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철학 시점] 참나도 본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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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철학 시점] 참나도 본캐도 없다
  • 홍창성
  • 승인 2021.03.30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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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와 부캐 사이 참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수행자 사이에 오가는 이 질문을 서양인에게 스스로 묻도록 하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의아해한다. ‘Who am I(나는 누구인가)?’는 내가 내 이름을 묻는 질문이다. 내가 기억을 잃기라도 했단 말인가? 한편 이 물음은 스스로가 소속한 집단에서의 역할이나 직업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What am I(나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옳다. ‘Who am I?’는 문법적으로 이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현대철학은 이런 질문이 신비롭고 심오한 느낌을 주는 이유를 실은 그것이 문법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이름이나 직업에 대한 질문이라면 적절한 단어를 써서 제대로 물어야 하는데, who와 what을 뒤섞어서 독자를 오도(誤導)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의 출재가자가 그런 의도로 이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이 질문은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 참된 나, 본래면목, 즉 참나[眞我]를 찾으라고 독려하는 수행의 하나로 사용된다. 요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비유로 풀이하자면 ‘나의 본캐(본本 캐릭터)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셈이다. 

격변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 대부분은 ‘고정불변한 자신의 본캐가 있고 그것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시대의 상황과 환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참나를 찾으라는 물음은 바라문교와 힌두교에서 논하는 아뜨만과 같은 참나는 없다며 무아(無我)를 설파한 붓다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필자는 본캐와 부캐(부副 캐릭터)를 분별하려는 태도 또한 참나를 찾으려는 헛된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본캐의 문제를 불교의 무아론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필자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캐는 무엇인가? 이름은 홍창성이고, 직업은 서양철학 교수다. 인문학자지만 IT 애호가다. 공상과학 영화광이고 무도(武道)를 좋아한다. 쌍둥이 딸 아빠고, 교수의 남편이다. 차를 몰 때는 운전자이고, 길을 걸을 때는 보행자다. 스스로 불자라고 여기지만, 교회와 성당 그리고 유대교 회당에도 기웃거린다. 이런 문장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 캐릭터들은 모두 크고 작은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어느 하나도 나 스스로로부터 비롯된 것은 없다. 

이 모습들은 각각 이런저런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그렇다면 이런 관계들의 집합이 나일까? 답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각 문장의 진위(眞僞)가 계속 변한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는 교수지만 은퇴하면 더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게 되고, 또 공상과학영화보다 사극(史劇)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 나를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것도 나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데, 관계 각각이 계속 변한다는 점이 나의 존재에 대해 더욱 회의하게 만든다. 

 

관계로 분석되는 나 : 동시적(同時的) 관계

다음은 도겐의 『정법안장(正法眼藏)』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도(佛道)에 관한 공부는 스스로에 관한 공부다. 스스로에 관한 공부는 자신을 잊는 공부다. 자신을 잊는다 함은 만물에 의해 깨닫게 된다 함이다. 만물에 의해 깨닫는다 함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아 여읜다 함이다.”

불제자라면 자신을 잊어야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가 연기(緣起)하는 만물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가능하다. 그런 관계를 깨달으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심신도 자성(自性)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 공(空)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모든 심신을 내려놓게 된다. 이것이 깨침이다. 몸도 마음도 공함을 깨달아 여의게 된다. 참나는 없다. 참나가 존재하지 않는데 본캐 같은 것이 실재할 수는 없다. 

연기하는 법계에 사는 우리의 캐릭터는 사회 및 자연과의 동시적 관계 때문에 개념적으로 규정되곤 한다.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교수도 재직한 대학과의 관계로 그런 본업 또는 본캐가 가능하다. 만약 그가 대학에서 어떤 사유로 해임되면 그는 교수로서의 본캐를 잃게 된다. 그런데 그가 평소 취미나 부업으로 프로그래밍을 해 왔다면, 이제 프로그래머로서의 그의 부캐가 그의 생계를 꾸리는 본캐가 될 법하다. IT업계의 불황으로 프로그래머 일을 그만두고 그가 즐기는 운전을 직업으로 삼으면 운전사가 그의 본캐다. 그러다가 다시 대학에 복직하면 본캐가 또다시 교수로 돌아간다. 어느 누구의 본캐나 부캐도 고정불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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