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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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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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선지식의 삶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의 본질과 마음공부법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저작·역자 임순희 정가 16,500원
출간일 2020-12-28 분야 불교
책정보

 

328쪽

146*225mm

426g

ISBN : 978897479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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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석가모니 붓다 이래 2,600여 년 불교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깨달음의 경지를 밟았다. 불교 경전과 역사서, 선어록 등에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런데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과거 신분제와 가부장제 등 남성중심주의 사상이 여성들의 깨달음을 가로막아 왔고, 그녀들에 관한 기록조차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당당히 진리를 찾아 나선 여성들이 있다.

책은 석가모니 붓다 당시와 중국 선종사, 그리고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깨달음을 얻은 여성 선지식들의 이야기이다. 떡 파는 할머니, 기녀, 열두 살 소녀, 천민, 평범한 어머니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교적인 수행에서조차 차별받아야 했던 그녀들의 삶과 수행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저자소개 위로
1969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200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으며, 2003년 무심선원(김태완 선원장)에서 선(禪)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전국(부산, 서울, 청주, 대전, 대구, 제주)에서 ‘몽지릴라선공부모임’을 열고, 선을 통한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줌마와 선(禪)》, 《나에게 길이 있다》가 있다.

제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서 늘 섬 바깥세상을 동경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육지로 나온 뒤의 현실은 달랐다. 무언가에 갇힌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작가가 되면 나아지리라, 사랑을 찾으면 행복해지리라, 하며 열심히 달려 그 길에 닿았지만 답답함은 여전했다. 그러다 ‘바깥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자각으로, 이제껏 무언가를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모두 멈추었다. 이어 선(禪) 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마음공부를 시작, 경계에 물들지 않는 마음자리를 체험했다. 마음 없음이 곧 모든 것이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온전해지는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공부 모임을 열었고, 많은 이들과 함께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종교적인 수행에서조차 차별받아야 했던 ‘여성’이란 조건을 오히려 깨달음의 도구로 삼아 대자유를 이뤘던 여성 선지식의 삶을 다룬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체험에 다름 아니다.

네이버 카페 : 몽지릴라선공부모임(cafe.naver.com/mongzylila)
유튜브 : 몽지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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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희(지은이)의 말

현대에는 자성에 차별이 없다는 인식이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깨달음 앞에서 물러서는 마음을 보이거나 작은 체험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스스로 바른 안목과 자신감을 가져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승만경》의 승만부인, 《유마경》의 천녀, 《불설월상녀경》의 월상녀가 등장해 사람들을 깨우쳤고, 《화엄경》에서도 많은 여인이 선재동자를 일깨웠다. 걸출한 선사의 스승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남녀의 차이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나아가 배우지 못했거나 처지가 비천하더라도, 순수한 염원만 있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일깨울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목차 위로

 

머리말

1장. 본성은 성별에 매이지 않는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분별망상을 갈아 없애는 쇠 맷돌 유철마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네 말산요연
남편의 가리킴에 깨어난 감지부인

2장.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다
아들을 향한 애착에서 눈 뜬 꾸마라 까싸빠의 어머니
죽은 아들을 살리려 했던 끼사 고따미
열 명의 아들딸에게 버림받은 소나
붓다마저 버리고 본성을 깨달은 계씨 부인

3장. 몸을 사랑한 만큼 구속받으리
빼어난 외모에 자만했던 케마 왕비
아난다를 사랑한 천민의 딸 프라크르티
애욕을 깨달음의 불꽃으로 바꾼 광덕의 아내

4장. 모든 추구가 끝나는 곳에 행복이 있다

기구한 운명을 해탈의 도약대로 삼은 웁빨라완나
난봉꾼의 마음을 돌려놓은 수바
연꽃은 진흙에서 핀다 명실도인

5장. 삶과 죽음이라는 환영
천 조각을 걸치고 걷는 여자 빠따짜라
사람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무착묘총
스승을 그리며 노래하다 무제혜조와 초종

6장. 분별을 떠나는 것이 참된 출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여자 앗다까시
향락의 장소를 깨달음의 성지로 바꾼 암바빨리
졸음을 쫓으려 손바닥을 꿰고 염불한 여종 욱면
입을 열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정십삼낭

7장. 깨달음은 일상 속에 있다
사형수와 사랑에 빠진 꾼달라께시
덕산 선사의 말문을 닫아 버린 떡 파는 할머니
말없이 두 손을 펼쳐 보인 최련사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라네 적수도인

8장. 수행은 짓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는 것
당신이 타고 있는 소를 따라가라 평전수
법의 즐거움마저 놓아 버린 향산불통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 공실도인
현묘함도 눈 속의 모래이네 각암도인

9장. 선(禪)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도 깨친 가족의 걸림 없는 삶 방 거사 가족
곡소리로 선사들과 솜씨를 겨룬 능씨 할머니
오대산에 가려거든 곧장 가라 오대산 할머니
얘야 너를 아끼어 이것을 주려 한다 유씨 할머니

10장. 깨달음의 씨앗을 뿌린 여성들
황벽 선사를 일깨운 이를 모를 할머니
열일곱 스님을 꾸짖은 대장부 묘신
산승은 아무것도 알 수 없노라 혜광정지
여성이 여성에게 법을 전하다 나암혜온
수많은 엉터리 장로보다 낫다 묘도
불도로 억압의 시대를 뚫어낸 이여순

상세소개 위로

스스로 자각할 뿐,
깨달음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깨달음에 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 중 하나는 아무나 깨달을 수 없다는 믿음이다. 남성, 특히 출가해서 평생 홀로 수행한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남다른 경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생명에는 불성(佛性)이 있으며 누구나 깨달아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를 배우는 이들에게조차 이런 시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깨달음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석가모니 붓다가 말했듯 깨달음은 마음과 행위의 문제이지, 성별과 신분 등 겉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선지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떡 파는 할머니에서부터 기녀, 왕비, 열두 살 소녀, 천민, 평범한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지와 환경에서 깨달음의 문을 연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삶과 출가 인연 등은 제각각이지만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해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들에겐 지식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귀함과 천함 등 삶의 어떤 이력과 행적도 중요하지 않았다. 깨달음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깨달음은 본래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다른 곳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다른 이름은 자각(自覺)이다.
나와 너의 깨달음이 따로 있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깨달음이 따로 있지 않다. 모든 깨달음은 한 자리로 통한다. 모든 행위와 현상과 존재의 바탕으로서 그 자리에 깨달음이 있다. 자신의 삶과 세상에 관한 진지한 관심과 탐구에 따라 그것이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을 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정해진 자격과 조건은 없다.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나’라는 집착이 고통을 만든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게 되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심지어 죽음까지 초월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행위의 바탕이 되는 본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붓다의 말을 빌리면 ‘인연 따라 생겨나는 것은 항상 변해서 머물러 있지 않다. 모든 것이 마음 하나에서 일어나며 고정된 실체가 없어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이치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실재가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만들어 낸 의식일 뿐임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나와 내 것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있으면 타인이 있다. 내 것이 생기면 내 것 아닌 것이 생겨난다. 욕심과 집착과 분별이 일어난다. 타인은 지옥이다. 내가 아닌 것들이 존재하는 순간 지옥문이 열린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모른 채 끝없이 내 것, 대상을 갈망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선사들은 헛된 추구를 멈춘 사람들이다. 바깥을 향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아서 지금 그대로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사람, 붓다의 제자들이다.

쉬어라, 애쓰지 마라!
그러면 모든 것이 저절로 드러난다

깨달음을 체득해 가는 과정을 마음공부라고 말한다. 이때의 ‘공부’란 우리가 일상에서 지식을 얻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공부와는 의미가 다르다. 앎을 위한 공부가 더하기라면 마음을 깨닫기 위한 공부는 빼기와 내려놓음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이 자연히 드러나도록 분별심을 걷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모양, 감각으로 느껴지는 물성, 생각과 말로써 파악되는 개념 등을 남김없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공부에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배움의 대상이 따로 있지 않다. 내가 질문이고 내가 답이다.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 내는 분별과 집착만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저절로 환하게 나타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사로잡고 구속하는 모든 것을 비워내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마음공부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밖에서 구하지 마라’, ‘애쓰지 마라’, ‘네 마음을 들여다봐라’, ‘생각을 쉬어라’, ‘내려놓아라’ 하고 말하곤 했다.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곧장 본질에 다가서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이 책에는 이름난 선지식뿐만 아니라 저자를 비롯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공부 여정과 깨달음 체험이 소개돼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으며, 거기에 이르는 길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깨닫고 난 다음은? 그래도 공부하라!
대선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한 여성 선사들의 선문답

이 책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의 길을 걸어간 39명 여성 선지식의 일화가 실려 있다.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깨달은 사람, 중국 선불교 전통 중 하나인 조사선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은 사람,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스스로 마음공부해서 도를 이룬 여성들이다. 이 가운데 이미 도를 깨친 선사들이 ‘하잘것없는’ 여성들과의 선문답을 통해 다시금 득오(得悟)하는 장면은 선(禪) 수행의 본질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나 마음공부하는 현대인이 새겨들어야 할 송곳 같은 가르침이 담겨 있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다시 집착하지 말라. 마음공부하는 사람이 현상과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체험하면,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희열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마음속으로 ‘이것이 깨달음이다’ 하고 분별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깥에서 안으로 대상이 바뀐 것일 뿐 집착이기는 마찬가지다. 진정한 깨달음은 어디에도 걸림 없이 자유로운 상태이기에 ‘깨달음’이라는 개념이나 말조차 남아 있지 않다.
둘째는, 깨달음을 가리키는 말에 집착하지 말라. 깨달음에 관해 붓다와 여러 선사가 남긴 주옥같은 말씀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본성에 직접 가 닿게 하려고 ‘언어’를 방편으로 쓴 것이지 그 말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편에 매달리는 것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다. 말에는 도가 없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말에 현혹되는 일을 경계하기 위해 긴말 대신 고함을 치거나 매질을 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셋째는, 깨달음은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의 일상에 있다. 밥 먹고 물 마시는 일 속에 있다. 또한 깨달음을 얻더라도 우리는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먹고살기 위해서 계속 일해야 하고, 집과 사회에서 사람들과 만나 관계 맺고 살아야 한다. 이런 삶에서 흔들림 없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헛된 갈망과 추구를 멈춤으로써 부족함 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 깨달음의 참모습이다.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나는 무엇도 아님을 알게 되는 자리,
거기 행복이 있다

석가모니 붓다 당시보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현대인들은 자유롭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깨달음 앞에서 스스로를 한계 짓거나 작은 체험에 안주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가진 이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깨달음이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지극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분별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의 속성이며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아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무개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나 자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곳에 참된 행복, 대자유가 있다.

 

책속으로 위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삶의 큰 고통이다. 한 나라의 왕비로서 남부럽지 않게 부와 명예를 누렸던 마하빠자빠띠이지만, 왕비로서 그녀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매 순간 일어나는 생각에 흔들리고, 감정에 구속받으며, 늙어 죽어가는 몸을 보며 불안해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 고통을 여의고자 깨달음의 길로 들어섰다. 어쩌면 이것은 마하빠자빠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누구든지, 어떤 삶이든지, 살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급한 일이 또 있을까. 붓다가 열반에 든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나 불만족과 불안이 그림자처럼 우리 삶에 따라붙는다.
--- p.20

본래의 ‘나’는 성별에 매이지 않는다. 외모와 신분을 넘어선 진정한 평등이 우리의 본성이다. 이것은 성별 이전, 신분 이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현상적인 평등도 물론 중요하다. 남녀의 모습은 억지로 바꿀 수 없다. 그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상적인 평등은 늘 불완전하다. 현상은 머물러 있지 않고 실체도 없다. 하지만 무상한 현상의 텅 빈 바탕은 오고 감이 없다. 모든 불평등과 갈등이 온전히 끝나는 지점은 갈등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이다.
--- p.25

붓다가 가르치고자 한 것은 나 자신의 본성이자 세상 만물의 근원이다. 이것은 특정한 형식이나 모양이 아니면서 또한 그것을 떠나 있지도 않다. 『금강경』에서는 진정한 여래인 참 본성을 깨닫고자 한다면 모양으로 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약 온갖 현상을 경험할 때 사물의 모양이나 소리나 맛이나 감촉이나 의식으로 보려고 하면 참 본성을 볼 수 없다. 반대로 어떤 모양이나 형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저절로 본성이 드러난다. 깨닫고 나면 말과 글, 예불과 주문이 아무런 차별이 없는 본성임을 알게 된다. 깨닫기 전에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지만, 깨달은 후에는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오직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명확해진다.
--- p.71

솔직함은 선 공부를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자세이다. 우리 삶이 괴로운 이유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와 내가 원하는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나는 환상 속의 존재이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괴로움은 점점 사라진다. 오고 가는 허망한 물결이 아닌 언제나 변함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볼 때, 자신은 허망한 육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일어난다. 그때 삶과의 불화, 나와의 투쟁이 끝이 난다.
--- p.79

우리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드는 말과 행동을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그러지 않으면 슬퍼하고 불행해한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이성 친구에게, 혹은 다른 존재에게 우리는 사랑을 기대하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변한다. 사람의 마음이든 물질 현상이든 무상한 물결처럼 변한다. 출렁이지 않는 물결은 없다. 항상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항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괴로움을 일으킨다. 진정한 행복은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 p.110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행복에 대한 추구는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때로 마음속에 그리던 것과 비슷한 현실이 펼쳐지더라도, 그것은 감각적인 현상과 생각과 느낌이 조건적으로 어우러진 투사일 뿐이다. 감각에는 행복이 없고, 생각에도 행복이 없으며, 느낌에도 행복은 없다. 행복이란 정해진 실체가 없는 것이다. 붓다는 ‘이미 멈춘 지 오래된 사람’이다. 그처럼 헛된 추구심을 버려서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불만족이 사라진 자리에 참된 행복이 있다.
--- p.117

삶과 죽음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무료함 같은 이원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원적인 생각과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죽음도 이와 같은 물결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삶과 괴리된 세계의 일로 여긴다. 그렇지 않다. 삶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다. 삶과 죽음은 지금 일어나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집착하면 죽음의 공포에 빠진다. 죽음이든 삶이든,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환상의 자손들이다. 분별과 망상의 산물이다. 실체가 없는 것들로 모두가 평등해서 따로 취사선택할 것이 없다.
--- p.145

사람들은 깨달음이 현실과는 아주 먼 고차원적인 곳에 있다거나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실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것. 이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 변치 않는 것이 있다. 팔랑개비처럼 떠도는 마음을 멈추고 보면 비로소 그 바탕이 드러난다. 생각의 꽁무니를 쫓아다니지 말고 곧장 텅 빈 마음을 돌이켜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p.193

평소 무언가에 의지하며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밖에서 구하던 것이 분별심에 의한 착각이었음을 알고 난 뒤에, 이번에는 안에 있는 마음에 의지하려고 한다. ‘그래, 이 마음이야’라는 확신과 자기규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는 분별과 집착의 대상이 바깥 것에서 안의 것으로 바뀐 것일 뿐, 무언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분별망상이다. 깨달음은 마음을 찾아 그것을 붙잡는 게 아니다. 그렇게 붙잡을 마음조차 없음을 알고 어디에도 머묾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깨어남이다. 마조 선사와 원오 선사가 하나같이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03

진정한 해탈의 힘은 매일 살갗을 부딪치며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분별망상이 치성한 상사와 동료를 만나는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동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고요할 수 있는가? 가족 관계에서는 지나온 삶에서 쌓인 상처가 앙금처럼 남아 있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앞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 속에서도 아무 걸림이 없을 수 있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전의 습관이 되살아나기 쉽다. 애착을 놓아 버리자니 관계가 망가질 것 같고, 관계를 유지하자니 상대에게 꺼둘리는 게 괴롭다. 화탕지옥이 여기인가 할 만큼 때때로 참기 힘든 심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의 현장이다.
--- p.238

현대에는 자성에 차별이 없다는 인식이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깨달음 앞에서 물러서는 마음을 보이거나 작은 체험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스스로 바른 안목과 자신감을 가져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승만경』의 승만부인, 『유마경』의 천녀, 『불설월상녀경』의 월상녀가 등장해 사람들을 깨우쳤고, 『화엄경』에서도 많은 여인이 선재동자를 일깨웠다. 황벽 선사를 일깨운 할머니의 이야기 또한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걸출한 선사의 스승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남녀의 차이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 p.290

공부하는 사람은 대개 어떤 개념이나 상태로 이 공부를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념과 상태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깨달음을 방해한다. 도를 닦는 사람이 ‘눈을 깜박이는 것이 도’라고 여기거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을 도라고 여기거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에 머물러 있거나, ‘한 물건도 없는 것’이 도라고 여긴다면, 이는 법을 분별로써 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편의 말들이 선의 스승들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매달리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배우는 사람이 어떠한 지점에도 머물지 못하게 하려는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것에 집착하니 스승의 의도와 한참 어긋난 곳에 있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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