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야 마는 내일을 준비하는 미륵의 성지, 모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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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야 마는 내일을 준비하는 미륵의 성지, 모악산
  • 유동영
  • 승인 2021.01.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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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영의 선경(禪景) | 평등의 계단, 미륵신앙의 근본도량 금산사

“승(僧)진표가 산을 내려올 때 남녀가 머리를 풀어서 진흙을 덮고, 옷을 벗어서 길에 깔고, 방석 담요를 펴놓고 발을 밟게 하고, 화려한 자리와 아름다운 요로 구덩이를 메우기도 하였다. 진표는 정성되이 인정을 쫓아서 일일이 밟고 갔다.” 

당나라 개국 시부터 서기 980년까지 당·송의 고승 533인을 기록한 송나라 때의 『송고승전』에 실린 진표 율사의 내용이다. 특이하게도 988년 편찬한 이 책에는 진표 율사를 굳이 백제스님이라고 표기했다. 진표 율사는 백제 멸망 뒤 약 50년 뒤에 태어나 통일신라의 스님으로 살았음에도, 백제의 스님으로 표기가 된 점은 여러 배경을 짐작케 한다. 금산사 창건은 계율 중시의 미륵신앙이 성행했던 백제 법왕 때로 알려져 있고, 진표 율사 때 비로소 중흥기를 맞는다. 혜덕왕사에 이르러서는 현재의 규모를 훨씬 능가하는 대가람을 형성한다. 

보제루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모악산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삼층의 장엄한 미륵전이 모악산 주봉을 압도하고 있는 데다, 비슷한 높이로 자리한 방등계단의 당당한 위엄이 더해져 오기 때문이다. 통도사 금강계단이 출가 수행자에게 계를 내리는 자리라면, 금산사 방등계단은 사부대중에게 열려 있는 평등의 계단이다. 그 배경에는 역시 진표 율사가 있다. 진표 율사가 출가하고 수행한 곳은 백제가 나당연합군과 맞서 최후까지 저항했던 지역이다. 스님이 미륵보살에게서 『점찰경』을 받은 불사의방(不思議房)은 백제군의 최후 거점이었던 개암사 우금산성이 지척인 곳이다. 백제가 패망하고 100여 년이 지나지 않아 유민의 후손이 큰스님이 되어 미륵 도량에 돌아와 법석을 펴니,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추앙했을 법하다. 미륵전은 국보 제62호이고 방등계단은 보물 제26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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