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달린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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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달린 친구들
  • 김재호
  • 승인 2020.06.1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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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야. 너흰 어떠니?"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 데이비드 미치 지음 | 추미란 옮김 | 16,000원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 데이비드 미치 지음 | 추미란 옮김 | 16,000원

제가 사는 자취방에 새 식구가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당시 어미를 잃은, 태어난 지 1~2개월 정도 된 길고양이 남매 다섯 마리가 구조되었고, 소식을 전해 들은 저와 제 룸메이트는 그중 두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입양되었을 때는 이미 젖을 떼고 키튼(Kitten) 사료를 먹을 정도로 컸던, 그래 봐야 키가 팔뚝 정도밖에 안 되던 아이들은 처음 집에 왔을 때 방구석 외진 곳에 숨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녀석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 몸을 숙이기만 해도 ‘하악질’을 해댔으니 당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이제는 퇴근해 계단 오르는 발소리만 듣고도 문 앞에 나란히 앉아 저와 친구를 맞이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함께 지내온 시간 동안 아이들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컸고, 사람 나이로는 20대의 나이가 되었답니다.

 

구조 당시 장수(왼쪽)와 무병(오른쪽)
입양 전 장수(왼쪽)와 무병(오른쪽)

이 녀석들 이전에는 ‘겨울’이란 친구와 함께 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불치의 병을 얻은 겨울이는 하루하루 독한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저와 제 친구의 책상 위에는 병을 얻고 몇 달 되지 않아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겨울이의 사진이 남아 있고, 가끔 지금 같이 사는 두 녀석에게 “너희 형이야.”, “네 오빠야.”라며 인사 시켜 주기도 합니다.
저와 제 룸메는 두 친구에게 ‘무병’, ‘장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 준 건 겨울이에 대한 기억 탓이 큽니다. 그건 미안함이었고, 완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 이 아름다운 존재를 잃게 되어서 나는 지금 화가 난다. 그가 사라져버려서 나는 지금 너무도 외롭고 슬프다. 우리 사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하지만 고통스러운 이 모든 생각들에는 늘 ‘나’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_ 데이비드 미치,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257쪽

하지만 이젠 아프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흘러 마음이 많이 차분해진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그 미안함과 아픔은 ‘나’를 향한 자책의 표현일 뿐, 저에게도 겨울이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그 순간 힘겹게 저와 제 친구를 바라보던 겨울이는 상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바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애써 웃어 보려 했던 그 순간 겨울이가 잠시 그 미소에 편안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더 살아가겠지만 그들은 이제 곧 죽을 것이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 이 시기에 전전긍긍하거나 울기만 한다면 우리 반려동물에게 해롭기만 할 것이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든 모르든 우리가 가능한 한 침착하게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이 반려동물에게는 가장 좋다. 우리 감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반려동물이 좀 더 평화롭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 _ 데이비드 미치,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241쪽

 

한창 뛰어놀던 때의 겨울이
한창 뛰어놀던 때의 겨울이

지금은 겨울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아쉬운 마음보다 더 큽니다. 짧지만 제 삶에 의미 있는 순간을 안겨 주었으니까요. 더욱이 무병이와 장수, 두 친구가 지금껏 큰 병 없이 무사히 지내온 건 모두 겨울이 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겨울이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편안히 골골송을 부르고 있겠지요?

무병이와 장수는 때만 되면 간식을 달라고 목청껏 웁니다. 평소 즐겨 먹는 간식을 하나씩 줄 때마다 ‘이 친구들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할까?’ 생각합니다.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우면 집 어딘가에서 놀다가는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작은 몸을 눕히고 잠들 준비를 하는 녀석들의 따뜻한 체온을 느낍니다. 그럼 ‘이 아이들 편안하구나.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먼훗날 이 친구들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요. 그때 또 마음이 무너지겠지만 지금은 오롯이 이 두 친구와 함께하는 순간임을 명심하려 합니다.
저는 이제 곧 퇴근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모공을 던져주고, 오뎅꼬치와 낚싯대를 역동적으로 흔들 준비를 합니다. 피곤하지만 아이들은 그 시간을 참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동물 친구들이 돌아올까? 돌아온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이미 돌아와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재생 개념은 분명 매력적이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인간과 동물의 재생을 둘러싼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을 알아볼 초능력이 없는 우리는 지금 이미 존재하는 관계들 속에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생에 이미 존재하는 관계들 속에서 서로에게 이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잘 살피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더 적절한 태도일 것이다. _ 데이비드 미치, <나의 반려동물도 나처럼 행복할까>,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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