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당신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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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당신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
  • 불광미디어
  • 승인 2020.06.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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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2

나는 봄을 사랑한다. 봄꽃은 내게 자석과도 같다. 산천에 꽃 피기 시작하면 나는 쇠붙이처럼 이끌려가 그들 앞에 선다. 다소곳이. 그리고 가만히 묵상 같은 혹은 다짐 같은 기도를 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또 한 번의 봄을 만납니다. 이 봄과 기쁘게 보내겠습니다. 저 역시 꽃처럼 사랑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봄날의 이 행동은 나만의 오래된 의례이기도 하다. 뒤이어 내 일상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곳곳의 요청을 따라 숲을, 인문을 강의하는 일정이 꿀벌들의 그것처럼 부산해지곤 하는 것이 내 오랜 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나는 그 사랑스러운 봄을 놓쳐버렸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모든 모임을 멈추게 했다. 더욱이 전국을 오가며 대중을 만나는 강연자인 내 경우는 슈퍼 전파자가 될 위험이 있어 더욱 엄중했다. 일 없는 ‘집콕’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나는 생활인으로서 강연료를 주 수입원으로 삼아 삶을 이어가는 사람인데, 미리 잡혔던 강연 대다수가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되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개학의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상반기 일정의 90% 내외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봄이면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와 강연 일정을 조율해야 할 전화도 적막한 침묵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표현처럼 ‘재난’이 맞았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사태는 내게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할 만큼 절박하고 강력한 문제를 안겨주었다. 

나는 눈부신 봄을 잃고 혹한에 갇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삶은 지탱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 나는 강연자로서의 호시절, 소홀했던 명이나물 농사에 다시 몰두하는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고맙구나, 명이야. 고마워. 고마워….’ 거친 환경 속에서도 매년 스스로 움 틔우고 자라나 꽃피우고 번식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명이나물에게 고마운 마음을 연신 건네며 잎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한 날, 한 부부가 내 명이나물 숲으로 걸어왔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고 그의 부인은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1년 남짓 매달 이 숲에 모여 함께 공부해온 인연이었다. 그가 말했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아내의 미술학원이 문을 닫았어요. 아이들을 만날 수도 없고 소득 없이 임대료만 내는 아내가 난감해하고 답답해하고 있던 어느 날, 우리는 문득 ‘여우숲’을 떠올렸어요. ‘숲을 찾는 이들도 없을 텐데, 숲은 그 경영이 또 얼마나 어려울까!’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왔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뵙네요. 작은 제안을 하나 품고 왔어요. ‘여우숲’의 숙박과 강연에 ‘선 결제 후 이용’ 제도를 만들어주세요.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리 결제해두고 나중에 이용하는 거죠. 그러면 숲도 어려운 시기를 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따뜻한 마음을 조용조용 풀어내는 그의 말을 듣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순간 찬란한 봄을 놓치고 짙은 외로움 속에 갇혀 속절없이 얼어가고 있던 내 마음이 이 부부가 낸 따뜻한 마음에 봄눈 녹듯 녹고 있었다. 타자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여겨지는 마음에서 자비(慈悲)가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만은 그 머리의 인식을 몸으로 행하기는 진정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들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당신이 더 어렵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이 부부에게서 나는 그날 붓다를 보았다. 예수도 보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나를 감동시킨 자비의 사례는 또 있었다. 나의 무료 연구원 프로그램인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연구원 제자 한 명은 꽤 큰 금액의 돈을 부쳐왔다. “강연이 정상화될 때까지 삶을 다독이시는 데 쓰시고 천천히 돌려주세요.” 제안에 답을 하지 못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 어려울 때에 제가 어렵지 않아 다행이죠. ‘덜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 곁에 있어라!’ 가르침 주시지 않았나요?” 

사례는 또 있다. 2년 동안 연락 없던 어느 찻집 주인이 함께 밥을 먹자 하여 만난 날, 그녀는 작은 쇼핑백에 직접 구운 빵과 예쁜 봉투 하나를 담아와 건넸다. “3년 전에 가게 열 때 선생님이 무료로 강연을 해주셨죠. 코로나가 와서 요즘 한동안 가게가 어려웠어요. 제가 어려운데 그때 선생님께 사례를 못 한 것이 떠올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받아주세요.”

모두 바이러스로 잃어버린 봄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통해 더욱 찬란히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묵상인 듯 기도인 듯 다시 다짐하게 하는. ‘저도 꽃처럼 사랑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글. 김용규

김용규
숲의 철학자.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충북 괴산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고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대표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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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2020-06-23 21:35:13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