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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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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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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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옹정제와 신하들 활불에게 정토의 법문을 청하다

 

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저작·역자 왕윈 지음
차혜정 옮김
정가 19,800원
출간일 2020-08-14 분야 종교-불교
책정보

440쪽 | 신국판(153*224)

| ISBN 978-89-7479-830-7 (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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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청나라 옹정제가 가장 아끼던 왕비 연귀비의 죽음 후 벌어진 천도 법회

활불이 옹정제와 신하들에게 들려준 ‘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저자소개 위로

왕윈(王薀)

대만 출신이다. 동서양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아라한』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으며 10만 명을 넘는 페이스북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알려진 것이라고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는 것뿐이다.

그는 언론과 방송보다는 주로 책과 강연을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 중국, 호주, 유럽 등 2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개최한 다양한 강연에 강연자로 참여했다.

청나라 옹정제가 활불을 만나 생사자재의 법문을 들은 것을 정리한 『중음에서 벗어나는 법』은 2019년 대만 최대 서점 체인인 청핀서점(誠品書店) 인문 분야 1위 및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차혜정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중통번역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전공하였다. 가톨릭대학교 및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에서 중국어 통번역 강의와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며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화폐전쟁』, 『관점』, 『대송 제국 쇠망사』 등이 있다.

목차 위로

저자 소개

대만 출판사 편집자 서문–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대사

○ 나를 이끈 생사자재의 기록들

○ 원명거사(圓明居士) 옹정황제

○ 옹정황제와 연갱요의 악연

○ 청 왕조와 금강승의 인연

○ 활불은 사바세계에 환생한 성승(聖僧)

○ 옹정황제가 사랑한 여인, 연귀비의 죽음

○ 생로병사를 누가 대신하랴

○ 역사 속에서 무상함의 진실을 이해하다

○ 연귀비, 중음에 들어가다

○ 보리심, 중음에서 해탈을 얻는 비결

○ 망자의 영혼을 존중하면 초탈의 희망이 보인다

○ 왕생할 때 겪는 두 가지 분해 과정

○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 염불과 왕생

○ 빛을 식별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면하다

○ 지옥의 종류

○ 모든 법은 평등하다

○ 본래의 청정함으로 회귀하는 것이 해탈의 근본

○ 듣기만 해도 해탈을 얻는 주문

○ 중음구도 49일에 해탈할 수 있다

○ 삼악도에 떨어지는 근원

○ 생전의 행동이 환생을 결정한다

○ 중생의 죄를 씻어주는 존성다라니

○ 중음에서 지켜야 할 것

○ 삼악도의 고통

○ 마음이 소멸하면 죄 또한 없어진다

○ 왕생한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위험

○ 활불이 권신들에게 인과론을 개시하다

○ 왕생에서 속죄하려면 기도문을 염송해야 한다

○ 무상함은 귀한 자와 속된 자 모두 피하기 어렵다

○ 구승(九乘)의 최고 경지는 대원만이다

○ 천식대법(遷識大法)으로 탁한 세상의

어려움을 구할 수 있다

○ 포와대법을 수지할 수 있는 단계

○ 임종 때는 선지식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 중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산란한 마음

○ 자성을 스스로 제도해야 저절로 해탈할 수 있다

○ 생과 멸은 모두 마음에 있다

○ 반야공성에서 무생(無生)을 깨닫다

○ 12인연 지혜를 깨쳐서 해탈하다

○ 해탈을 위한 마음을 쓰는 방법

○ 정토로 돌아가 염불로 해탈하다

○ 일심으로 염불하면 마침내 해탈을 얻는다

후기

아미타불을 믿으면 속죄 받고 왕생한다 … 407

깨달음을 얻은 선종의 조사 … 415

생사가 무상하니 극락세계에 자유자재로 왕생하다 … 422

상세소개 위로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청나라 옹정제 당시 있던 상황을 기반으로 저자가 일부 창작해 쓴 것이다. 옹정제의 여인 연귀비가 사망 당시 실제 옹정제가 활불을 모시고 법회에 참석했으며 이때 주요 관료인 장정옥, 악이태 등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책에서 주요 화자로 등장하는 활불 역시 몽골에서 주로 활동하던 티베트 승려 후툭투를 가리킨다. 티베트 불교에서 인정하는 4대 활불 중 한 명이다. 실제 청나라 당시 옹화궁에는 160명이 넘는 몽골 출신 티베트 승려들이 있었고 이 책에 등장하는 ‘활불’역시 그 중에 한 명이다.

동북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부가 공유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

왜 중음(中陰)인가?

미얀마, 스리랑카 등 남방으로 퍼진 불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동북아시아 그리고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 불교에서 공유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가 있다. 바로 중음(中陰)이다. 대승불교에 기반한 세계관이지만 도교에도 수용되었고 이후 중국, 베트남, 티베트, 한국, 일본 등에서는 확실하게 민간에 자리를 잡았다.

중음은 죽은 순간부터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중간 시기를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유설(四有說)에 기반하는데 태어남의 순간은 생유(生有), 태어남의 시간부터 죽음의 순간을 본유(本有), 죽음의 순간을 사유(死有)라고 하고 사유(死有)부터 생유(生有)까지의 존재 기간을 중유(中有), 즉 중음이라고 했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문헌에 따라 약간 다르긴 하지만 7·7일, 즉 49일을 만중음(滿中陰)이라 하여 최대 기간으로 본다. 이 중유 기간인 49일 동안 7일마다 천도의식을 행하며 특별히 49일째 되는 날에는 천도재를 행하는데 이를 흔히 사십구(49)재라고 한다.

이 49일 동안 유가족이 영가를 위해 재를 올리며 공덕을 지어주면, 나쁜 업을 지은 영가는 불보살님의 가피 덕분에 고통의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고, 평범한 업을 지은 영가들은 훌륭한 공덕을 이루어 보다 더 좋은 인연처를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이 49일 동안은 영가의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이 매우 맑아져 있기 때문에 살아생전보다 부처님의 법문을 더욱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천도 법문을 정성껏 들려주면 영가가 매우 지혜로워져서 지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쉽게 해탈을 이루어 행복의 나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가장 발달된 곳이 바로 티베트, 몽골 등이고 그리고 이런 내용이 가장 잘 정리된 책으로는 『티베트 사자의 서』를 꼽을 수 있다.

청나라 옹정제가 가장 아끼던 왕비 연귀비의 죽음 후 벌어진 천도 법회

활불이 옹정제와 신하들에게 들려준 ‘중음에서 벗어나는 법’

이 책의 시작은 청나라 옹정제가 가장 사랑하던 여인 연귀비가 병으로 죽게 되면서 시작된다. 당시 옹화궁에 있던 몽골 출신 티베트 승려가 천도재를 열고 영가를 위한 법문을 시작한다.

중국 청나라 최전성기는 강희제에서 건륭제까지 이르는 시기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강건성세(康乾盛世) 혹은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중심에 바로 옹정제가 있다. 강희제의 재위 기간이 61년, 건륭제의 재위 기간이 60년인 것에 비해 옹정제의 재위 기간 13년은 무척 짧았지만 그 업적은 아버지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에 못지않았다.

조세와 부역제도 개편 그리고 지방관리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황제에게 직접 상주문을 올릴 수 있도록 한 밀주(密奏)제도 등은 역사가들이 꼽는 치적이다. 특히 옹정제가 검토한 상주문은 비밀 상주문이 2만여 통, 일반 상주문이 19만여 통에 달했다. 이에 따라 옹정제의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이었으며 심지어 역사학자들은 그의 사인을 과로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벌레 옹정제에게도 어쩔 수 없는 깊은 그늘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연귀비와 연귀비의 가문이었다. 연귀비는 1715년 훗날 옹정제가 되는 옹친왕 윤진의 측실이 되었다. 이후 1722년 옹정제가 보위에 오르자 그녀 또한 후궁으로 책봉된다. 연귀비는 옹정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지금도 옹정제 시절을 그린 중국 드라마에서는 옹정제와 연귀비의 사랑이 늘상 반복된다. 하지만 옹정제가 오른팔로 삼았던 연귀비의 이복오빠는 부정부패로 전국 각지에서 투서와 호소, 상소문이 옹정제의 책상에 쌓이게 했다. 연귀비를 가장 사랑했지만 연귀비의 집안은 옹정제에게는 두통거리였다. 그런데 연귀비는 이복오빠 연귀비가 구설수에 오르고 왕과 대립하던 한창 때, 그러니깐 옹정제가 황위에 오른 지 3년 무렵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옹정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인이 아픔을 안고 이승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옹정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연귀비가 좋은 곳에 태어나 평안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었다.

옹화궁에 있던 활불은 연귀비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고 그녀가 중음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또한 천도법회 기간을 활용해 옹정제와 참석한 관리들에게 중음에 대해 설명하고, 중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자를 위해 산 자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염불과 선(禪)에 대한 가르침을 함께 전한다.

죽은 후 49일 동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통 중음은 죽음 이후 바로 시작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왕생한 후 사흘 반에서 나흘이 지나면 한 차례 되살아나는데, 그때부터 중음 단계의 첫날에 진입한다.

티베트 불교,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죽음의 순간 망자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우선 죽음 직후 육체적인 변화가 있다. 망자가 갈 곳이 좋은 곳이라면 하반신부터 차가워지며, 지옥이나 아귀 혹은 축생도로 가게 된다면 상반신부터 차가워진다. 해탈한 성인과 정도에 왕생하는 사람은 정수리가 가장 차가워진다. 이밖에 각각 갈 곳이 정해진 육신은 여러 다른 신체적 변화를 보인다.

그렇다면 중음에 들어서는 어떨까? 보통은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게 된다. 생전에 오계십선(五戒十善)을 지켜 많은 음덕을 쌓은 사람의 앞에는 매우 강렬한 흰 빛이 나타난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부모에 효도하고 본분을 지킨 사람, 오계를 범하는 않은 사람에게는 강렬하고 노란 빛이 나타난다. 다음 생에 인간 세상으로 태어날 수 있게 인도하는 빛이다. 이밖에 아수라도는 흐릿한 녹색 빛이고 옅은 파란색, 옅은 붉은색과 검은 연기 색의 빛은 삼악도에 속하는 빛이다. 흐리고 옅은 빛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망자가 중음에서 헤매지 않고 좋은 곳에 가거나 혹은 아예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에서는 망자가 중음에 들기 직전 마음을 비우고 보시하는 마음을 키우거나 중음에 들었다면 선지식을 초청해 남은 사람들이 같이 염불하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궁극의 방법은 아니다. 살아생전 좋은 마음을 쓰고 보시를 많이 했다면 망자에게 이런 과정은 모두 불필요하다. 어김없이 선처에 태어나거나 수행을 많이 했다면 해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저자가 당시 상황을 창작해서 쓴 것이다. 중음에 맞닥뜨려 망자를 위해 산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뿐 아니라 중음에서 아예 해탈하기 위해서 살아생전 그리고 죽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선지식의 인도, 염불 등은 물론 선(禪)에 대한 긍정적 이해도 돋보인다.

혹여 『티베트 사자의 서』나 천상과 지옥에 대해 어렵고 믿기 힘들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소설’처럼 읽기 쉽게 구성해 놓은 책이니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책속으로 위로

"망자가 갈 곳이 어딘지는 육체의 변화로 간단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망자가 갈 곳이 선도라면 하반신부터 차가워지며,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는 반대로 상반신부터 차가워집니다. 불가에는 이런 경험에 기반한 구결이 전해집니다. ‘선행한 사람은 하반신부터 차가워지고, 악행을 한 사람은 상반신부터 차가워진다. 심장의 온기는 가장 오랫동안 식지 않으며, 신체의 다른 부위의 온도가 점차 사라진다. 생사에서 해탈한 성인과 정도에 왕생하는 사람의 정수리가 가장 늦게 차가워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얼굴과 눈의 온도가 가장 늦게 식으며 인도(人道)로 진입하는 사람은 흉부나 배꼽 부위가 가장 늦게 차

가워진다. 아귀도로 가는 사람은 복부가 가장 늦게 식는다. 축생도로 가는 사람은 무릎이 가장 늦게 차가워지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은 발바닥이 가장 늦게 차가워진다.’

망자의 심장과 그 주변이 가장 늦게 차가워지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배 부분이 가장 늦게 차가워지면 대부분 아귀도에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무릎이 가장 늦게 차가워지면 별로 좋지 않은데, 축생도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가장 늦게 차가워지면 지옥도로 떨어집니다. 망자가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음덕을 많이 쌓고, 수양에 정진하여 성취가 있으면 몸이 늦게 식으며, 정수리 부분에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망자의 반응을 살펴볼 때, 왕생을 앞두고 눈과 얼굴에 극도의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합니다. 상대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임에도 이런 표정을 보인다면 서둘러 사람을 청해 수법을 함으로써 참회를 대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지옥도로 향하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 95~96쪽

--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부처님과 일치된 마음으로 목소리까지 맞춰 염불하면 반드시 중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망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중음에서 망자도 한마음으로 불호를 염불하면서 특별한 광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누군가 인도해주면 정토로 직접 들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중음에서 나타나는 빛에 대해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빛이 나타나도 옳은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빛은 사실 우리의 업력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업력이 어느 한쪽에 편중될 때 그쪽의 빛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생전에 오계십선(五戒十善)을 지켜 많은 음덕을 쌓은 사람은 천계로 올라가기 쉬우며, 이런 사람의 앞에는 매우 강렬한 흰 빛이 나타납니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부모에 효도하고 본분을 지킨 사람, 오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중음 단계에서 강렬하고 밝은 노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 생에 인간 세상으로 태어날 수 있게 인도하는 빛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아수라도는 흐릿한 녹색 빛입니다. 옅은 파란색, 옅은 붉은색과 검은 연기 색의 빛이 나타나면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 빛은 모두 3악도에 속하는 빛인데, 쉽게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흐릿하고 옅은 색을 따라가면 악도에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 없으므로 절대로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수행하면 색채가 뚜렷하고 화려하면서도 눈을 자극하지 않는 빛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푸른색은 밝고 선명하며, 흰색은 유난히 새하얗고 깨끗합니다. 노란색은 선명하고 화려하며, 붉은색은 불꽃처럼 찬란하면서도 눈에 자극을 주지 않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줍니다. 이런 명도의 색을 선택해야 정확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생전의 업력에 이끌려 색채에 무지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길을 선택합니다. 중생에게 이런 개념이 부족한 것은 불안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이며, 업력에 이끌려 느낌에 따라 빛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 129~130쪽

--

가족들이 발원하여 망자를 위해 재계한다면, 이는 망자에 더없이 이롭습니다. 이 기간에 살인, 도둑질, 음란 행위, 허튼짓 등 악행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행동은 망자에게 매우 해롭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생을 할 때 복보(福報)가 있으면 경험이 풍부한 스승 행자가 망자의 영혼을 위해 염불과 천도를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경험자의 인도가 없으면 망자는 황망한 상태에서 전생의 업력에 이끌려 어찌할 바를 모를 것입니다. 대체로 중음의 초기에는 지난 생의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습성의 영향을 받아서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비교적 선명하고 보는 자신도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생전에 가졌던 모든 것이 돌아오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화면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중음의 후반기에는 내세에 향할 곳의 장면이 점점 뚜렷해집니다. 이때 눈앞에 있는 장면은 모두 환상이며, 마술사의 손에 든 요술지팡이와 같으니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반드시 스스로 일깨워야 합니다.

생전에 오근(五根)이 결핍되었던 사람은 중음신에 들었을 때 마치 처음처럼 멀쩡해집니다. 당신이 장님이나 귀머거리, 절름발이였더라도 중음신에서는 멀쩡한 몸으로 변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의생신(意生身)’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신통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음 단계에서는 어떠한 감각과 실질적인 이익도 누릴 수 없으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먹을 수 없습니다. 비록 중음 단계에서는 목마름이나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후각도 남아 있지만 다른 어떤 좋은 냄새도 향유할 수 없습니다. 가지, 관정, 구전을 거친 행자가 이 기간에 보리심을 받들어, 떠도는 중생의 이익을 위해 의식을 행하거나 물, 향을 공양하는 경우에만 망자가 비로소 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중음계의 중생은 서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이 세상[陽世]의 중생은 중음에서 떠도는 중생을 볼 수 없습니다. 중음의 중생은 이 세상의 중생과 다릅니다. 그들의 세계에는 밝은 태양이 비춰주지 않으며, 물처럼 맑은 달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습니다. 이때가 법성이 나타나는 시간에 속합니다. 기회를 놓치거나 엇갈려버리면 또 하나의 다른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 131~132쪽

--

“여러분, 앞에서 중음 및 천도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렸으며, 연일 이어지는 천도법회에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에 관해 틈틈이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숨이 끊어질 때 업력에 따라 갈 곳이 결정됩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이번 생의 수행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생전에 제법의 제시가 없었다면 업력에만 의지하여 생과 사에서 표류하고 업의 바다에 침몰할 것입니다. 설사 중음에 들더라도 첫 7일과 두 번째 7일에 망자의 신식을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은 오로지 마음입니다.

소승이 평소 공부한 불법의 삼등 근기에 따르면, 상등 근기에 속하는 자는 임종 시 법성 성불하여 그 자리에서 해탈하며, 중등 근기에 속하는 자는 임종 해탈의 법으로 인도하며, 하등 근기에 속하는 자는 중음 제도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사실 여기에는 심성, 업력과 인과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요 며칠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사소한 요인이라고 생각하여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며, 함부로 업을 지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중생이 생사에 매이는 것은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 같은 존재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불법(佛法)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보리심이 떠나면 마음이 업력에서 멀어집니다. 이는 인과 순환의 요인이 됩니다.”

- 167~168쪽

--

“적정존은 중음에서 총 일곱 번 나타납니다. 망자가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고 인도하는 대로 따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애착이 남아 있거나 인간 세상의 습성과 악업, 무명이 너무 강해서 교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분노하는 모습으로 있는 58본존이 한 분씩 나타나 이끌 것입니다. 사실 이 분노존들도 이전의 자비존 제보살이 변화한 것으로, 각각 다른 형상으로 바뀌어 나타난 것뿐입니다. 걱정이 있다면 적정존에 있을 때는 보살의 용모가 위엄이 있어서 일반인이 감화되기 쉽지만 분노의 본존은 출현할 때마다 눈을 부라리고 입에서 불을 뿜거나 손에는 날카로운 법기를 들고 있어서 사람들이 놀라니 감화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생전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장면에도 놀라지 않으며 본존을 보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또 자신의 믿음으로 즉시 제도하는 본존을 식별하여 그에 융합하여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 221~222쪽

--

“보살과 범부의 유일한 차이는 분별의 마음에 있습니다. 보살은 자신의 본체가 불생불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진심을 오염되지 않게 잘 지킵니다. 시방제불도 이와 다르지 않으며, 윤회와 열반이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락아정(常樂我淨)에 처하는 것도 지옥과 정토가 다를 것 없는 경지입니다.

자신이 탁한 세상에 처하여 도처에 함정이 도사리고, 언제라도 발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시방 일체불이 사람들 사이에서 성불하는 이유는 뭘까요? 탁한 세상에서 행한 선행과 바른 생각이 있기에 정토를 초월하는 무량 공덕을 쌓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개시할 때 보시하고 육도만행을 수지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바세계에서 하룻밤과 낮 동안 재계(齋戒)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공덕이 정토에서의 백년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정토라는 곳은 본래 선이 집결되며 번뇌와 증오가 없는 곳이며, 어떠한 악한 생

각이나 행위도 없어서 모든 복과 덕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곳입니다. 반면 사바세계는 팔고(八苦)와 각종 추악함, 오독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수행하기도 어렵고 인내하기도 어려운 인간 세상에서 보시를 행하고 모욕을 견디며 계속 정진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공덕은 실로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한 가지 공덕이 정토에서 수백, 수천 가지 선행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 형성된 연기를 잘 활용하면 일부러 자신을 낮출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평소에 ‘내 마음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다.’를 새기면 자연히 달라붙을 곳이 없어지고,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50명의 음험한 마귀도 발붙일 곳을 잃게 될 것입니다.”

- 351~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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