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2007년 가을 처음 들었다. 대한카누연맹 회장이었다. 불교계에선 생소했다. 체육계는 불교와 그리 가깝지 않았고, 체육인 불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계종 체육인불자연합회 초대회장에 추대됐다. 2004년 조계종 전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한 인연이 싹튼 셈이다. 몰랐었다. 아니 관심이 적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체육인 중에 불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3,000배 철야정진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고, 시간이 흐르자 국민에게 익숙한 선수들이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불교와 체육을 삶의 중심에 뒀다. 2012년 7월 조계종 중앙신도회 25대 회장으로 추대된 뒤 26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고, 생업과 불교계 일을 두루 살피던 와중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첫 통합 단체인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됐다. 13년 전 처음 듣던 이름은 불교계와 체육계에 익숙해졌다.
9월이면 불사(佛事)를 끝내고, 한 발짝 물러서는 이기흥(67, 보승)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만났다. 24시간을 분초로 나눠 하루를 보내는 그의 시간을 잠시 붙들고, 조금 이른 배웅을 했다.
사진. 유동영
| 축사만? 일하는 회장!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웃음).”
인터뷰 시작부터 정리라니?! 안 될 말이었다. 중앙신도회장 8년, 체육인불자연합회부터 따지면 13년 동안 투신해온 소회가 너무(?) 담백했다. 평소 그의 언행이 그랬지만…. 그는 목적지로 빠르고 당당하게 걷고, 불필요한 말과 행동은 피했으며, 미소를 섞어 상대에게 청하는 악수는 묵직했다. 즐겁고 행복했다는 말과 악수할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함 사이의 행간을 살펴야 했다. 중앙신도회장 소임을 맡고 1년이 막 지날 때 그가 선포한 한 마디가 떠올랐다.
“축사만 하는 회장이 아닌 일하는 회장이 되고 싶다.”
불교계는 크고 작은 여러 법회나 축제가 1년 내내 이어진다. 전국 단위 신도조직의 얼굴이기에 빠지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일하는 회장’ 발언은 이를 소홀히 하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느슨했던 신도조직의 연결고리를 팽팽하게 조이겠다는 선언이었다. 자리에만 앉아 지시하는 회장이 아닌 스님과 신도와 소통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발끝은 전국으로 향했다.
“24개 교구본사를 11번 돌았습니다. 228개 시군은 물론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포교당까지 전국의 300개 사찰을 100일 동안 직접 찾아갔습니다. 포항 보경사에서 시작해서 설악산 봉정암에서 철야기도 하며 회향했죠. 다닌 거리가 4만 7,000km 정도 됐어요. 신도회장 소임을 맡으면서 한 10만km는 오간 것 같습니다.”
그의 100일 중 하루를 동행한 적이 있다. 길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허기를 달래고 나면 곧바로 이동해서 사람을 만나고, 또 이동했다. 그는 방문한 사찰마다 불자로서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보시바라밀 캠페인 ‘행복바라미’와 37개 실천항목의 지계 신행운동 ‘불자답게 삽시다’를 독려했다. 일선 사찰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은 중앙신도회장이 절까지 찾아오자 적잖이 놀랐고, 반겼다. 당시 단양 청련암 신도회장은 “지방 여론을 수렴하는 모습에 작은 희망을 본다”고 했다.
그의 원력과 발품은 희망을 현실로 바꿨다. 2016년 행복바라미 워크숍에 300개 사찰 신도회장 대부분이 참석했고, 재가자 중심의 신행운동으로 한국불교 변화의 초석을 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포교원장스님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 “신행 풀뿌리 운동의 모범사례”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그가 중앙신도회 집행부와 8년 동안 했던 일을 나열하자면 숨이 가쁘다. 24개 교구본사 신도회 조직, 혁신도시 공공기관 불자회 창립 및 활동 지원, 출가열반절 계율산림법회, 2만 수보리 합창(서울 광화문 『금강경』 독송법회)…. 또 있다. 행복바라미다.
| 행동하는 신심, 행복바라미
맞다. 행복바라미를 빼놓고 그를 설명하기란 곤란하다. 행복바라미는 중앙신도회장에 취임한 지 1년 만인 2013년부터 시작한 캠페인으로, 육바라밀 중 보시바라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자는 게 취지다. ‘바라밀로 행복에 이르자’는 목표로 사회공동선을 구현하는 불교를 전 국민에게 알렸다. 그는 불교주간지 「법보신문」과 조계종이 나선 ‘불자답게 삽시다’를 결합해 불자 스스로가 일상에서 37개 지침을 실천하는 지계 캠페인으로 확장했다. 2019년부터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중심 축제에서 지역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행복바라미의 지역사회 뿌리내리기’다. 대국민 나눔캠페인이자 보시바라밀 실천 마중물이 전국 시군구 단위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불자들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연 것이다.
“불교의 좋은 가치와 문화를 국민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그달에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을 해보자는 게 행복바라미입니다. 전국 각 지역의 사찰 불자들이 보시하고 기부금도 내면서 모은 금액을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회향하자는 거죠. 자비가 물결치는 대한민국의 봄을 만들자는 원력의 장이 바로 행복바라미입니다.”
130여 년이 넘는 구세군 자선냄비와 비교해 이제 8년 남짓한 역사를 쓴 행복바라미의 성과는 눈여겨 볼만하다. 첫해 2013년부터 지난해 2019년까지 2,687명에게 총 12억 8,000여만 원을 회향했다.
“팔만대장경을 입으로만 달달 외우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죠. 부처님 가르침을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자비, 중도, 평등, 공존 아닐까요? 긴말 필요 없습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 불교 너머…
그의 시선은 불교라는 경계 너머에 있었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 전 세계인의 축제에 임원 혹은 선수단장으로 대한체육회장으로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다. 여러 올림픽 스타들이 불자였다는 사실도 재조명받았다. 이상화·모태범(빙상), 이용대(배드민턴), 양학선(체조), 진종오(사격) 등등. 나라를 빛낸 체육인에게 불자는 종교적 동질감을 느꼈고, 자긍심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체육을 세계에 알린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체육으로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던 그는 종교의 역할을 다시 고민했다. 불교, 원불교, 가톨릭, 개신교, 민족종교, 천도교, 유교 등 7대 종교 평신도들의 모임인 한국사회평화협의회를 설립했다. 초대이사장으로서 ‘한반도 평화 다짐 걷기축제’, ‘답게 삽시다’ 등 여러 사회 활동을 전개했다. 성직자 중심이 아닌 재가 중심 사회운동에서 종교의 역할을 찾았던 것.
건강은 괜찮을까. 지치진 않았을까. 기우였다. 그는 “이 순간이 모여서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로 이어져 내 삶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단다. 반 백발이던 머리카락에 새하얀 세월이 내려앉았다. 그는 50대와 60대를 온전히 불교에 바쳤다. 이제 회향을 준비 중이다.
“항상 생각합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살았어요. 부처님 가르침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한 몸 바친다는 원력으로 임했습니다. 암자나 토굴을 수리해서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삶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나와 이별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가 오면 미련 없이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자신을 준비하고 싶어요.”
자신과 이별여행을 준비한다는 그의 눈을 피했다. 시선을 그의 손목과 양복 재킷으로 물렸다. 단주와 배지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매만진다는 증거다. 매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그는 어떤 마음을 먹을까.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조계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단단했다. 그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