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문제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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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문제가 뭐길래?
  • 송희원
  • 승인 2020.10.0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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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일몰시한이 오는 11월 20일로 예정된 가운데 정부와 출판도서 업계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 출처 셔터스톡.

오는 11월 개정 시한을 앞둔 도서정가제를 두고 정부와 출판도서 업계의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여기에 디지털 콘텐츠 업계, 소비자 측 의견까지 가세하면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다양한 여론이 몇 달째 끊이지 않고 있다. 도서정가제 논란, 무엇이 쟁점인지 차근차근 짚어봤다.

 

| 정가대로 유통하자는 도서정가제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판매를 목적으로 도서를 발행하는 경우 도서에 정가를 표시하고, 판매자는 표시된 정가대로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미권(영국, 미국, 캐나다 등)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일본 등 16개 국가에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한국은 ▲도서의 가격거품 제거와 가격 안정화 ▲작가(특히 신인) 창작 의욕 및 활동 고취 ▲다양한 출판물 제작 유통 활성화 ▲중소출판사 및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 ▲소비자의 다양한 양서 접근 기회 확대 등 출판문화 산업 환경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 2003년에 처음 도입·시행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년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7조의2’의 규정에 따라 도서정가제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 법제화 이후 6번의 개정 보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주요 기틀은 2014년 개정 때 마련됐다. 그동안 신간에만 적용되던 규제를 구간(舊刊)까지 확대하고, 정가의 10% 할인, 5% 적립까지만 허용하도록 했다. 또 출간 1년 6개월 이상 된 구간은 출판사에서 다시 정가를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에는 2014년 개정법을 그대로 유지했다.

출처 셔터스톡.

 

| 합의안 뒤엎은 문체부?

3년 주기로 돌아오는 도서정가제 재검토 시한을 앞두고 문체부는 지난해 7월 출판, 서점, 웹툰·웹소설, 소비자단체 등 13개 단체를 포함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약 1년간 총 16차례 회의를 거쳐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도서정가제 현행 틀을 유지하고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자는 내용의 합의안이었다.

문체부와 민관협의체 합의안

대상: 현 도서정가제처럼 모든 도서를 대상으로 하되 웹툰·웹소설 등 전자출판물 특성을 고려해 정가 표시 의무 완화.

기간: 구간 재정가 기한을 기존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단축.

범위: 현 도서정가제 할인(가격할인과 간접할인을 포함해 정가의 15% 이내)을 유지하되 국가, 지자체, 도서관 등 공공기관 구매 할인율을 10%까지만 허용.

그런데 지난 7월 31일 문체부가 민관협의체와 합의했던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보류하고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출판인회의 등 36개 관련 단체는 문체부의 통보에 즉각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반발했다.

9월 18일 문체부 오영우 1차관이 공대위 측을 찾아 도서정가제 추가 검토 4개 항을 제시했다. 전자책 할인, 도서전 판매 도서 할인, 책 할인율 확대 등 사실상 도서정가제의 기본 방향을 현행 유지·보강한다는 합의안에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문체부는 “민관협의체 합의안은 국민 의견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어 추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출판계는 기존 합의사항을 파기하고 전면 재검토하려는 일방적인 통보라며 반박했다.

문체부 추가 검토안

대상: 문체부에서 주최 또는 예산을 지원하는 도서전에 한해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연재 중인 디지털 콘텐츠는 완결 전까지 도서정가제 적용 유예.

기간: 출간한 지 3년 경과, 최종 판매자(시점) 주문이 없은 지 1년이 경과한 장기 재고도서에는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범위: 도서전 허용 할인율 확대(현행 15%에서 30%로), 전자출판물 할인율을 20~30%로 확대.

공대위 측은 문체부의 추가 검토안이 “도서정가제 개악이자 사실상 폐지안”이라며 청와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후 도서정가제 정부와 공대위 양측의 의견 대립은 현재까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 두 가지 쟁점 ‘할인’, ‘예외’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쟁점이 된 키워드는 ‘할인’과 ‘예외’다. 문체부의 검토안은 도서전, 장기 재고도서, 전자출판물에서의 ‘할인’ 폭을 넓히고, 전자출판물을 도서정가제 적용의 ‘예외’로 두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도서정가제의 첫 번째 쟁점인 ‘할인’에 대해 살펴보자.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측은 할인이 제한되면 소비자의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도서정가제를 유지·강화하자는 측은 도서정가제에는 출판사가 일정 기간이 지난 도서의 가격을 다시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 안정화를 위해 출판·유통계가 ‘자율도서정가협의회’를 공동 구성해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도서정가제 찬성 측은 ‘할인’이 늘어나면 책의 내용보다 가격으로 경쟁하게 되기 때문에 신간보다는 할인율이 높은 구간과 흥행성 있는 대중서 위주로 팔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가격경쟁력과 흥행성이 낮은 학술서, 신인 작가의 저서 등 새롭고 다양한 책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공대위 소속의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도서정가제에서 추가 ‘할인’만 늘려 가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창작자, 출판사, 유통사의 몫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서는 ‘할인’이 아닌 공정한 가격을 정가로 측정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셔터스톡.

두 번째 쟁점은 웹콘텐츠 완결 전 연재물을 도서정가제 ‘예외’로 둔다는 문체부의 재검토 조항이다. 민관협의체의 한 관계자는 여기에는 20만 명이 동의한 ‘도서정가제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 여론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난해 10월 웹소설, 웹툰, 전자책 독자들로 구성된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이란 단체가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원의 요지는 “전자출판물에 있어서는 도서정가제 규제를 폐지 혹은 별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체부는 이를 근거로 민관협의체의 합의안을 뒤엎고 ‘국민(소비자) 후생’을 이유로 들며 전자출판물에 대한 예외 조항을 검토안에 포함한 것이다.

현행법상 웹툰·웹소설 같은 웹콘텐츠는 출판물로 간주 돼 ISBN(국제표준 도서번호)을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차마다 웹에 업로드되는 웹콘텐츠의 특성상 ISBN 발급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웹콘텐츠에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대위에 소속된 중소전자책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웹콘텐츠가 도서정가제의 적용받지 않아 할인율을 대폭 높일 시 “네이버나 카카오톡 같은 거대 플랫폼 업체의 덩치만 키우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그 할인의 부담은 저작권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 청원. 이 청원에는 웹소설과 웹툰, 전자책 독자들의 주도 아래 20만 명이 동의했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처.

 

| 출판 생태계 종 다양성을 위한 최후의 보루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출판도서 업계는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된 이후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이 보장됐다고 입을 모은다. 즉 흥행성 있는 책보다 ‘양질의 책’을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강화된 이후 출판 생태계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출판사는 44,148개(2014년)에서 61,084개(2018년), 신간 발행 종수도 61,548종(2013년)에서 81,890종(2017년)으로 증가했다. 독립서점 역시 101개(2015년)에서 551개(2019년)로 대폭 늘어났고, 도서만 판매하는 전국 ‘순수서점’ 수 감소세도 완화됐다. 또 출판사, 서점, 신간 발행 종수 모두 증가했다. 도서정가제가 출판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증폭시킨 보루가 된 셈이다.

도서정가제 유지·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만약 도서정가제가 폐지될 경우 출판사로부터 값싸게 책을 공급받는 온라인서점과 대형 온라인서점 외 대부분의 소규모 서점들은 폐점의 위험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가격 경쟁이 가능한 대형 출판·유통사만 생존하며 소형 출판사는 도태되거나 경영악화로 몰락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창작자들도 출판 생태계를 위해서는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작가 1,135명을 대상으로 올해 10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가 10명 중 7명은 현행 도서정가제의 유지 또는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도서정가제가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47.1%가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가격경쟁의 완화 ▲작가의 권익신장 ▲동네서점 활성화 ▲신간증가 ▲출판사 증가 등을 들었다.

 

| 싸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보다는…

“대중적 스타는 유명세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인 반면, 베스트셀러는 잘 팔리기 때문에 잘 팔리는 책이다.”
_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액체근대』 중에서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는 무분별한 할인으로 잘 팔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 더 잘 팔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도서정가제가 처음 도입될 당시 정부와 출판도서 업계는 책을 단순 상품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재 측면에서 바라봤다. 즉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가격 할인으로 인해 책의 가치보다는 상대적으로 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가격 중심의 왜곡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인 셈이다.

도서정가제를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측은 도서정가제에 있어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양질의 콘텐츠를 창작·출판·유통·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치 중심의 책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코너. 출처 셔터스톡.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코너. 출처 셔터스톡.

도서정가제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10월 7일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해 도서정가제에 대해 “국민청원이 제기돼서 이용자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지만 도서정가제는 유지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문체부가 민관협의체와 마련한 안을 근간으로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다.

도서정가제 일몰을 한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출판도서 업계와 디지털 콘텐츠 업계, 정부를 비롯한 소비자, 생산자, 유통업자가 최소한의 후유증으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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