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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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궈징 지음 우디 옮김 정희진 해제
  • 승인 2020.10.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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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저작·역자

궈징 지음

우디 옮김

정희진 해제

정가 16,500원
출간일 2020-11-04 분야 에세이
책정보

판형: 135*205mm

두께: 16mm

ISBN: 979-11-90136-29-7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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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이 책의 저자 궈징은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한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12월 30일 원인 불명의 신종 폐렴이 우한에서 발견되고, 이 병의 전파로 이듬해 1월 10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훗날 코로나19(COVID-19)로 명명된 이 전염병은 중국 전역으로 급격히 번졌으며, 2020년 1월 23일 진원지인 우한시는 전격 봉쇄된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라는 부제를 단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는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39일 동안 궈징이 봉쇄된 우한에서 SNS에 올린 일기 모음이다. 1인 가구주, 서른 살, 여성,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우한에서 겨우 한 달 남짓 지낸 이방인 신분인 궈징은, 사회적 자원이 전무한 극도로 고립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고립감을 이겨내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매일 밤 친구들과 화상 채팅을 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고, 틈틈이 산책을 나가서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지점을 만들고, 봉쇄된 도시에서 관찰한 비상식적인 일과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기록했다.
SNS에 게재된 그의 일기는 200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BBC 뉴스, 《서울신문》 등 세계 여러 언론에 소개되어 봉쇄된 우한의 현실을 알리고 연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은 팬데믹 시대에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 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 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등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요청”되는데, 이 책이 그 논의의 출발점으로 모범을 보인다고 말했다.
저자소개 위로
저자 : 궈징
페미니스트, 사회 활동가.
대학을 졸업한 2014년, 신동방요리학교 문서 작성 담당직에 지원했다가 남성만 채용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뒤 해당 학교를 법정에 고소, 중국 최초로 제기된 취업 성차별 소송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3년 뒤인 2017년,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074직장여성법률핫라인’을 만들어 취업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법률 지원을 해 주는 활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광저우에서 거주하다가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2019년 12월 말, 원인 불명의 폐렴이 우한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코로나19의 시작이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2020년 1월 23일 우한이 봉쇄되었고, 이날부터 궈징은 봉쇄된 우한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전염병 시대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를 써서 위챗 모멘트와 웨이보를 비롯한 SNS에 올리기 시작한다.
궈징의 일기는 웹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물리적 봉쇄를 깨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SNS에 연재된 그의 일기는 총 200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BBC 뉴스, 《서울신문》 등 여러 해외 언론에 소개되어 봉쇄된 우한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연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역자 : 우디

대학에서 중국어를, 대학원에서 중국 정치외교를 전공했으나 졸업 후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인간이 활자를 번역하는 마지막 시대가 될지도 모를 이 시대에 번역가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순진한 생각 끝에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는 흔치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기존에 소개된 중국어권 도서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책들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소개해 나가고 싶다.
《픽스》, 《그라운드 제로》, 《하루 한 번,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자의 유혹》 등을 번역했다. 

 

해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다학제적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의 어떤 순간과 동일시할 수 있는 책 앞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독자이자, 글쓰기의 윤리와 두려움을 잊지 않는 필자이기를 소망한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낯선 시선》, 《혼자서 본 영화》를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목차 위로
해제_팬데믹 시대 인간의 조건(정희진)
프롤로그_봉쇄 속의 빛

1장 도시가 순식간에 멈춰 서다
1월 23일 난 일이 터져도 냉정한 사람이다
1월 24일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1월 25일 가 본 적 없는 길
1월 26일 봉쇄된 사람들의 목소리

2장 다시금 내 자리를 찾다
1월 27일 이렇게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1월 28일 우리가 연결망이 되어 보자
1월 29일 넌 혼자가 아니야
1월 30일 무력감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서

3장 갇힐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1월 31일 판타지 같은 일상생활
2월 1일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것
2월 2일 누군가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2월 3일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다

4장 살아 있다는 건 우연이자 행운일 뿐
2월 4일 개도 마스크를 썼네
2월 5일 “다 지나간다”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2월 6일 사탕 한 알의 행복
2월 7일 공정하지 않은 죽음

5장 아마도 이게 마지막 외출
2월 8일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 준 밤
2월 9일 인간의 하찮은 비밀 하나
2월 10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2월 11일 폐쇄형 관리가 시작됐다

6장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
2월 12일 봉쇄된 도시에서 가정폭력 피해자가 살아남는 법
2월 13일 자유가 없습니다
2월 14일 마지막 외출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
2월 15일 마법의 도시

7장 지정감시거주자의 일상
2월 16일 주민임시통행증
2월 17일 세상의 일부분이 사라졌다
2월 18일 선택지 없는 선택
2월 19일 행동이 희망을 불러 온다

8장 집단적인 삶, 다양한 일상들
2월 20일 봉쇄 해제의 조건
2월 21일 단톡방 하나로 압축된 삶
2월 22일 혐의를 뒤집어쓴 공동구매
2월 23일 같은 시공간, 다른 경험들

9장 결코 행복하지는 않은 행운아들
2월 24일 훠선산병원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
2월 25일 봉쇄 해제에 대한 상상
2월 26일 언제쯤 저 문을 걸어서 나갈 수 있을까
2월 27일 모든 게 어제와 판박이

10장 열심히 목소리를 내다
2월 28일 뜻밖의 친절
2월 29일 기록되지 않은 그들을 기록하는 사람들
3월 1일 모든 일이 소리 소문도 없이 일어났다

부록_중국에서의 코로나19 진행 추이(2019. 12. 31. ~ 2020. 3. 11.)
상세소개 위로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BBC에서 주목한
봉쇄된 우한의 밤과 낮의 기록!

여성학자 정희진 추천 도서

“나로서는 일관된 마음으로
일기 전체를 써 내려갈 방법이 없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터무니없음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는 것뿐이다.”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한 궈징은, 한 달쯤 뒤인 12월 30일 원인 불명의 신종 폐렴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훗날 코로나19(COVID-19)로 명명된 이 전염병은 이듬해 1월 10일 첫 사망자를 낳았고, 우한시를 비롯한 중국 전역으로 급격히 번져 나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중국 정부는 2020년 1월 23일 우한시 봉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봉쇄는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봉쇄에 임박해서 공고가 난 데다 봉쇄 기간과 생필품 공급에 대한 계획조차 공지되지 않아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거리에서 사람과 자동차가 사라지고,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았으며, 약국과 마트에서 순식간에 물품이 동나는 가운데 사람들은 식량이며 생필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길게 줄을 섰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우한 사람이 격리되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우한에서도 더 가장자리에 궈징이 있었다. 1인 가구주, 서른 살, 여성,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겨우 한 달 남짓 지낸 이방인. 사회적 자원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는 신분, 기능을 멈춘 도시라는 극도로 고립된 상황. 하지만 궈징은 어떻게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전염병에 대한 정보도, 재난 상황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모두 턱없이 부족했던 그는 웹을 통한 연결을 시도한다. 그것을 통해 물리적 봉쇄를 깨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친구들과의 화상 채팅과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

“난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렇게 봉쇄를 깨야 한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라는 부제를 단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는 봉쇄가 시작된 2020년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39일 동안 궈징이 SNS에 올린 일기 모음이다. 고립감을 이겨내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매일 밤 친구들과 나눈 화상 채팅 이야기,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한 이야기, 틈틈이 나간 산책 그리고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이야기, 봉쇄된 도시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과 일상의 소소한 일들, 고립된 채 지내는 그의 내면 풍경이 담겨 있다.
하지만, 거리뿐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봉쇄되던 중국에서 궈징의 개인적인 일기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총 조회수가 200만 회에 달하는 그의 일기는 어느새 중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불의한 사회를 고발하고 연대하며, 앞날이 불투명한 시기에 위안과 희망을 주고받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리원량 추모 활동을 제안했는데, 밤 8시 55분부터 9시까지 불을 끄고 묵념한 뒤, 9시부터 9시 5분까지는 빛을 내는 거면 뭐든 손에 들고 창밖을 비추면서 다 같이 호루라기를 불자는 것이었다. (중략)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소 빛이 드문드문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9시가 되니 몇몇 건물 귀퉁이에서 미약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었다. 그건 봉쇄를 뚫는 빛이었다.” (p.140)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BBC 뉴스, 《서울신문》 등 세계 여러 언론에 소개되어 봉쇄된 우한의 현실을 알리고 세계인의 연대를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우리에겐 고립을 깰 무기가 필요하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내일을 알 수 없는 막막함,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시민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채로 지내던 궈징에게는 삶을 붙잡아 주는 닻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닻이자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무기는 매일 쓰는 일기, 그리고 친구들과의 수다인 ‘밤의 채팅’이었다. 궈징은 이 두 가지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붙잡아 주었다고 몇 번이고 고백한다.

구체적인 상황과 정도야 제각각이겠지만 우리 역시 그처럼 고립된 현실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 내고 있다. 하지만 궈징의 말처럼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다.”(p.135) 그러려면 우리를 삶에 정박시키는 닻, 그 고립을 깰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글쓰기, 수다, 규칙적인 식사, 산책, 운동, 독서, 반려종과 함께 살기 등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직접 시도하는 것이다. 봉쇄된 우한에서 39일 동안, 궈징은 가끔만 실의에 빠지고 대체로 명랑하게 이 일을 해냈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은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조건〉이라는 이 책의 해제를 통해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지워진 과제를 이야기한다.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 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 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진단,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요청되는 이때, 그 출발점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각자의 구체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글을 맺는다. “그러므로, 다양한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들이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모범적 선구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 공감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더 많은 수다와 더 많은 기록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이 시대를 슬기롭게 건널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기를 기대한다.
책속으로 위로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은 강한 죄책감을 불러왔다. (중략) 봉쇄된 이 도시에서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었다. 계속 글을 쓰는 건 내가 사회에 공헌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나는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_p.18

나올 때 별 생각 없이 배낭도 매지 않고 카트도 끌고 오지 않은 나는 가져갈 수 있는 게 얼마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한 번 더 나왔는데, 그때부터 물건을 놓고 경쟁할 때 느끼는 절망 섞인 기쁨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_p.31

채팅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한 친구의 가족이 꼬치구이를 배달시켰다. 화면 속의 친구는 내 눈치는 아랑곳 않고 꼬치구이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친구들이 날 개의치 않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이지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각자 자기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게 정말 중요하니까. _p.42

덮어놓고 의심의 눈초리로만 삶을 바라보면 무력감만 늘어날 뿐이다. 정말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건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생각을 하고 또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무력감, 분노, 감동, 슬픔 같은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깃든 눈물이었다. 생각이 죽음에까지 미쳤다. 삶에 큰 후회는 없다. 나는 이미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_p.42

교통 신호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빨간불을 본 나는 의식적으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다 길에 차가 아예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라서 계속 걸어갔다. _p.51

이번 봉쇄로 시간과 공간은 조용히 멈춰 서 버렸지만, 뭔가를 느끼는 감각은 더 예민해졌고 감정은 오히려 더 확장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본 적이 없다. _p.57

몇몇 가게 입구에 걸려 있던 유리 풍경(風磬)들이 바람결을 따라 맑고 깨끗한 곡을 울렸다. 풍경에는 일, 학업, 사랑, 건강에 관한 사람들의 소망들이 걸려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다 너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자신의 소망을 써 내려 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_pp.61-62

어제 1년 넘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등학생 시절 절친의 소식을 접했다. 이 친구는 현재 간호사이다. 그 친구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네가 쓴 일기 한 편 한 편 다 읽어 보고 있어. 무슨 말로 널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온통 무겁기만 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오늘 병원에 최전선으로 일하러 가겠다는 신청서를 냈다는 거야. 가능하다면 우한에 가서 너와 함께 이 전쟁을 치르고 싶어. 넌 혼자가 아니야.” _pp.74-75

롄씨 아주머니와 헤어질 무렵, 어제 이야기를 나눴던 아주머니가 와서 말을 걸었다. 내가 아주머니들을 알고, 아주머니들이 나를 안다는 느낌이 좋았다. _pp.85-86

한 부부가 입구에서 마스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가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으니까 여자가 말했다. “이제 보니까 당신 말이야, 사람 많은 곳에만 오면 매번 한쪽에 뚝 떨어져 있더라.” _p.87

바깥은 여전히 고요하고 쓸쓸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있는 힘껏 노력했다. 잠시 잠깐 일을 하든 짧게나마 공부를 하든, 무엇이든 괜찮았다. 그게 뭐든 시작해야만 했다. 딴생각이 들 때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비축해 둔 사치품 중에 사탕이 있었다. 한참 동안 입에 물고 있을 수 있는 과일 사탕 같은 거였다. 그 사탕을 한 알 꺼내 입에 물었다. 작은 행복감이 고였다. _p.130

집에 돌아와 촛불 하나를 켜 놓고 리원량을 애도했다. 샤워를 하다가 휴대폰으로 〈인터내셔널가〉를 반복 재생시켜 놓고 목놓아 울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슬픔이자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분노였다. _p.136

봉쇄 이후, 나에게선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오직 ‘오늘’과 ‘내일’이 있을 뿐이다. _p.215

밤에 잠을 자다가 렌즈가 부서지는 꿈을 꿨다. 끼기 시작한 지 반년이 다 된 렌즈인데, 처음에는 눈과 너무 심하게 마찰을 일으켜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다가 간신히 익숙해진 참이었다. 꿈에서 그 렌즈가 부서지는 순간, 전염병 확산 시기라 새 렌즈를 맞출 수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해도 그게 무슨 큰일도 아닌데, 꿈속의 나는 대성통곡했다. _p.216

오늘은 어느 집 세 식구가 아파트 아래로 내려와 햇볕을 쬐었다. 남자아이가 한 열 살 정도 된 것 같았는데, 줄넘기 줄을 갖고 와서 아파트 마당에서 줄넘기를 했다. 잠시 뒤 아이 엄마도 같이 줄넘기를 했다. 남자아이가 줄넘기를 좀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무 더워.” 그러고서는 외투를 벗었다. 줄넘기를 하다가 지친 아이는 엄마와 함께 게임을 하고 놀았다. 처음에는 쎄쎄쎄를 하고 놀더니 나중에는 닭싸움을 하고 놀았다. 아빠는 내내 옆에 서서 지켜보다가 엄마와 아들이 닭싸움을 할 때는 심판 역할을 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 자식 어떻게 손을 쓸 수 있어?”
이 광경을 옆에서 보다가 나도 모르게 신이 나기 시작했다. _p.263-264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잔인한 게 바이러스니, 아니면 인간이니?” _p.320 
추천사 위로

정희진(여성학자,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팬데믹 시대에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 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 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진단,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요청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기의 공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이라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추상적인 논의로는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들이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모범적 선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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