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건이 있다”_혜능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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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물건이 있다”_혜능 대사
  • 범준 스님
  • 승인 2020.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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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로 만나는 선지식

 

| #1 회상(會上)을 이루다

한 차례 세찬 비바람이 지나간 후였다. 하늘은 맑고 청량한 기운으로 온 대지를 덮고 있었다. 어느덧 혜능의 문하에는 전국 각지에서 출가자들이 모여들어 큰 회상을 이루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수행자가 눈 밝은 스승으로부터 지도받기를 자청하며 수행에 정진했다.

혜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에 집중하며 크고 작은 의문을 토해내는 제자들을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겼다. 하지만 여래의 미묘한 선심(禪心)을 이해하는 제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매번 제자들에게 법문하고 수행의 깊이를 묻고 답하며, 때로는 질책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지도를 반복했지만, 명확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불법의 핵심을 한마디로 설명해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항상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달리 알려줄 방법도 없었다. 어느 때는 가장 쉬운 설명으로, 어느 때는 가장 완곡한 표현으로 법문해 봐도 만족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 #2 제자의 견해를 점검하다

어느 날 혜능은 법문 중 단 한 사람의 대답이라도 나오기를 바라며 법상에 올랐다. 그리고 법회에 모인 대중을 향해 말했다.

“여기 한 물건이 있다[有一物].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고, 특정한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느 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공능(功能)으로 보자면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 위에 굳건히 버티고 있다. 또한, 특정한 모양이 없기에 그 밝음은 태양과 같고, 검기로는 칠흑의 옻칠과 같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항상 움직여 작동하지만 특정한 하나의 동작은 아니다. 이와 같은 물건을 대중들은 무엇이라 부를지 답해 보라.”

자애로운 스승의 법문은 모두 끝이 났다. 더 알아듣기 쉽게, 더 구체적으로, 숨기는 것 없이 가능한 모든 수사를 동원하여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을 던지고 나면 항상 그러하듯 어떤 이는 고개 숙여 눈을 피하고, 어떤 이는 미간에 힘주며 안간힘을 쓰고, 어떤 이는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어떤 이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사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답변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인들 어찌 속 시원히 한마디라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자리에서의 한 마디는 자신 안에서 나온 답변이어야 하며, 그 천금 같은 무게를 감당해야 함을 알기에 침묵을 깨뜨리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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