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우주가 나에게 말을 거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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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우주가 나에게 말을 거는지도 몰라
  • 이기선
  • 승인 2020.1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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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루이즈 뱅크스는 언어학자다. 루이즈는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과 소통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자연스레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한다.

외계인의 언어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다. 이를 배운 루이즈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하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금 여기서 훤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을 얻었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에 떠오를 때,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 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루이즈에게는 아픈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스물다섯 나이에 국립공원 등반 추락 사고로 죽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루이즈는 곧 이혼할 남편과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를 가지 위해. 인용문은 그때 루이즈가 미래의 아이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대화의 시공간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떠오르는 에너지장이다. 대화의 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과거의 짐과 환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도 동시에 품고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현재의 자신을 순간순간 재창조해 낸다.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한 루이즈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일은 이야기꽃을 피워 낸 바로 그 순간의 각성과 선택이 미래를 창조해 낼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여기에서 늘 새롭게 나를 만들어 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안녕하세요. 1얼(편집부장)입니다.

​시작부터 <닫는 글>이라 '응?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글은 제가 11월에 마감해서 며칠 전 출간된 《삶을 위한 대화 수업》의 마지막 글이며,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꼭지입니다.

​제가 저 글을 좋아할 것은 어쩌면 예정된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컨택트>는 제가 너무나 애정하는 영화거든요. 그러니 책 마지막 글에서 영화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의 일부를 인용하고 그 뜻을 저자의 맥락이자 원작의 맥락에서 살린 저 글을 사랑하는 건, 루이즈가 슬픈 미래를(이 단어로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알면서도 거기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아주 조금 닮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좌)<컨택트> 포스터, (우)《당신 인생의 이야기》 표지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진작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건,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저자 이름인 '테드 창'이란 세 글자가 이상하리만큼 지적인 느낌을 주었거든요. 하지만 편집 앞에서 두려움은 접어 두어야 했죠. 문장을 충실하게 인용했는지도 확인해야 했고, 게재 허락도 얻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서점으로 걸어가 책을 집어 들고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한 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사심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영화보다 더 좋잖아!'라고 연신 감탄하면서, 마지막이 천천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편집한 책 얘기로 돌아오자면, 저자는 대화란, 그중에서도 비틀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시도하는 대화는, 사람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거라고 얘기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저 사람과 상처를 받은 내가 대화를 통해 이전과 달라져서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누가 대화를 하려고 들겠어요. 그러니 대화에 임한 사람은 사람을 '변하는 존재'라고, 그것도 이전보다 나은 쪽으로 변하는 존재라고, 각자가 허락하는 마음의 크기만큼은 믿고 있는 셈입니다. 비록 그 믿음이 깨지고 말지라도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물질대사가 몸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마음에도 새로운 것들이 수없이 밀려들어와서 생각이 계속 미세하게 변하는 과정에 있으니까요. 다만 변화의 크기가 작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쪽 혹은 타인이 바라는 쪽으로 바뀌는 일이 드물 뿐이죠. 아무튼 제(사람)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저는 큰 안도를 얻곤 합니다. 지금 마음에 안 드는 모습들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의 표면으로 낑낑거리며 불러낼 때마다, 절망으로 가려던 마음이 희망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어제 퇴근길에서는 《기획회의》 524호에서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살아남은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글을 읽으며 '어, 나랑 비슷한 사람이 여기 있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유원》이라는 소설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소설로 넘어가는 길목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었거든요.

"그건 바뀌어야 한다는 '의무'도 아니고 바뀔 수 있다는 낭만적 '응원'도 아니었다. 바뀌는 존재로서의 인간이야말로 절망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실체적 힘이 되는 '생각'이다."

박혜진, <살아남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박혜진 평론가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면 그 자유는 무엇보다 변할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누군가는 성장이라고 말할 그 변화할 자유 말이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맺습니다. 《삶을 위한 대화 수업》에서 저자 신호승은 "다만 알 수 있는 일은 이야기꽃을 피워 낸 바로 그 순간의 각성과 선택이 미래를 창조해 낼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여기에서 늘 새롭게 나를 만들어 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라는 문장으로 책을 맺습니다. 이런 글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우주가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변하라고 말을 거는 건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편집 후기를 이런 다짐으로 맺으려고요.

'같은 생각이야. 변화를 타고 흘러가야겠다는 생각만큼은 계속 간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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