!”
“스님, 그건 마음에 썩 닿지 않습니다. 달리 한마디 간단하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눈동자 안의 사람이 수(繡)놓은 꽃신을 신었느니라.” _ 131쪽
우리 모두의 때 묻은 의식을 털어 버려야 됩니다. 의식이 전환되어 본래 깨끗한 마음, 태양보다 밝고 달보다 더 원만한 이 마음을 확실히 회복하면 머무른 바 없는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머무른 바 없는 마음이란 금강경에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킨다(應無所住 而生起心).’라는 말과 같습니다. 머무른 바 없는 마음을 알려면 무아(無我)의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무아란 내가 없는 나를 바로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양 아닌 모양(非相之相)의 근본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엄청나 게 변화하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의 에너지 기운을 밖으로 드러낼 때 천하 만인이 다 좋아하게 됩니다. _ 172쪽
‘응무소주’의 실체가 그렇습니다. 양변을 뛰어난 세계, 대립된 양변을 뛰어난 차원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실체이기에 귀천이 없고, 고하가 없고, 성인이니 중생이니 신이니 하는 일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여자성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응무소주’라는 머무르는 바 없는 그 실체를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의 세계에서는 누구나가 다 평등합니다. 그 세계를 우리가 어떻다고 말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불가사의한 세계를 ‘이생기심’이라 하고 그 세계를 밖으로 드러내서 마음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_ 258쪽
재앙이 없는 편안하고 복된 나라가 되자면, 우리 인류의 의식에 망념(妄念) 공해가 없어야 가능합니다. 우리의 참나를 바로 보고 참나로 돌아와야 됩니다. ‘나는 무엇인가?’ 틈날 때마다 시간 있을 때 자신을 돌이켜 자신의 불성, 참 면목을 보십시오. 모든 소망이 다 이루어집니다. 본래 만족되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완벽한 대만족을 이루고 사는 분이 됩니다. _ 279쪽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말씀하신 그 의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지혜 덕상을 다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부처님과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자리를 여러분이 즉시 보고 알라고 합니다. 애먹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의심하고, 닦고 어쩌고, 이런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직하에서 바로 보고 알라고 합니다. _ 285쪽
여러분이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가만히 돌이켜서 마음 따로, 몸 따로 있지 않음을 한 번 본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도, 망상도 일체가 본래 공이어서 흔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보고 난 뒤에는 ‘부주유무공(不住有無空)’이라, 있다, 없다 공했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무와 공, 더 나아가 그 중간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대력과량인(大力過量人)’이라, 큰 힘을 갖춘 사람은 어떤 양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즉 어떤 한계를 지나간다는 것이지요. 모든 한계를 넘어갑니다. 넘어간 사람이니 ‘두두개루설(頭頭皆漏泄)’이로다, 천태만상, 두두물물이 모두가 다 항상 이 자리를 역력하게 누설을 하고 있습니다. _ 286-287쪽
선재동자는 53선지식을 친견할 때마다 절대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관상, 사주 보는 사람을 선지식이라고 거기서 도를 배우라고 하면 선재동자는 믿고서 갔습니다. ‘분명히 여기에 진리의 도가 있다. 이분이 가르치는 관상, 사주 보는 데 무슨 진리가 있는지 배워 봐야겠다.’ 하고 발 벗고 달려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다 생각에 분별해서 가지고 있는 주견이 있는데, 그게 무너지지 않고는 백천 번 법문을 들어도 바람결에 스쳐갈 뿐이지 가슴 깊숙이 심금을 울려 뒤집어지게 하는 한마디가 안 되는 것입니다. _ 355쪽
중생이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 자체는 끊임없이 채워 주어도 만족한 게 없습니다.
중생심은 완벽한 게 아니라서 항상 불안하고 괴로운 것이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중생심을 가지고 하는 사업은 한때 좀 된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안 되고 망할 수 있는 소지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_ 358쪽
“불성의 마음이 있는 걸 확실히 믿어야 된다. 저 땅속에 금이 있는데, 저기에 금이 있다는 말을 네가 믿으면 저 땅속을 파 볼 것이고, 안 믿는다면 땅속을 안 파볼 것 아니냐?” _ 362쪽
여러분의 망념의 병균, 그게 가장 무서운 건데 망념의 병균을 왜 끌어안고 있느냐? 그걸 밖으로 풍기지 마라. 그것이 세상에 만 가지 재앙을 일으키는 근본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걸 해결하자고 우리는 이뭣고를 하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_ 3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