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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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예고
  • 송희원
  • 승인 2021.04.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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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 예고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사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울진 불영사 불연’을 비롯해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등을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어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3구의 좌상은 모두 3m가 넘는 초대형 불상으로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1635년(인조 13) 당대 유명한 조각승인 청헌과 응원, 인균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만든 17세기의 대표적 불교조각이다.

특히, 삼신불의 복장유물 등 관련 기록이 최근 발견되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1630∼1636)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시기(1634∼1635년)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

발원문에 의하면 전국 승려집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팔도도총섭을 역임한 벽암 각성(1575∼1660)의 주관 아래 선조(재위 1567∼1608)의 8번째 아들 의창군 이광(1589∼1645)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1588∼1644) 부부 등 다수의 왕실 인물과 승려 580여 명을 포함한 총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을 갖춘 대좌(臺座, 부처의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 다리를 서로 꼰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 솜씨로 인해 중후한 느낌을 더한다. 이 삼신불상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流派)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 응원, 인균과 제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완성한 기념비적인 대작으로, 이는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 의창군 이광 등 왕실의 후원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 유일하게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불로 표현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할 뿐 아니라 예술‧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이므로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울진 불영사 불연’은 1670년(현종 11) 화원(畵員)으로 추정되는 광현, 성열, 덕진 등이 참여해 조성한 2기의 불교의례용 가마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약 20기의 조선 후기 불연(佛輦, 가마)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사례이다. 불교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연은 불가(佛家)의 불보살상, 사리, 경전, 불패(佛牌, 불보살의 존호나 발원내용을 적은 나무패), 영가(靈駕, 불가에서 망자를 뜻하는 말) 등 예배의 대상을 가마에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오는 시련의식(侍輦儀式)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법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불연은 모두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극히 드물다. 반면 ‘울진 불영사 불연’은 2기 모두 1670년이라는 분명한 제작시기와 승려 학종이 좋은 장인을 만나 불연을 제작하게 되는 동기와 배경, 제작에 동참한 시주자, 불연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울진 불영사 불연. 사진 문화재청 제공.

전체적으로 단아한 균형미를 갖추었고 나무로 얽어 만든 둥근 궁륭형(穹窿形) 지붕과 네 귀퉁이의 봉황조각, 난간의 용머리 장식, 가마의 몸체 전면에 표현된 연꽃, 국화, 화초 장식 등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특히, 불연의 몸체 주렴(珠簾, 구슬을 꿰어 만든 발)에 동경(銅鏡, 청동거울)을 매단 최초의 사례로,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되는 동경이나 불화의 복장낭(腹藏囊) 앞에 매단 동경과 같이 어두움을 밝히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불연의 동경은 불교 의례 연구에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학술적 의의가 있다.

‘울진 불영사 불연’은 조선 후기 불연 중 제작 당시의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제작배경을 상세히 담은 명문이 남아 있는 점, 공예기술 면에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1656년(효종 7) 만들어진 불상으로, 당시 제작된 나한상 중 수량과 규모면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이 일군의 불상은 제작에 있어 수조각승 무염(無染)의 통솔 아래 조각승들이 1∼4명씩 분담해 제작했다. 참여 조각승들은 무염·승일파, 현진·청헌파, 수연파등 역량이 뛰어났던 17세기 조각장들을 계승한 인물들이자 당시 불교계를 대표한 승려 벽암 각성(1575∼1660)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그만큼 완주 송광전 나한전 불사의 중요성을 가늠케 한다.

완주 송광사 불상은 조각과 더불어 개금(改金)·개채(改彩) 작업 등 조각승과 불화승간의 협업 체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영역이 다른 화원들이 어떻게 협업관계를 구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한 목조와 소조, 채색 기법 등을 두루 활용해 작가의 재치와 개성이 잘 드러나 있고 작품성도 뛰어나며, 나한상과 동자상을 일체형으로 제작한 창의성도 돋보인다.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사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했던 조각승들의 활동체계와 제작태도, 경향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울진 불영사 불연’ 등 4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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