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미술 세계] “옹 마니 파드메 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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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미술 세계] “옹 마니 파드메 훙”
  • 강우방
  • 승인 2020.12.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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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겐 평생 욕심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이 기회에 아호를 하나 더 만들려고 한다. 삼무(三無)다. 학위에 욕심이 없어서 석사학위도 없거니와, 학부 평점은 C 학점이니 어느 대학에도 신청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미국 하버드대 로젠필드 교수와의 인연으로 하버드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과정을 밟기도 했다. 두 번째, 돈 욕심이 없다. 쥐꼬리 월급에도 평생 이상한 짓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세 번째, 감투 욕심이 없다. 매번 문화부나 문화재청이 저지른 일을 질타하여 반골이라 불렸다. 그래서 몸과 정신을 온전히 지켰고, 이화여대 초빙교수 7년이라는 삶의 가장 큰 축복이 내려졌다. 

 

| 지동설과 영기화생론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뒤돌아볼 틈이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필자의 학문과 예술 연구가 조형언어를 찾아내는 위업을 이뤘음을 알았다.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기록하고 촬영하고 논문을 써왔던 일평생 노력의 결과였다. 

대학 강단을 떠난 후 필자는 더 바빠졌다.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설립해 전 세계 미술 연구에 매진하면서, 16년간 수요일마다 강의를 해오고 있다. 학문의 새로운 변화도 일어났기에 모든 작품을 새롭게 봐야 했다. 학문과 연구 범위는 독학으로 깨친 건축을 비롯하여 조각, 회화, 도자기, 금속공예 등으로 확대됐다. 필자에게 보였던 이 모든 장르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인류가 창조한 조형들 일체를 해석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보인다는 것은 그 의미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조형언어 존재도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앞으로 이것을 가르치며 세계의 모든 조형예술품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사명감이 생겼다. 조형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력을 획득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지동설을 발견하여 그 당시 사상적 큰 변화를 일으켰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학설과 정반대가 되든가,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변화하는 경우 쓰는 말이다. 전환이란 말은 영어로 ‘레볼루션(revolution)’이며 ‘혁명’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이 실로 혁명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에서 그의 지동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 주장이 발표되고 나서 실로 440년이 지난 1992년의 일이었다. 

필자의 ‘영기화생론’은 왜 혁명적인가. 인간이 모르는 문양의 세계는 인간이 알고 있는 세계에 비하여 훨씬 방대하다. 단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생성의 근원적 문제를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즉, 영원한 생명의 전개를 보여주는 중요한 세계이지만 인간은 그저 지나쳐 왔다. 인간은 300만 년 동안 건축, 조각, 회화, 도자기, 금속기, 복식 등 조형예술작품을 창조했지만, 정작 그 본질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필자는 ‘영기화생론’을 정립해오면서 새로이 ‘영화된 세계’의 존재를 밝혔고, 조형예술작품의 본질을 이해하는 이론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조형언어의 문법도 정립했다.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으로 밝힌 우주론은 과학적 이론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우주에 가득 찬 영기나 성령은 종교적 개념이어서 신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방대한 이론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증명되지 않은 것은 제시하지 않았다.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영기화생론’은 신비적이라 느낄 만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 세계를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인간이 창조한 조형예술품을 올바로 해독하고 나면 얼마나 우리 삶이 풍부해지고 행복해지는가. 인간이 창조한 조형예술품의 90%가 문양이었다. 수천 년 인간의 역사에서 죽어 있는 채 존재해왔으나, 그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자 인간의 역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탈바꿈한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장인의 존재가 집중 조명을 받으며 동시에 등장한다. 그 잊혔던 90%의 문양은 수백만 년 동안 세습적으로 이어온 장인 집단에 의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종교나 궁궐건축, 불상 조각, 기독교 성상, 불화, 도자기, 금속기, 복식 등 일체가 문양이요, 모두 장인들이 창조하고 역사를 이어왔다. 그들이 창조한, 전 세계에 분포한 문양들의 비밀을 풀어낸 것은 기적이다. 그 범위가 세계적일 수밖에 없기에 세계적 르네상스라 부르는 것이다.

일례로 그렇게 낯설었던 이집트 미술이 점점 익숙해져서 하나하나 풀리고 있다. 람세스 2세(기원전 1303~1213) 말기의 서기장(書記長)의 묘 천장에 있는 무량보주 무늬의 한 조각을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연이어 만들어 봤다(사진 1-1, 1-2). 만일 이집트 무늬가 눈에 잡히지 않으면 다음의 조선 시대 단청 무늬들을 보면 된다(그림 1-1, 1-2, 1-3).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려보는 것이다. 

사진 1-1  람세스 2세 말기 서기장의 묘 천장. | 사진 1-2  서기장의 묘 천장에 있는 무량보주 무늬의 연속.

그 끝없이 전개되는 무량보주를 입체적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고려 시대 무량보주 투각 향로가 된다(사진 2). 이 고려 청자 무량보주 투각 향로는 그대로 석굴암 본존불(사진 3)이 될 수도 있다. 피어오르는 향기가 마치 여래의 정수리에서 올라가는 영기문과 똑같다. (여래나 보살이 무량보주임을 증명했으나 너무 길어 상세한 설명이 어렵다) 무량보주란 용어는 필자가 만든 말이다. ‘무량한 보주’는 용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량한 무늬를 무늬화한 것을 ‘무량보주’라 부르기로 한다. 칠보문(七寶文)은 일본 학자들이 붙인 그릇된 이름인데 우리나라 학자나 중국학자들이 모두 따라 부르니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칠보문이 무엇인지 사전이라도 찾아보라. 우리나라 미술사학계는 사엽문(四葉文), 네 잎 무늬라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어찌하여 사엽문인가(그림 2). 사람들은 현실에서 본 바 있는 네 잎 클로버를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보고 있다. 모든 무늬의 이름이 이런 상태이므로 어찌 세계를 누비며 오류를 고쳐주지 않을 수 있는가. 21세기의 선재동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그림 1-1, 1-2, 1-3
람세스 2세 말기 서기장의 묘 천장에 있는 무량보주 무늬의 도식화.
사진 2(위) 고려청자 무량보주 투각 향로.
사진 3(아래) 석굴암 본존.
그림 2 사엽문이라고 오해하는 무량보주 무늬.

 

| ‘여래의 화신’ 관세음보살 부르는 주문

필자는 인간이 창조한 모든 조형예술품을 해독, 인류문화의 엄청난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원력을 세웠고 실천 중이다. 마침내 ‘옹 마니 파드메 훙’이라는 진언을 풀기도 했다. 진언은 풀이하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풀고 나니 경전에는 이 진언을 올바로 풀이한 내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옴 마니 반메 훔’이라 일반적으로 불려왔으며, 50년 전 성철 스님이 ‘옹 마니 파드메 훙’이라 고쳐 부르기를 권했지만 따르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진언이고 뜻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진언은 그 음이 중요하기에 성철 스님은 산스크리트 원어 발음대로 부르기를 바랐으니 맞는 말이다, 직역하면 “옹.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훙”이라는 뜻이다. 달라이 라마도 열심히 이 진언을 권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진언은 구태여 뜻을 해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해서 그런 듯 싶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전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 육자대명왕다라니(六字大明王陀羅尼), 옴 마니 파드메 훔(산스크리트어: ॐ मणि पद्मे हूँ,  한자: 唵麼抳鉢訥銘吽) 및 옴 마니 반메 훔은 『천수경』에도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밀교를 비롯하여 불교에서 사용되는 주문 가운데 하나다. 대승불교의 경전인 『육자대명왕다라니경(六字大明王陀羅尼經)』 및 『불설대승장엄보왕경(佛説大乘莊嚴寶王經)』 등에서는 이 진언을 부르면 여러 가지 재앙이나 병환, 도적 등의 재난에서 관세음보살이 지켜주고, 성불하거나 큰 자비를 얻는다고 주장하며, 주문의 효과가 적혀있다. 문자적인 뜻은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으로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이다. 티베트인들이 특히 많이 외운다. 보통 티베트인들은 이런 뜻과 상관없이 그냥 많이 외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여 헷갈리는데 다음과 같은 이상한 해석도 있다. 『천수경』의 어느 해설자는 ‘옴 마니 반메 훔’에서 ‘옴’은 하늘 세상, ‘마’는 아수라, ‘니’는 인간, ‘반’은 축생, ‘메’는 아귀, ‘훔’은 지옥 세계의 제도를 뜻하고 또한 모든 복덕 지혜와 모든 공덕 행의 근본을 갈무린 진언을 뜻한다. 육도 중생들을 제도하여 육도의 문을 닫게 한다는 뜻이라 하여 이런 해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상의 모든 해석은 그 뜻을 올바로 풀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옴’은 무슨 뜻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불교에서 사용하는 언어이지만, 옴(Oṃ)은 그 발생지인 인도에서 고대의 베다시대부터 사용된 신성한 소리이다. 우파니샤드의 장마다 그 처음이 옴으로 시작된다. (…중략…) 불교에서는 진언(眞言)을 송할 때에 주로 최초에 오는 소리는 옴이다. 옴은 본래 실담(悉曇) 12운의 초(初), 중(中), 후(後)인 a,u,m 3자의 합성어로서 각각 글자는 생성·유지·완성이라는 우주 생명 현상과 우주의 신비한 능력을 상징하며, 모든 문자를 대표하여 무량한 공덕과 진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다 머금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옴’ 자는 일체 소리의 근본·본질·귀결이므로 일체 만법은 이 한 자에 귀속된다고 해석된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의 실상을 나타내는 말이요, 모든 존재를 머금고 있는 무한한 법계의 원리를 상징하는 신비한 소리이기에 우주 전개의 과정은 이 옴이라고 하는 소리에 의하여 표현되고, 그 소리로부터 우주의 무한성, 우주적 생명력 그 자체가 현상세계에 재현되는 것이다.“ 

“‘옴’ 자는 일체 소리의 근본·본질·귀결이므로 일체 만법은 이 한 자에 귀속된다”는 풀이가 가장 와닿는다. 이 진언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다. 왜 이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불러내어 나타나게 했을까. 필자의 연구로는, 관세음보살은 석가여래와 같다. 여래의 화신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석가여래가 정각을 이룬 후에 중생을 바라보니 고통에 허덕이고 있으므로 자비심을 내어 구제하려는 마음을 낸다. 정각을 이룬 석가여래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있으므로, 관세음보살을 내세워 중생을 구제하게 한다. 말하자면 여래의 자비심을 의인화한 것이 관세음보살이다.

 

| 진언과 만난 영기화생론

만법이 이 ‘옹’ 한 글자로 돌아간다는 말은, 필자의 생활과 밀접해 가슴이 절절하다. 하나의 말, 혹은 하나의 조형으로 귀일하는 것을 무본당에서 가르치고 있다. ‘마니’가 가리키는 것은 연꽃 속의 보석이 아니라 연꽃 속의 보주다. 보주의 본질을 모르는 동서양 모든 사람은 풀이할 수 없었다. 보주의 본질은 ‘우주에 가득 찬 영기를 압축한 것’임을 채색 분석하면서 최초로 밝혔으므로 인류가 창조한 모든 조형예술품을 푸는 중이다. 그 보주를 기초로 필자의 인생이 걸린 큰 문제인 ‘영기화생론’은 마침내 20년에 걸려 요즘 그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것이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진언인 ‘옹 마니 파드메 훙’과 만났으며, 그 뜻은 이미 5년 전에 고려청자 무량보주 투각 향로에서 진언이 조형화되었음을 알았다. 친분 있는 스님들에게 그 진언을 풀었다고 했더니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서양에서는 보주의 존재도 모른다. 아예 이름조차 없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누구도 보주를 풀지 못했음을 알았다. 

직역하면 “옹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훙”인데 왜 이 말을 모를까. 그것은 보석이 보주인 줄 몰라서다. 과거엔 너무 크고 넓은 상징을 지닌 보주를, 어떤 말로도 이름 붙일 수 없어서 임시로 보주라 불렀던 것이다. 

어쩌면 ‘옹’이 바로 보주인지도 모르겠다. ‘옹’이 만법귀일이라 하면 바로 보주가 ‘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체의 조형이 보주로 귀일하므로 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진언을 완벽히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필자의 강의를 최소한 5년 정도 들어야 할 것이다. 보주란 것은 필자가 찾은 조형언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경지다. 보주를 모르는 모든 사람과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라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 중이다. 프랑스나 러시아 대문호가 그들의 언어로 창작한 소설이나 심오한 철학서를 읽으려면 최소 10년은 프랑스어나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 조형언어도 그만한 시간이 걸리지만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어둠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밝은 세계에서 살 것인가. 택일의 운명적 시간이 바로 코앞에 있다. 현실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마군(魔軍)일지도 모른다. 문자언어로 기록한 진리와 조형언어로 표현한 진리는 다르다. 조형언어로 표현한 조형예술품에 진리가 숨겨져 있음도 문법을 정립하고 해독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일이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아직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험해야 알 수 있다. 체험이 실종되고 단편적 지식만 쌓아나가는 현실에서 필자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두 해에 걸쳐 필자의 자서전을 매듭짓게 됐다. 감회가 깊다. 파란만장한 삶을 어찌 24회에 걸친 글로 마감할 수 있겠는가.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출간해온 저서들에 담겼다. 이 연재에서는 어려운 이론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 연대기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옹, 부처님, 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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