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고 그저 실천하라! 그녀의 ‘산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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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주하고 그저 실천하라! 그녀의 ‘산 사용설명서’
  • 허진
  • 승인 2020.09.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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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일주문에 들다 | 비봉 코스 금선사, 승가사

영화 <카(Cars, 2006)>는 40번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기존 66번 국도와 그 선상의 마을이 지도뿐 아니라 사람들 기억에서도 사라졌던 실제 미국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늘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 즉 직선으로 뻗은 경제적인 길을 찾는다. 길이 없으면 개척해서라도 직진하는 인간의 합리성에 구불구불 돌아가는 곡선 길은 버려진다. 등산길은 어떨까. ‘정상 찍기’에 목적을 둔 사람이 등산로를 따라 지체 없이 정상에 오르면 그 길은 직선 길이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위치한 사찰에 굳이 들렀다 가는 길은 우회하는 길, 즉 곡선 길이다.

이번 특집을 기획하며 북한산에 직선을 그을지, 곡선을 그릴지 고민했다. 그러다 퍼뜩 떠오른 한 마디, ‘바쁠수록 돌아가라.’ 이번 북한산 산행은 직진본능을 억누르고 멀리 돌아가기로 한다. 아 참, 1985년 공식 지도에서도 삭제된 미국 66번 국도는 지금 어떻게 됐냐고? 추억의 도로로 회자하며 길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자 2003년 국도로 다시 복원됐다. ‘66번 도로일주’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때로는 직선보다 곡선, 직진보다 우회다.

 

사진. 유동영 

 

비봉탐방지원센터 ▶ 금선사 ▶ 비봉 ▶ 승가사 ▶ 구기탐방지원센터

| 어디서 찍을까, 산행의 쉼표

7730번 버스를 타고 이북오도청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비봉탐방지원센터로 향했다. 꽤 경사가 있는 길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평일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비 예보 때문인지 길에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 편한 티에 레깅스를 입은 앳돼 보이는 여성이 지원센터 앞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산 비봉 코스를 함께 오를 동행인, 등산을 시작한 지 1년 됐다는 32살 윤성혜 씨였다. 오늘 잘 부탁한다는 기자의 말에 스스로 ‘산린이(산+어린이의 합성어로 등산 초보자를 일컫는 신조어)’라 칭하며 수줍어한다.

최근 몇 년 사이 2030 젊은 등산객 비중이 부쩍 늘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등산을 인증하는 문화, 쉽게 등산크루(소규모 등산 모임)를 꾸릴 수 있게 만들어진 플랫폼의 보편화, 힐링 열풍 등이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실내 스포츠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등산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등산을 시작하게 됐을까.

“작년에 퇴사와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클라이밍, 서핑, 등산 등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죠. 그중 제일 좋았던 등산에 정착하게 됐어요. 그전까진 집에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하는 ‘인도어파(집 안이나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였어요.”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원래 인도어파였다니 희망이 보였다. 아웃도어 활동과 담쌓고 산 기자도 산행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을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표지판은 오른쪽으로 등산로, 왼쪽으로 목정굴을 가리켰다. 이번만큼은 직진이 아닌 우회,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기로 하지 않았던가. 산행의 첫 번째 쉼표를 목정굴에 찍기로 한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물 옆 계단을 오르자 깜깜한 석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 정조가 농산 스님 기도로 후사를 봤다는, 순조 임금의 탄생 설화가 깃든 기도처다. 목정굴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템플스테이 명소로 유명한 금선사(월간 「불광」 8월호 ‘청불이 온다’ 특집 참고)가 나온다. 경내에는 200년 넘은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나무가 멋대로 서 있었다. 보리수나무를 살리기 위해 요사채를 휘게 지었을 정도로 자연과 하나 된 사찰. 외국인들이 금선사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문득 산이 좋아 산을 계속 찾는다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산의 어떤 점이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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