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지구 멸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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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지구 멸망이 아니다
  • 김택근
  • 승인 2020.10.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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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겨우겨우 가을 속으로 들어왔다. 지난여름은 장대비에 쓸려나갔다. 그렇게 많은 비가 왔어도 무지개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네 젖은 가슴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가을은 무탈할 것인가. 여름이 떠내려갔는데 무엇을 익혀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은 예견되었다. 돌아보면 새천년을 앞둔 지구촌의 하늘에는 불안이 서려 있었다. 모두 지구가 병들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앙은 인류에게 닥칠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우리 것이라 여기고 있다. 착각이다. 지구는 호모 사피엔스의 서식지일 뿐이다. 지구 안에는 인간 말고도 억겁의 생명체가 있다. 그래서 그날이 온다면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이다.

 

| ‘지속 가능한’ 이면의 ‘재앙’

 언제부턴지 ‘지속 가능한 사회’란 용어가 쓰인다. 그 속에는 이대로 가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올 것이라는 절망이 들어있다. 식자들은 인류에게 닥칠 재앙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펼칠수록, 계산할수록 새천년이라는 인류의 미래는 어두웠다. 자연히 종말론이 퍼졌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그중 하나였다. “199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사람들은 1999년 7월을 주시했다. 다행히 지구에서는 큰일이 나지 않았다. 공포의 대왕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1999년 7월’은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9는 작용의 끝수이며, 7은 분열의 최후단계를 표상하는 숫자여서 인간 문명의 최후단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의 대왕’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내려올까. 

우리 시대에도 눈과 귀가 밝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포식은 끝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전혀 낯선 자연을 보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는 여름을 찬양했던 수많은 글을 수장시켜버렸다. 이제 자연의 실체가 드러났다. 자연은 인간 편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앞으로 인간의 문명은 한나절의 비에도 쓸려 가버릴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다른 말을 들어보자. 

“세계는 대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다. 대홍수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특정 인종과 지역을 빼고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다. (…중략…) 그 후로는 많은 지역이 가물 것이다. 하늘에서는 수많은 불덩어리와 돌이 떨어질 것이고 모든 것은 불로 파괴될 것이다.”

 

| ‘기후 악당’ 아주 못된 나라

한국은 언제부턴가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불린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이고 1인당 배출량은 무려 5위다. ‘코로나19 방역체제’를 세계에 자랑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를 오염시키는 아주 못된 나라이다. 한국인의 쓰레기 배출량 또한 세계 최상위권이다. 빗물에 떠내려온 쓰레기가 산하를 뒤덮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문득 지난 초여름 세상을 떠난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이 생각났다. 자연의 비명을 듣고 뼛속까지 아파했던 선생의 울음을 우리는 그저 그런 탄식으로만 여겼다. 선생은 하늘에서 쓰레기 강산을 내려다보고 다시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학교로 오가는 버스 속에서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 갑니다. 잠깐 눈을 붙이려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서 보이는 산과 들이 마구잡이로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상처 입지 않은 산과 들이 없습니다. (…중략…) 산허리가 허옇게 드러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서식처가 이처럼 갈가리 찢겨 나가는 데가 여기뿐만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여행이고 뭐고 돌아다니는 것이 도무지 싫습니다.”(김종철 『땅의 옹호』)  

지난여름 하염없이 쏟아진 장대비는 하염없는 지구의 눈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 눈물이 마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큰일’이 다가오고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늦었더라도 하늘을 무서워하고 바람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한다. 다시 말해도 지구 멸망이 아니다. 지구에게 버림받은 인류의 멸망이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없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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