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은 지나간 유행인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미륵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사와 한국불교사를 돌이켜 볼 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미륵은 분명 현학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현학(顯學)’이라 함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두드러진 학술 또는 문화를 말하며, 유행과 인기를 끌고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학문체계를 말한다. 현대의 한국인 가운데 미륵사상을 자신의 주요한 신념체계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필자는 출가 직후 한국불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미륵사상을 가장 주목했다. 미륵신앙은 이 땅에 불교가 전래한 직후에 가장 강력한 신앙으로 자리 잡았고, 삼국시대의 대표적 사상 역시 미륵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미타신앙이나 관음신앙은 훨씬 뒤인 통일신라 시대에 꽃을 피웠다. 즉 한반도에서 불교는 미륵불의 하생이라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통해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의 불자들 가운데 미륵 경전인 미륵삼부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이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미륵은 지나간 유행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읽는 미륵 경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2020년 1월, 필자는 한 사찰에서 미륵삼부경 강의를 시작했다.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미륵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를 자각하고 ‘우리의 선조들이 깊이 신앙했던 미륵을 재인식하는 것은 말법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필수과목이 되지 않을까’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미륵삼부경에는 석가세존이 미륵불에게 수기하여 부촉(불법 보호와 전파를 맡겨 부탁함)하는 내용이 나온다. 석가세존은 가섭존자에게 금루가사를 전수하여 미륵불이 하생할 때 입혀주게 함으로써 자신을 대신하여 증명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가섭은 열반에 든 석가를 대신해 미륵이 하생해서 용화정토를 건설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석가세존의 정법안장(正法眼藏,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섭존자가 물려받아 28조 달마에게 전해왔고 동쪽으로 이 법이 전해져서 6조 혜능을 거쳐 조계의 물결이 선종 5가로 자리 잡게 됐다. 이런 선종(禪宗)의 핵심은 바로 석가와 가섭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서 비롯한다. 석가가 최고의 제자인 가섭에게 바른 안목을 전했다는 의미는 선종에서 강조하는 법맥의 전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미륵하생의 증명법사로서 가섭을 특별히 인증해 준 미래학적 의미를 갖는다.
한국불교사의 의미맥락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한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禪宗)’이며 이는 미륵하생신앙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선종은 화엄종, 천태종과 함께 중국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종파다. 한국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형성된 13개 종파불교를 모두 받아들인 통불교적인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특별히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고스란히 전법하는 선불교의 성격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미륵이 이 세상에 하생할 때 그가 미륵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인물은 정안(正眼)을 갖춘 가섭존자이고, 그의 법맥을 이은 조사(祖師, 후세의 귀의와 존경을 받을 만한 스님)들의 역할이다. 한국불교가 선불교적인 특색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은 미륵경전에서 강조하는 석가세존에서 미륵존불로 이어지는 새로운 법통의 전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석가의 제자는 10대 제자, 500 나한, 1250 아라한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그 가운데에서 미래세계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석가모니불을 잇는 미륵불과 이를 증명할 가섭존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미륵경전의 3대 주인공은 석가, 미륵 그리고 가섭이다. 미륵사상과 선사상(禪思想)의 인연은 이렇게 깊다. 한국불교의 역사와 의미는 이 두 사상을 떠나서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불교는 미륵불교다
티베트불교는 포탈라궁으로 대표되는 관세음보살의 불교이다. 석가가 미륵이 오기 전까지 자신을 대신해서 중생을 제도해 달라고 부촉한 인물이 바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과 같은 보살들이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과 『지장경』을 보면 석가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에게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제도해 줄 것을 부촉하는 내용들이 보인다.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에 석가를 대신해 중생제도의 가장 왕성한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따라서 관음신앙은 미륵이 하생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하나가 된다.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이름이 ‘관음사’라고 한다. 이는 한국 역시 관음신앙이 수승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티베트불교와 다르다. 한국불교에는 한반도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신앙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티베트불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반도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신앙은 언제 형성됐나? 불교가 전래한 삼국시대에 이미 그 신앙과 사상이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신라의 ‘화랑(花郞)’은 ‘용화낭도(龍華郎徒, 용화향도라고도 한다)’의 줄임말로 미륵하생을 준비하기 위한 젊은 청년일꾼이라는 의미다.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6년 고행을 거쳐 성불한 석가와는 달리 미륵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하루 만에 성불해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고 미륵 경전에 나와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동일하게 강력한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우리 국토로 미륵이 하생하기를 바라며 건전한 미륵 쟁탈전을 벌였다. 백제 무왕이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하려고 할 때 신라에서 도와줬고, 신라에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할 때 백제에서는 아비지라는 기술 인력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미륵이 하생하기 전에 국토를 확장하고 제반 준비를 완료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먼저 나타난다는 미륵 경전의 말씀처럼 삼국의 제왕들은 서로 국토를 확장하고자 선의의 경쟁을 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백제의 근초고왕, 그리고 신라의 진흥왕은 자신이 전륜성왕이 되어 미륵을 유치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물이 가장 풍부한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자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백제 의자왕과 신라 무열왕의 충돌은 기존의 경쟁과는 성격이 다른 양상의 전쟁을 벌였다. 수행단체인 화랑이 전투에 동원되면서 한민족은 분열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 다시금 새롭게 등장하여 미륵하생이라는 우리 민족의 본원(本願)을 회복한 인물이 바로 진표 율사이다. 진표는 우리 국토로 미륵이 하생하리라는 신앙을 망신참회라는 극단적 수행으로 표출했고, 미륵은 이에 감응하여 미륵 3회 도량을 이 땅에 부촉하기에 이른다.
미륵삼부경에 보면 미륵이 하생할 때 3회의 큰 설법을 베푼다고 되어 있다. 1회에 96억 중생을, 2회에 94억 중생을, 3회에 92억 중생을 제도한다고 했다. 미륵이 하생하면 세 번의 큰 법회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진표는 극도의 고행과 발원을 통해 미륵으로부터 이 3회의 설법처를 받기에 이르고 이 위대한 3곳에 미륵 성지를 건립했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북한 금강산 발연사가 미륵하생의 3회 도량이다. 전 세계의 불교국은 모두가 자신의 국토로 미래불인 미륵이 하생하기를 발원한다. 중국도 일본도 남방도 티베트도 모두 자국으로 미륵이 하생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진표처럼 미륵에게 이토록 강한 부촉을 받아 미륵 3회 설법의 도량을 천년 전 마련해 둔 나라는 세계불교사에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불교는 미륵불교다”라는 언명이 절대 과장이나 허언이 아닌 이유다.
미륵은 언제 하생하는가?
미륵경전을 보면 미륵은 56억 7,000만 년 뒤에나 하생한다. 올해 불기(佛紀)는 2565년이고, 북방 불기로도 3048년에 불과하니 미륵의 하생은 여전히 56억여 년을 지나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먼 훗날의 미륵하생이 우리에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필자는 56억 7,000만 년 뒤에 미륵이 하생한다는 의미를 하나의 수사(修辭)와 과장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미륵의 하생과 말법 시대를 담론해 놓은 또 다른 경전인 『대방등 대집경』을 살펴보면 석가 이후 천년 동안을 정법 시대, 그 다음 천년을 상법 시대, 그 다음 천년을 말법 시대로 보고 있다. 정법-상법-말법의 시대구분을 놓고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실제와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말법 시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륵하생 56억 년설’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정법 시대 천년, 상법 시대 천년, 말법 시대 56억 년을 살아야 하는데 과연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유사이래 많은 도인과 고승, 현자와 학자들은 세존응화 3,000년이면 미륵이 하생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거론되어온 선천(先天)-후천(後天)의 역학(易學) 논의들과 동학(東學)과 증산도(甑山道) 등 개벽(開闢)의 담론들은 공교롭게도 불교 미륵하생의 용화정토와 동궤를 그려왔다. 석가 당시에 미륵의 하생 시기를 정확히 숫자로 언급해 놓기는 어려웠을 터다. ‘먼 훗날’의 의미로 ‘56억 7,000만 년’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던 게 아닐까? 이를 인도인 특유의 과장인 ‘영겁’과 같은 레토릭(rhetoric, 미사여구)으로 읽고자 한 데는 불교가 이 세상에 펼쳐진 이래 중생들의 믿음 흐름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민족에 흐르는 미륵하생의 메시아 신앙
불교를 억압한 조선 시대에도 미륵신앙은 사라지지 않고 돌미륵과 같은 민간신앙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왕조는 바뀌어도 우리 민족의 공통된 미래의 이상인 미륵신앙을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조선 후기에서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 사회에 기독교의 예수재림 신앙이 급속도로 전파된 모습을 불교의 미륵하생 신앙심이 모양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즉 한민족에게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왔던 미륵하생의 메시아 신앙이 예수재림이라는 형태로 모양을 잠시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넘어 우리 민족의 정신에는 우리를 구원해 줄 위대한 성자가 하늘에서부터 이 국토로 반드시 내려온다는 확고한 믿음 체계가 구축돼왔다고 보는 것이다. 동양 삼국 가운데 미륵하생 신앙이 가장 강력했던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예수재림 신앙이 훨씬 구석구석 확산했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기독교 교세 확장의 이유와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미륵신앙이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는 현실도 잘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근거이다.
운주와불(雲住臥佛)에서 운주입불(雲住立佛)로
필자는 2004년 전남 화순 운주사에 누워있는 미륵인 와불을 탁본해 같은 크기의 괘불로 제작한 경험이 있다. 당시 해인사 원당암 대중들이 함께 원력을 세웠고, 광목천에 먹물로 운주와불을 그려 괘불의 형태를 만들어 한반도의 세 지점에 입불 형태로 세웠다. 운주입불을 세운 곳은 해인사 1번지인 원당암, 불갑사·도갑사와 함께 호남 삼갑사인 보성 봉갑사(鳳岬寺), 그리고 서울 동국대였다. 2008년 동국대 100주년을 기념해 석림회에서 마련했던 동국한세기 대법회 당시 동국대의 중심 명진관에 운주입불을 걸어 한반도 미륵하생과 용화정토를 발원했다. 운주사의 미륵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세상에 미륵이 하생한다는 우리 민족의 믿음이 천년을 넘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말세의 운명은 회복이 불가능하다[末世命運不回復]’는 말이 있다. 탄허 스님의 말씀처럼 이 세계는 종말이나 심판이 아니라 성숙과 결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찬란한 후천 세계의 개벽은 미륵불이 한반도로 하생한다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발원과 믿음으로 이 땅에서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불교 최고의 미래학인 미륵사상의 전통을 잘 간직하면서 깊은 선정을 통해 누구나 가섭의 안목을 갖추도록 참선을 생활화하며 ‘그날’을 기다려볼 일이다.
문광(文光)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동국대 선학과·불교학과 학사, 연세대 중문학과 학사·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탄허선사의 사교회통 사상』, 『한국과 중국 선사들의 유교 중화 담론』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BTN불교TV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와 유튜브 ‘문광 스님 TV’에서 경전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