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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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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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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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스님의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저작·역자 일감 정가 22,000원
출간일 2020-09-07 분야 역사/문화
책정보

판형_ 425*265mm 두께_17mm

225쪽 | 올컬러 |ISBN 978-89-7479-844-5(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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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수만 년을 거슬러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 그림 편지, 알타이 암각화

수행자의 깊은 사유와 통찰로 풀어낸 암각화 명상록!

문자가 없던 시대 고대인들은 바위와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 바로 암각화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사슴‧물고기‧코끼리‧물소 등 동물과 사람, 기하하적 무늬가 대부분이며, 여기에는 안전한 사냥과 풍부한 먹을거리 등 축복과 안녕 그리고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원과 주술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 일감 스님은 2005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과의 인연으로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본 뒤 마음에 늘 암각화를 품고 있었다. 2016년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암각화 지역인 러시아 알타이‧몽골‧키르기스스탄 등을 탐방하며, 탁본과 기록을 꾸준히 남기기 시작했다. 체감 온도 영하 30도, 텐트를 날려버릴 만큼 매서운 바람, 숨 쉬기가 곤란한 3천 미터의 고산 등 극한의 자연 환경을 뚫고 간 설산에서, 수만 년 전 고대인들이 남긴 알 수 없는 그림의 뜻을 더듬어보는 일은 흡사 언어의 세계가 끊어진 자리를 궁구하는 수행과 비슷했다.

스님은 암각화와 일체가 되는 신이(神異)한 체험을 통해, ‘우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가 그림에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수만 년 전 시간과 오늘 이 자리가 그대로 하나이고, 상하가 따로 없고 미추도 없고 유명과 무명이 둘이 아닌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의 고통은 사라지고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암각화 탁본 작업은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돌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뜻을 마음에 담아왔다.”라고 스님은 말한다. 여기에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떨림과 감격을 절제된 언어로 깎고 다듬어 한 편의 시(詩)로 벼려냈다. 최소한의 선(線)으로 표현된 암각화를 닮은 시이다. 암각화와 시, 그리고 짧은 산문으로 어우러진 이 책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암각화 명상록’이다. 한편, 수몰 위기에 처한 우리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살리기 위한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저자소개 위로

저자_ 일감(日鑑)

해인사로 출가했으며 봉암사 태고선원, 해인총림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 정진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수락산 용굴암 주지로서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소임을 맡고 있다. 멕시코 반야보리사 주지 당시 멕시코 역사상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를 열고, 금산사 템플스테이 ‘내비둬콘서트’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문화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굵직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한편, 금강경 읽기 모임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는 데에도 진력해왔다. 저서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쓰며 화제가 된 『금강경을 읽는 즐거움』, 불교TV 대담집 『그대로 행복하기』 등이 있다.

목차 위로

추천의 글 : 우주의 꽃, 사람 그 불립문자를 읽다 - 이근배(시인)

추천의 글 : 암각화, 그 시원(始原)의 떨림을 감지한 탁견 - 김호석(수묵화가)

들어가며 : 신과 인간이 많든 영혼의 예술품, 암각화

1장 하늘이여, 자비로 내리소서

타왕복드 | 하늘의 소리 | 어서 가자 | 춤 | 두 개의 태양 | 사슴 별 | 태양 소년 | 약속, 믿음

바퀴로 오신 태양신 | 마차가 왔다 | 하늘길 | 태양이다 | 신(神)의 탄생 | 꼬리도 춤을 춘다 | 하늘사슴 | 텡그리, 단군 할배여 | 하늘님의 이야기 | 하늘님의 뿔소 | 새 인간

2장 간절한 기도 하늘에 닿으리

기도하는 밤 | 기도하는 사람들 | 축제 | 무량겁의 첫걸음 | 큰 소원 | 고요함이 가득하여라 | 길을 따라 | 소를 그려라 | 바위에 새긴 염원 | 꿈 | 엄마가 보고 싶어 | 대동세상(大同世上)

고리는 뭘까? | 제사장 | 영겁의 꽃이 되어 | 우리 엄마 | 소년아! | 향상(向上)의 길로 | 나아가자

3장 지금 여기 꽃으로 피어라

만다라 | 원융무이(圓融無二) | 용감한 바둑이 | 권투 시합 | 잘 봐 둬라 지도다 | 꿈결에 | 깃발 꼬리 | 춤의 초상화 | 위풍당당 | 맘모스 | 탁본을 뜨는 것은 무엇일까? | 사냥개 | 봤다, 봤어! 만(卍) 자! | 이대로도 멋있다 | 봐라, 아리랑 춤이다 | 우리 집 설계도 | 함께 간다 | 엄마들 | 서로가 당당하다

상세소개 위로

암각화, 선인들이 남긴

숭고한 삶을 향한 염원의 기록

암각화는 주로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주로 그려졌다. 프랑스의 라스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유명하다. 인류가 동굴 밖으로 나와 바위에 그린 암각화로는 현재 몽골과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등 ‘알타이’ 유역에 가장 많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여러 암각화가 남아 있다. 암각화는 철기시대를 지나면서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급격한 기후변화나 문명의 대전환일 일어나 삶의 형태가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암각화는 수십만 년 전 인류가 남긴 오래된 역사책인 셈이다.

암각화에는 기하하적 무늬 외에 태양, 말, 사슴, 고래, 사람 등 자연물이 그려져 있다. 당시 척박한 자연 조건에서 바위를 긁고 파내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일상의 기록이 아닌 그들이 절대적으로 지켜내려 했던 어떤 메시지와 인간 정신이 닿지 않은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이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피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의 지극한 마음이 담겨 있는 암각화는 오늘날의 언어로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저자 일감 스님은 2005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로 유명한 김호석 화백과의 인연으로 암각화를 만났다. 이후 2016년부터 몽골, 러시아 알타이, 키르기스스탄 등지에서 본격적인 암각화 탐방을 이어갔다. 얼어붙은 땅에 간신히 친 텐트에서 새우잠을 자고,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암각화를 찾아 다녔다. 스님은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암각화에 대한 이해는 논리적이며 명확하고 넓었다. 김호석 화백은 “스님은 학위만 없을 뿐 박사급 수준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스님에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암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떨림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感)이 있다.” 그 감은 바로 모든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자리를 깨닫는 선(禪) 수행에서 단련된 것이리라.

깊은 어둠을 머리에 이고 홀로 기도하는 샤먼의 모습,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 태양신에게 북을 두드리며 제를 올리는 모습, 하늘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등. 스님은 암각화에서 숭고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인들의 염원을 읽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던 그들에겐 문제를 해결해 줄 하늘이나 신이 필요했을 테고, 그 신을 향해 제물을 올리고 기쁘게 해주기 위한 축제도 벌였을 것이다. 암각화는 신과 연결해주는 통신선이었다. 선인들은 결국 고통 없는 하늘에 태어나려는 열망을 갖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더 나아지고, 좋아지고, 높은 곳으로 가려는 ‘향상(向上一路)의 마음’, 이것이 바로 암각화에 깃든 메시지라고 스님은 말한다.

“암각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낸, 화엄만다라입니다. 암각화를 보는 것은 맑고 오래된 거울[고경古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깨어나게 합니다. 새롭게 하고 힘이 솟게 합니다. 사람이 본래 지닌, 선량한 성품[神性, 佛性]을 알게 합니다.”

돌에 새겨진 세상에서 길어 올린 시(詩),

심금을 울리는 명상록이 되다

암각화는 바위라는 한정된 면적에 최소한의 그림으로 구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줄이고 깎고 다듬어 결정(結晶)만 남기는 시(詩)의 정제 과정과 같다. 수만 년 세월이 지난 지금, 암각화의 본래 뜻을 헤아리는 데도 시적 장르가 가장 적합한 이유이다. 세상의 어느 시인도 시도하지 않은 작업이다. 일감 스님은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떨림과 설렘, 그리고 순간적으로 스치는 영감을 시의 언어로 낚았다.

“암각화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그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암각화에 대한 이런저런 기초 지식이야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을 내려놓고, 깊은 내면에서 ‘아,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음이 있을 때까지 마음을 비우고 그저 암각화를 바라봅니다. 한참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시로 담아낸, 영감의 순간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여러 개의 바퀴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를 태양신으로 묘사하며 “빛이 필요한 곳/ 지혜가 필요한 곳에// 빠짐없이 비추려고/ 땅으로 내려오셨네.”라고 썼다.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암각화는 “제사, 기도, 소원 성취/ 그런 말은 다 잊어버렸고/ 춤을 출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神)이 태어난다.”고 했다. 커다란 사슴을 새긴 암각화는 “피와 살은 배고픔을 채워 주었고/ 부드러운 가죽은 추위를 막아 주었다// 구멍 뼈는 악기가 되어 삶을 위로하였고/ 정강이뼈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종래에는 뭇 생명들의 애달픈 염원을 안고/ 넓적부리 새가 되어 하늘에 올랐다/ 다시 또 내려올 하늘이 되었다// 아… 하늘사슴이여.”라고 적었다. 오래 전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이근배 시인은 추천사에서 “고려, 조선조의 나옹(懶翁), 보우(普愚)를 비롯한 고승들의 선시(禪詩)의 맥을 잇는 일감 스님”이라고 상찬하며 말했다.

“사람을 꽃으로 보는 눈이 있다. 석가모니의 눈, 예수의 눈, 아마 그런 눈일 것이다. 아니 그 꽃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다. 석가모니의 귀, 예수의 귀, 그런 귀를 가진 사람이 있다. 시인이다. 일감 선사는 바로 그런 눈과 귀로 일만 년 저쪽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거기 바위에 새긴 그림들을 글자로 읽고 말씀으로 적는다.”

스님의 상상력과 불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해석은 학술적 논증을 넘어서는 깊은 감동과 공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동시성의 깨달음,

일감 스님이 암각화에서 읽어주는 지혜들

수만 년 전, 우리 선조들도 오늘날 우리와 같은 삶의 이치와 선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갔음을 암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선조들이 걸어간 그 길, 그 바탕 위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 일감 스님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선조들의 귀한 가르침을 놓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극락의 삶을 살아가자는 데 있다. 나아가 코로나19로 불안과 혼란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암각화에 깃든 공동체 정신과 생태환경‧생명의 고귀함을 되새기며, 소욕지족의 담박한 생활에서 해법을 찾자고 권유한다. 다음은 일감 스님이 암각화에서 읽어주는 몇 가지 지혜이다.

◆ 향상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 : 암각화는 삶의 지극한 순간을 단순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핵심은 ‘향상(向上)하는 마음’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큰 세상으로 향상하고자 하는 통 큰 마음, 영혼의 향상을 향한 간절한 염원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이끄는 돛대이다.

◆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다 : 선인들은 삶의 고통을 해결해 줄 대상으로써 신을 만들어내고 제사를 올렸다. 차츰 영원으로 향하는 마음은 신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둘이면서도 하나인 자타불이(自他不二), 즉 신이 곧 내가 되고,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깨달음으로 발전한다. 모든 만물이 하늘이라는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들 삶의 목적이었다.

◆ 생명 있는 것들은 저마다 하늘의 성품이 있다 : 암각화에는 많은 동물과 사람이 등장한다. 모두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모든 존재들과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살아간다. 연결되어 있기에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대방이 고통스러우면 나도 괴로울 수밖에 없고, 상대에게 좋은 일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올바른 이치를 아는 사람은 저절로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로운 선택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암각화를 새긴 우리 선조들도 그러한 이치와 선택으로 삶을 이어 왔고,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있다.

◆ 근원적 신성함과 삶의 숭고함을 놓지 마라 : 비록 바위에 새겨진 작은 그림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면, 한없이 높은 하늘과 끝없이 평평하고 너른 땅의 근원적 신성함,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삶의 숭고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이치를 알면 서둘 것도 없고, 조바심도 없다. 있는 그대로 감사와 사랑이 드러난다.

◆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라 : 암각화 제단에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신을 경배하기 위한 춤과 노래,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사랑과 베풂, 그리고 헌신이 있다. 또 자기를 낮추고 남을 살리는 경애가 있고, 그 모든 노력의 종착점에 신과 인간이 둘이 아닌 ‘원융무이(圓融無二)’의 이치가 있다. 선인들은 그 이치대로 삶을 사랑하고 자연을 품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깨달음이며,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보편적 길이다.

◆ 우리는 모두 한 생명이다 :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진 관계로 존재한다. 출신이나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 남이 있어야 나도 드러나고, 상대가 있어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상대가 없으면 내가 없다.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 마음속의 태양을 잃지 마라 : 암각화에는 태양이 많이 등장한다. 여러 종교에도 태양을 닮은 상징들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태양이 있다. 지혜와 자비의 태양이다. 선인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을 닮기를 원했다. 거짓 없는 태양처럼 양심을 지키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꿈꿨다.

◆ 기도하라 : 인간의 노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한계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도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먼 옛날 옛적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성으로 기도했을 선인들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 지금 이 자리에서 극락정토를 만들어라 :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 고통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불교이다. 고통의 원인을 파악해서 팔정도로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려는 노력이 암각화에도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배고픔 등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염원을 담아, 하늘의 신 태양에게 제물을 올리고 축제를 열었다. 모두가 함께 먹고 춤추고 즐겼다. 열반과 극락은 저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순수한 목적이다.

추천의 글

석가모니의 귀, 예수의 귀, 그런 귀를 가진 사람이 있다. 시인이다. 일감 선사는 바로 그런 눈과 귀로 일만 년 저쪽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거기 바위에 새긴 그림들을 글자로 읽고 말씀으로 적는다. -이근배(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 책은 일감 스님만의 독자성이 빛을 발한다. 스님은 신(神)의 세계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신은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이다. 신은 신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에 담긴 것들은 스님이 본 그림자일지 모른다. 말은 안 하면 안 할수록 좋다. 암각화에서 보면 꼭 필요한 내용만 간명직재(簡明直截)하게 표현하고 나머지는 가만히 남겨 놓았다. 남겨 놓은 그곳에 에너지가 숨 쉰다. 말하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빛의 속도로 쏘아대는 스님의 작은 파편들이 용광로가 되기를 바란다. -김호석(수묵화가)

책속으로 위로

마차가 왔다/ 사내가 왔다/ 두 바퀴 마차를 몰고// 사내가 나타났다/ 무엇일까?// 어디서 왔을까?/ 훠이~~// 길 비켜라// 님이시다// 춤추며 반겨라 (-〈마차가 왔다〉)

싸이말루이 따쉬에서 마차 그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마차도 어렵게 발견했다. 사실 처음으로 마차가 나타나서 놀랐다. 아마 한두 점 정도는 더 있을 것 같은데 찾지 못했다. 이 그림은 아직 마차에 사람은 타지 않고 짐만 싣는 구조다. 바퀴가 강조되고 여덟 개의 바큇살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 바퀴와 관련된 지식이나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제의(祭儀)와 관련된 춤추는 그림이 함께 있는 것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마차는 그들의 외형적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차를 바위에 새기고, 하늘에 제를 올리고 춤추며 노래하는 축제를 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암각화는 그런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탁본을 한 점 뜨기로 했다. 워낙 높은 산이라서 비가 한두 방울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지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탁본을 하기에는 마땅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산신령님께 절하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탁본을 한 장 뜨겠으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고(告)하는 의식을 간단하게 한다. 그런 다음, 바위를 곱게 쓸고, 바위가 깨어나면 조심스럽게 물을 뿌린다. 그러고서 빠른 손길로 최고 품질의 한지(韓紙)를 물 뿌린 바위 위에 붙이고, 그 위로 광목천을 덮어 물기를 뽑아내면서, 암각화의 윤곽선을 따라 살살 두드려 음영을 만들어 낸다. 적당한 햇볕과 바람이종이의 습기를 말려 주면, 솔가지를 태워 얻은 먹으로 암각화의 영혼을 한지에 옮긴다. (74쪽)

둘이/ 신나게 춤을 춘다// 네가 사라지고/ 나도 사라진다// 춤이 춤을 추다가/ 춤도 사라지니/ 일없이 고요하다// 다시/ 산이 되고/ 물이 되었다 (-〈춤의 초상화〉)

우연히 이 그림 앞에서 이상한 체험을 하였다. 그 주변의 다른 많은 그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직 이 그림만 내 눈에 보이는 특이한 체험이었다. 몇십 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에 이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되어 버렸다. 내 마음이 이 그림과 알 수 없는 교류를 하는 듯했다. 아마도 세상이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어서 그랬는지 그림 앞에서 발이 땅에 딱 붙어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가 뇌세포 하나가 새롭게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이 그림은 많은 다른 그림들과 같은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인데, 내가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다른 그림과는 함께 있으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림이 되었다.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데, 그 하나의 개체들이 어느 순간, 오직 둘만 딱 만났다. 그 그림과 내가 둘만의 세계를 펼쳐 내고 있었다. 사실은 모든 존재들이 매 순간 그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이치이지만 새롭게 느꼈다. 개별적 존재들의 완전함과 각 존재들의 삶이 전체와 맞닿아 서로가 서로를 완성하고 있는 이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다시 깨닫게 해 준 이 그림은 나에게 특별한 그림이 되었다. 우리 인생도 그럴 것이다. 개인 개인의 인생이다 소중하고, 순간순간의 삶이 다 의미가 있다. (180쪽)

염소들의 자세를 봐라/ 부족한 곳이 한 곳도 없다// 사람은 또 어떤가/ 손가락 표현이며 머리카락도 멋지게 휘날린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들 가슴속에 있다 (-〈이대로도 멋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이 암각화의 아랫부분은 떨어져 나갔는지, 원래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다. 떨어져 나갔어도 그림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런 공간을 활용해서 그렸다면, 그것은 더 훌륭하다. 그림 속의 주인공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보면, 아랫부분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뒤로 휘날리는 머리카락은 빠른 속도를 말하는 듯하고, 원초적 단순함으로 표현한 손가락은 기운이 넘친다. 주인공의 이런 동작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동물들의 역동적인 자세하고도 잘 어울린다. 그림의 절반 이상이 없어졌어도, 지금 이대로도 만족할 만하다. 우리 삶에도 이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대로도 만족함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미 있는 만족함은 돌아보지 않고 없는 것을 찾느라 이미 있는 행복을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있다. 공중에 떠 있는 몇몇 점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라고 하면 좋겠다. (196쪽)

함께 간다/ 같이 간다// 사람도 가고/ 멋쟁이 염소도 가고/ 발톱 찬란한 늑대도 간다// 이것저것/ 내 편 네 편// 한 생각 고개 돌려/ 다 내려놓고// 향상의 한길을/ 함께 나아간다 (-〈함께 간다〉)

동물들이 하나같이 멋지다. 뿔과 꼬리를 어쩌면 저렇게 멋있게 연출했을까? 맨 뒤쪽에 발톱을 강조해서 맹수라는 것을 나타냈다. 호랑이인지 표범인지 암튼 맹수다. 맹수는 입 벌려 으르렁으르렁 소리를 내지만, 앞선 동물들을 진짜로 겁줄 생각은 없다. 그저 자신도 여기 가고 있다고 알려 줄 뿐이다. 또 앞에 옆에 동물들도 맹수가 호랑이든 표범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저 가는 길을 함께 갈 뿐이다. 사람은 또 어떤가. 해질 녘 양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듯, 동물들 길 잃지 않도록 뒤에서 격려하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잘 데려가고 있다. 서둘 것도 없고, 조바심도 없다. 그저 함께 가는 거다.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각자가 가진 개성과 장점들을 잘 드러내고 살아가되,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202쪽)

가자

너도 가고

너도 가자

향상의 큰길을

다 같이 함께 가자

태양처럼 밝은 세상

달처럼 맑은 세상

청보리밭에 바람 불면

종달새 높이 날고

새털구름 양털구름 빛나는 세상

아이들의 웃음소리 골목에 가득하고

할머니 할아부지 정자에 올라앉아

호랑이 담배 피는 한가로운 세상

먹을 것이 있으면 둘러앉아 나눠 먹고

힘든 일 기쁜 일도 거들어 함께하며

대통령이 누구인지

지도자가 누구인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억울한 눈물 없는 참다운 세상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참다운 세상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손잡고 함께 가자

(-〈향상(向上)의 길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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