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독후감] 비슷한 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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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독후감] 비슷한 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사람
  • 이기선
  • 승인 2021.02.16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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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출처 JTBC.

언제나 경연 프로그램은 그저 구경거리였습니다. 여려 배경의 참가자들이 모여 누가누가 잘하나를 대결하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었어요. '이런 걸 보면서 경쟁을 내면화하는 거야.'라는 저의 습관적인 삐딱함과 다시 마주쳐 불편해하면서도 경연 프로그램을 종종 보는 건, 출연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 제 가슴으로 전달되곤 했기 때문입니다. 참가자의 영롱한 재능에 감탄하는 맛도 물론 좋았지만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대, 경연 프로그램은 언제나 구경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싱어게인>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싱어게인>은 한때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가수, 혹은 시종일관 알아보는 이 없는 가수, 그러니까 무명 가수들이 세상에 자신을 (다시 한번)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이에요. 참가자 가운데는 심사위원의 동료와 선후배도 있었어요. 심사위원들이 오래전부터 당신의 팬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참가자라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보았습니다. 보면서, 저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 참가자들과 얼마나 다를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계속 그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내가 만든 책은 무엇 때문에 잘되었고, 어떤 점 때문에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을까. 나는 왜 지금 어정쩡한 편집자가 되어 버렸다고 느끼고 있을까.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책은 무엇이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얼른 명료하게 나왔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어떤 혼란은 이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 어쩌면 답은 이미 나왔는데 제가 계속 외면하고 있는 질문들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을, <싱어게인> 참가자들을 보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느끼며,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정서 속에 있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얼마 전부터 가끔 펼쳐 보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란 시집에서 시인이 펼쳐 보이는 마음속 세상이 저와 꽤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정리되지 않는 마음의 일들을, 좀처럼 가다듬을 수 없는 정서를, 습관적으로 빠지곤 하는 마음의 수렁을,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일들을 시인은 정갈한 언어로 차분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뜨끔하고 뜨끔하고 뜨끔했어요. 언젠가 내가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생각하며 저 자신을 대견해했었는데, 어느새 비슷한 자리로 돌아와 있다는 걸 시를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시인은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슬프지 않기 위해 아마도 시인은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하나를 얻고 나머지 하나를 버리는 선택을 말이죠. 버린 것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얻은 것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어쩌면 절실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결정을 하지(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인이 걸었을지 모를 그 길을 저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조금만 슬퍼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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