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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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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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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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다르마ecodharma, 생태위기의 시대 새로운 불교 행동철학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
저작·역자 데이비드 로이 지음 | 민정희 옮김 정가 19,000원
출간일 2020-09-07 분야 불교/철학
책정보

판형_152*225mm 두께_2cm

360쪽 | 별색 3도

ISBN 978-89-7479-843-7(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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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전 지구적 생태위기!
불교는 과연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팬데믹과 기후변화 그리고 인종차별, 젠더, 신식민주의 등 생태 사회적인 문제들이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은 이런 사회 집단적인 측면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개인의 고苦’를 없애는 데 주력해온 불교는 집단의 고통에 대해 어떤 답을 주고 있는가. 한편 인간의 안전과 편리를 해결하며 눈부시게 발전해온 과학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코앞에 닥친 생태적 위기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과학에 대한 보이지 않는 맹신이 당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와 과학이 때로는 갈등하고 화합하며 오늘의 인류 문명을 있게 했다면, 위기의 시대에 종교가 할 일은 무엇인가. 또는 불교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책은 현대 문명의 가치와 방향을 재설정해야 하는 시대적 부름에, 불교철학자 데이비드 로이 박사가 제시하는 새로운 불교 행동철학을 다룬다. ‘에코다르마Ecodharma’로 명명된, ‘생태불교’의 핵심은 바로 ‘궁극의 깨달음은 사회적 실천에 있다.’라는 데 있다. 우리에게 당면한 생태ㆍ사회적인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귀중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는 이 책은,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명저이다.

★★★★★ 2019년 영성과 실천 분야의 최고의 책!
★★★★★ 이 행성의 지각 있는 존재와 생명체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크리스 이브스(작가)
★★★★★ 이 책은 불교 선종의 전통과 철저한 학문에 대한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기적절하고 절실히 필요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헨리 슈크먼(선 수행자, 시인)

저자소개 위로
데이비드 로이 David R. Loy


불교학자이자 선禪 수행자. 1984년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하와이에서 야마다 코운, 로버트 애잇킨과 함께 불교를 만나 수행하고,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선 수행을 계속했다. 20여 년 간 일본에 머무르며 분쿄 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8년 법사 인가를 받은 뒤 본격적인 선 지도자의 길로 나섰으며, 스피릿 락Spirit Rock, 바르 불교학센터Barre Center for Buddhist Studies. 오메가연구소Omega Institute, 캠브리지 인사이트 센터Cambridge Insight Center, 파리의 테르 데빌Terre d’eil, 부다페스트의 다르마 게이트Dharma Gate와 같은 곳에서 국제적인 수련회와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참여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 모교인 칼튼 대학Carlton College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석연료에 대한 대학의 기금 투자를 철회하지 않기로 한 대학 이사들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서 그는 나중에 이 학위를 학교에 반납했다.)
로키산 에코다르마 수행센터의 부원장이기도 한 그는 불교와 생태주의와 행동주의에 관해서 많은 기사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며, www.davidloy.org에서 글과 팟캐스트를 볼 수 있다. 저서로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불광출판사 펴냄), 《새로운 불교의 길A New Buddhist Path》과 《결핍과 초월Lack and Transcendence》 등이 있다.

우리가 서 있는 벼랑 끝에서 우리는 돌아설 수 있을까? 이 책은 인류가 직면해온 거대한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불교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오늘날 불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한 탐색해 보는 것이다.”

 

역자 : 민정희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전공했다. 이후 20여 년간 불교단체에서 국제연대 사업을 주로 맡았다. 그 덕분에 인권과 정의, 평화 증진을 위해 헌신해온 아시아의 여러 참여불교 운동가들과 교유하였고 세상을 변화시킬 대안 담론과 연대의 정신에 대해서 배웠다. 2012년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에 관한 종교간 대화’에 참석하면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기후위기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환경·경제·사회정책위원회(CEESP) 위원,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의 이사, 국제기후종교시민(ICE) 네트워크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목차 위로
서문 : 우리가 서 있는 벼랑 끝에서 우리는 돌아설 수 있을까

1. 기후변화가 문제인가?
: 지구가 여섯 번째 대멸종 단계에 진입했다는 신호

2. 생태위기는 또한 불교의 위기인가?
: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 깨달음을 꽃피우는 최고의 방법

3.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우리는 자연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바로 자연이다.

4. 모든 것을 성취한 우리는 왜 무엇을 할지 모르는가?
: 개인의 고통에서 집단의 고통으로, 개인적 깨달음에서 집단적 깨달음으로

5. 너무 늦은 건 아닐까?
: 너무 늦든 늦지 않든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6. 무엇을 해야 할까?
: 개인적, 집단적, 제도적 행동 그리고 생태보살로 거듭나기

후기 : 우리는 제멋대로 낭비하는 탕아로 살 것인가?
무한한 보물을 물려받은 장자로 살 것인가?

부록
1. 이제 행동할 때 : 기후변화에 관한 불교 선언
2.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핵심 불교원리 16가지
3. 기후변화의 현실 받아들이기 : 간단하고 실천적인 조치들
4. 생태보살의 서원
5. 로키산 에코다르마 수행센터
상세소개 위로
‘개인의 고苦’를 없애는 데 주력해온 불교는
이제 ‘집단의 고통’에 대해 답해야 한다

역사상 현대 인류만큼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종種은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은 대기와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키면서 그 성분과 기후를 변화시켰고 생태계를 파괴했다. 제때에 근본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간 종種은 멸종이 불가피할 정도로 오늘날 우리는 실존적 위기에 서 있다.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생태 위기에 수많은 연구와 실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지금, 불교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전통불교의 가르침은 우리를 개별적으로 각성하도록 돕고, 다른 존재와 상호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제 불교는 개개인을 어떻게 각성시켜서, 이 새로운 곤경에 대응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2,500여 년 전 붓다 재세 당시에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위기와 같은 구조적인 고통이 없었고, 전통불교의 가르침 또한 개인적 깨달음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접근과 해석이 이제 새로워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 수행자이자 사회적 참여불교 활동가로 서구에 잘 알려진 데이비드 로이는 ‘연기법緣起法’과 ‘공성空性’에 대한 이해, 즉 깨달음을 “우리가 다른 이들이나 지구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달리 표현하면서 사회구조적인 고통에 적극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고통은 사회적·집단적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볼 때, 개인의 변화라는 길과 사회의 변화라는 길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세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각성이 꽃을 피우는 방법이고, 명상과 같은 사색적 수행은 우리 행위의 바탕이 되어 그것을 영적인 길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바로 에코다르마ecodharma이다. 에코다르마는 불교 전통이 최근 전개하는 새로운 용어로, 생태적인 관심[eco]에 불교의 가르침과 그에 연관된 영적 전통[dharma]을 결합한 것이다.
에코다르마는 우리가 생태위기를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의 측면들을 탐색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수행하는 방식에서 에코다르마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 이 책은 자연에서 수행하고, 불교적 가르침의 생태적인 시사점을 탐구하며, 오늘날 요구되는 생태적 행동주의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후변화는 빙산의 일각,
수면 아래 거대한 조각을 보라

최근의 코로나19와 기후변화는 물론 해양오염, 온난화, 토양 오염, 핵 사고, 방사성 폐기물 문제 등 환경재앙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면보다 바닷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큰 빙산에 빗대어 봤을 때, 환경과 생태위기는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일 뿐이다. 인종차별, 민족주의, 신식민주의, 젠더, 계급 등의 사회정의가 빙산의 아랫부분으로, 전 세계에 분열과 분쟁, 혐오를 불러오는 심각한 문제이다. 둘은 독립된 문제가 아니다. 환경적인 문제와 사회정의 문제는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불교적인 개념으로는 상호관계성 또는 상호의존성이다, 생태적 문제들이 대부분 인간사회의 불평등하고 계급적인 구조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흑인들과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미국에서 쓰레기 매립장과 기타 오염지역 근처에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전통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한다. 나의 고통은 나 자신의 업과 갈애와 무지에서 기인하므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개인적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문명의 위기는 개인이 회피할 수 없다.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이러한 고통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영적(靈的)이다. 이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핵심이고, 여기에는 세계 속에 우리의 처지와 역할이 포함된다.
개인과 집단의 영적 깨어남이 없다면, 기술적 해법이나 경제적 해법 또는 정치적 해법이나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으로는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해법이 통합될 필요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요청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 불교가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불교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을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불교 자체가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무상과 무아는 불교 자체에도 적용된다
현대 불교가 깨어나야 할 때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강조해왔다. 이 무상과 무아는 불교 자체에도 적용된다. 불교는 단지 붓다가 말한 것뿐 아니라 붓다에게서 비롯된 것들과 붓다에게서 비롯되어 곧 다른 문화와 교류하면서 발생지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간 것들이기도 하다. 그 예로, 선불교는 대승불교와 토착적인 도교 사이의 상호교류 덕분에 중국에서 발전했다. 그러나오늘날 아시아의 불교 전통들은 세계화되고, 세속적이며, 과도할 정도로 기술화된, 어쩌면 자기 파괴적인 포스트모던한 세계에 스며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부 전통불교의 가르침은 개인의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영적인 목적이 개인의 구원에 있다면, 즉 고통과 집착과 무지의 이 세상으로 다시 윤회하지 않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왜 우리는 여기서 발생하는 일들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할까? 하지만 그러한 내세 지향과는 달리, 현대의 대다수 불교인들은 초월적인 존재를 의심하며,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인 윤리적 인과법칙으로서의 업業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들은 불교의 길을 보다 심리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에게 불교는 정신적 고통에 관한 새로운 견해와 현세의 행복 증진을 위해 새로운 수행법을 제공하는 하나의 치료법인 셈이다. 이생을 벗어나는 데 목표를 둔 내세적 불교와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세속적인 불교는 북극과 남극처럼 정반대의 것으로 보이지만, 두 불교 모두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행보에는 무관심하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현세를 초월하려고 하거나, 현세에 더 잘 맞추려는 대신, 나 자신을 포함해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깨닫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는 자아라는 인식,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세계 사이의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명상은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생각과 감정, 행동의 습관적인 패턴을 ‘내려놓게 함’으로써 자아를 해체시킨다. 동시에, 자아라는 우리의 관념은 가장 중요한 습관적 패턴을 변화시킴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재구성된다. 우리의 동기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과 세계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인식하냐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이 경이로운 지구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지구와 관계 맺는 방식 또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을 돕는 사회적 참여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생태위기와 사회정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의문투성이의 경제적이고 정치적 구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볼 때, 개인의 변화라는 길과 사회의 변화라는 길은 실제로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세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각성이 꽃을 피우는 방법이고, 명상과 같은 사색적 수행이 우리 행위의 바탕이 되어 그것을 영적인 길로 변화시킨다.

내면(명상)과 외형(행동주의)의 수행을 실천하는
21세기 생태보살eco-bodhisattva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참여에서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올바른 판단과 선택, 행동에 대한 지침이다. 이러한 지침들은 보통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지만, 집단적인 형태의 참여적 실천과 사회적 변화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5계와 ‘사무량심’,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포함한 보살도를 강조한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의 실천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침들이 우리를 생태보살의 길에 들어서도록 안내한다.
사회참여는 개인의 정신적 평화에 초점을 맞추어 온 전통적인 가르침 때문에 많은 불교인들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한편 사회적 행동에 전념해온 사람들은 피로와 분노와 우울 그리고 에너지 소진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면(명상)과 외형(행동주의)의 두 가지 수행이 조화롭게,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두 가지 수행의 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실천,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행동주의는 또한 명상하는 이들이 자신의 심리상태에 사로잡히는 덫을 피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세상의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의 영적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행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생태보살eco-bodhisattva에 의해 길러진 통찰력과 고요함은 불교행동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것을 지탱해주는데, 그것은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 (절망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실천하는 태도) 보통 무책임한 태도 혹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보살도이다. 결과가 행위를 결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당면한 생태적 위험에서 벗어날 티핑 포인트를 지나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명은 영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길 희망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노력은 지구에 주는 우리의 진심 어린 선물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불교인들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불교는 지금의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종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인류가 직면해온 거대한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불교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핵심 불교원리 16가지

1. 생명 존중: 이 시점부터 기후 붕괴는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다. 우리 인간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어떤 생명이 생존하고 번성하는가와 어떤 형태로 어떤 장소에 있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2. 다른 이들을 돕는 데서 오는 행복: 우리 개인의 가장 커다란 행복은 우리가 서로 나누고 도와줄 때 온다. 예컨대, 많은 사람이 자연 재해 후 이웃들을 본능적으로 돕는다. 이는 이타주의와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이 우리의 유전자에 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타주의를 키우고 기후 붕괴에 의해 적어도 맨 먼저 가장 심한 타격을 입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타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만연한 탐욕과 자기중심성에 반대된다.

3. 집착하면 고통을 겪는다: 행복의 본질은 집착을 내려놓고 남을 돕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원칙은 이제 모든 공공정책에서 강조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4. 윤리적 명령: 모든 존재는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고, 이타주의에 헌신하며 다른 이들에 대해 자비심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5.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연을 대상화하지 말고 동류의식을 통해서 개별적 자아(에고ego)라고 하는 믿음을 극복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는 다른 이들과 분리된 개별적 자아라는 망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인류가 나머지 다른 생물권과 분리되어 있다는 망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와 지구의 상호의존성은 우리가 지구의 행복을 대가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의 생태계가 아프면 우리의 몸과 사회도 아프다.

6. 버리기, 단순함: 기후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기꺼이 버리고 더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7. 고성제와 집성제 사이의 관계와 어려운 상황을 다룰 방법을 배우는 능력: 우리가 자초한 기후붕괴로 상징되는 우리의 고통, 그리고 이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있어야 한다. 동시에 이 기후붕괴의 상태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두려움과 절망을 꿰뚫는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8. 깨달음의 수단으로서 고통을 받아들이기: 기후붕괴가 야기한 고통은 우리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실수로부터 배우고 크게 각성할 전례 없는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특별한 기회다. 우리는 행복해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꼼짝 못 하고 있는 것보다 ‘보살피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은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집착하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9. 내면과 외면,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혹은 제도적인 것)의 상호연관성: 기후 붕괴는 문제의 근원을 이해할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과 그러한 패턴들이 어떻게 집단적이고 집단적/제도적인 관행과 정책 속에 내재되어 있는가와 관련된다. 이 인식은 결국 새로운 제도적 관행과 정책을 만들어낼 새로운 사고방식과 대응방식을 마련할 수 있다.

10. 다양성과 정의 문제의 관계: 다르마의 원리와 이야기는 다양성과 사회적 포용성과 정의 문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개별성 등에 대한 믿음은 또한 사회적 불공평과 배척을 낳는다. 유색인종과 기타 소외된 집단이 포함되어야 한다.

11. 사회변화의 대리인으로서 불교: 불교의 원리는 우리를 삶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붓다는 자신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불교가 오늘날에도 의미 있으려면 오늘날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12. 아디따나Adhitthana 또는 결심: 지금 우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결정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참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다르마를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음을 자각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13. 이처럼 고귀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기회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드물고 고귀한 일이며 관리자로서 행동해야 할 드문 기회를 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인간은 파괴의 원천일 뿐 아니라 위대한 선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4. 사랑이 가장 위대한 동기부여자다: 가장 깊고 가장 강력한 행동은 이 지구와 서로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더 많은 사람이 지구와 연결될수록, 그렇게 해서 지구와 더 많은 사랑을 느낄수록, 그들의 마음이 피해를 막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은 더 커진다. 따라서 아이들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삶에 대해서 무엇을 사랑하고 기후붕괴가 심해질 때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15. 교단, 그리고 기타 사회적 지원 형태가 핵심이다: 기후 붕괴의 현실은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충격이므로, 싸움과 탈출과 꼼짝도 못 하는 대응방식을 최소화하거나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이들의 지지를 얻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혼자라고 느끼지 않고 절망을 극복할 수 있으며 함께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여정을 함께 헤쳐가야 하고 우리의 어려운 대응과 긍정적인 경험을 단체와 지역사회 내에서 공유해야 한다.

16. 보살 : 보살은 내면의 깊이를 더하고 타인들을 돕는 데 헌신하는 이의 통합된 이미지이며, 우리 시대를 위하여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직감하며,
우리를 정신차리게 하는 세계 지성인의 놀라운 예언들!

데이비드 로이는 저서에서 적절한 인용구를 즐겨 쓰며, 자신의 논리적 주장에 풍부함을 더한다.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통찰은 자세한 설명보다 때로는 더 깊은 사유로 이끈다. 이 책에서도 각 장 도입부에 세계적인 작가, 시인, 학자, 운동가의 말을 인용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생태 위기에 둔감한 이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문장을 소개한다.

● 마지막 나무가 잘렸을 때, 마지막 물고기가 잡혔을 때, 마지막 강에 독이 퍼졌을 때,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북미 원주민의 말)

● 우리는 지금까지 기울어가는 타이타닉 호의 선상 의자들을 재배치하는 것 말고는 거의 한 일이 없다. (데이비드 로이, 불교학자)

● 우리는 우리가 훌륭한 종種이고, 중요한 곳으로 가고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고, 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몇 가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 (팔리 모왓, 환경학자)

● 우리 모두는 종교 단체들이 근본적인 대상으로 삼았던 똑같은 스승의 제자가 되었다. 그 스승은 바로 현실이다. (게리 스나이더, 시인)

● 세상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지 않다. 종말은 지구의 주요 부분에 이미 도달해 있다. 우리가 믿을 수 없는 특권과 사회적 단절의 거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종말의 예측이라는 사치를누리는 것일 뿐이다. (테렌스 맥케나, 식물학자)

● 잘못된 종의 지능이 생물권의 치명적인 결합으로 미리 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진화의 법칙은 지성이 대개 스스로를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 생물학자)

● 당신은 세상의 고통에 대해서 망설일 수 있다. …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망설임은 당신이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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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에는 강조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나는 이미 몇 차례 그것에 대해서 암시했다. 그것은 환경적인 문제와 특히 인종차별, 민족문제, 신식민주의, 젠더, 계급이라고 하는 사회정의 문제의 ‘교차점’에 관한 것이다. 교차성에 관한 논점 - 보다 불교적인 개념으로는 상호관계성 또는 상호의존성이 될 것이다 - 은 내가 조명했던 생태적 문제들이 대부분 인간사회의 불평등하고 계급적인 구조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흑인들과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미국에서 쓰레기 매립장과 기타 오염지역 근처에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억 명의 생활 방식이 배출하는 탄소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는 반면 이들은 자신들의 부를 이용하여 기후위기의 악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56쪽)

전통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 나의 고통은 나 자신의 업과 갈애와 무지에서 기인하므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개인적이다. 우리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볼 때, 문명의 위기라는 생각은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고통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불교로서는 생소하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영적이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바로 그 핵심이고, 여기에는 세계 속에 있는 우리의 처지와 역할이 포함된다. 생태위기는 지구가 우리에게 “깨어나지 않으면 결과는 고통”이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닐까. (79쪽)

개인들이 쉬면서 수행할 수 있는 인기 높은 명상센터들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몰리지만,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조직들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사회적 참여불교가 실패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불교의 성공에 따르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볼 수 있다. 교도소 활동, 호스피스 케어, 노숙자 식당 운영 등 몇 가지 형태의 봉사는 현재 불교의 길 일부분으로, 때로는 중요한 부분으로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봉사는 평범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돕는 것임에 주목하자. 나는 지난 세대의 불교인들이 강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렇게 물에 빠진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에 미숙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89쪽)

브라질의 대주교 돔 헬더 카마라Dom Helder Camara09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으로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없는지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불교적인 버전이 있을까?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불교인들이 노숙자와 교도소 재소자들을 도우면 그들은 보살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 노숙자가 있는지, 왜 이렇게 많은 유색인종이 교도소에 있는지를 물으면, 다른 불교인들은 그들을 좌익 또는 급진주의자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사회적 행동은 불교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91쪽)

지난 몇 년간 매우 성공적이었던 마음챙김mindfulness운동이다. 그러나 또한 불교계 내에서 이 운동은 점점 더 논란이 되어왔다. 마음챙김 수행은 매우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챙김 수행 또한 사회적 고통이라 불리는 집단 고통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저해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은 끝없이 증가하는 생산과 소비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개인적인 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사회변화의 중요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93쪽)

붓다는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무관심이나 세계를 향한 무관심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고 몸소 드러내 보이지도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반야심경은 “색은 공과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한 후, 바로 “공은 바로 색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와 생태계를 포함하는 색은 고통을 겪는다. 반야심경이 공과 색의 비이중성을 강조하는 것은 공성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해 있으므로 아무것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넘어선다. (103쪽)

생태위기를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로얄 루가 비판하는 우주적 이원론을 벗어난 언어로 영적인 길이 포함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멈추거나 색色에는 무심한 공空에 머물러서 세계가 만들어내는 문제들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면, 혹은 단지 이 세계와 이 세계의 체계에 조화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를 불러내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문제점들에 완전히 참여할 수가 없다. (134쪽)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의 공안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불보살들은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아갑니까? 매순간 깨달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떻게 특별할까? 아마 제자는 불보살들이 어떤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스승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적절하게 대처하라.” 이게 전부다.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원에서는 무엇이 적절한지 알기 쉽다. 종이 울리면 법복을 입고 명상하러 수행실로 간다. 하지만 사찰의 땅을 떠나 다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문제들이 있는 더 넓은 세상 으로 들어가면 어떤가? 우리에게 본질적인 기반이 없음groundlessness이 고갈되지 않는 가능성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135쪽)

나는 집단적인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개념 ‘진보’에 대한 우리의 집착에 달려 있다. 이 단어는 “나아가는 것 또는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pro-gressus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진보가 확실히 좋은 것일까? 문제는 이 용어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비용이 어떻게 되든 꾸준한 경제 성장과 끝없는 기술개발의 결과를 입증하기 위해 이용당해왔다는 데 있다. (204쪽)

진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우리는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무언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야. (204쪽)

불교는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주어질 선물은 우리는 우리 시대에 두드러졌던 문제를 다룰 수 없으며 오늘날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통Dukkha은 수행하는 사람에게 항상 변화를 위한 호된 시련의 장이었다. 불교는 고통을 회피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에 관한 것으로, 이런 점들은 우리의 미래에는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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