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삶에서 부처님을 증명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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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삶에서 부처님을 증명하는 과정”
  • 최호승
  • 승인 2020.06.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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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미디어, 10회 ‘붓다 빅 퀘스천’ 개최
원제·정목 스님·이현주 목사의 기도 강연
붓다 빅 퀘스천 열 번째 마당이 6월 1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렸다.
붓다 빅 퀘스천 열 번째 마당이 6월 1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렸다.

사성제, 팔정도 등 법[佛法]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부처님? 아니다. 초전법륜지 녹야원에서 질문을 던진 다섯 비구에서부터다. 깨달음을 발견한 부처님의 달라진 모습에 놀란 비구들이 법을 청하면서부터 전법의 역사가 첫발을 내디뎠다.

그래서 여시아문(如是我問), 이와 같이 물었다. 6월 1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이라는 시공간에 모인 수많은 붓다가 질문을 던졌다. 왜 기도하고 어떻게 기도하며, 기도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엇을 얻나. 불광미디어의 열 번째 ‘붓다 빅 퀘스천’ 주제였다. 김천 수도암 수좌 원제 스님, 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 이현주 목사가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강단에 섰다.

발열 체크와 손 소독,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착석 등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한 강연에는 100명에 가까운 청중이 기꺼이 ‘붓다 빅 퀘스천’에 참석했다. ‘내 삶을 바꾸는 기도의 힘’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

김천 수도암 수좌 원제 스님은 왜 기도하는가를 설명했다.
김천 수도암 수좌 원제 스님은 왜 기도하는가를 설명했다.

시켜서 한 기도에서 의미 발견
원제 스님이 강연의 막을 올렸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불광출판사, 2019)의 저자이기도 한 원제 스님은 ‘왜 기도하는가’를 주제로 기도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설명했다. 남다른 안목과 개성 넘치는 글쓰기와 스피치로 세상과 소통해온 스님은 솔직하고 담백했다. 출가 14년 차 스님의 경험에서 나온 기도의 목적은 순수했고,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지스님이)시켜서 기도했어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궁금증이 강연의 몰입도를 높였다. 선원에서 수행하고자 입산했지만,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겨 기도 소임을 맡았다고 고백했다. 안거가 끝나면 수도암으로 곧장 돌아와 6개월간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했단다. 기도와 수행을 나눠서 생각했던 스님에게 학인스님의 질문은 다른 세계를 열었다. 2008년 동화사 금강선원에서 정진할 때 일이었다.

“기도는 잘 되시나요?” 원제 스님은 의아했다. 화두 붙들고 씨름하는 이에게 기도가 잘 되냐는 물음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여겼다.

“전 기도를 하지 않았어요. 매일 108배 하는 모습에 기도를 묻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선원에서 정진하는 게 기도라고 하더군요. 저는 법당에서 목탁 치는 일이 기도로 알았어요. 선원에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한다든가 목탁 두드리며 중생의 안위를 바란다거나 모두 ‘빈다’라는 기도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수행과 기도가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붓다 빅 퀘스천에 참가한 청중들은 강연 중간중간 메모하며 집중했다.
붓다 빅 퀘스천에 참가한 청중들은 강연 중간중간 메모하며 집중했다.

기도로 욕망을 거래하지 말라
원제 스님은 한 가지 염원에 몰두하는 기도 중 어떤 일이 이뤄지는 현상에 집착하는 점을 경계했다. 기도하다 갑자기 치즈 생각이 났는데, 불단에 치즈가 올라오자 다음부터 목탁 치면서 빵을 떠올렸다는 한 스님의 일화. 원제 스님과 객석은 짧은 웃음으로 기도의 현상에 끄달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겼다.

그리고 선사들의 기도 관련 일화는 스님의 설명에 힘을 실었다. 한밤중에 목이 말랐던 백장 스님이 시자를 불렀지만 깊은 잠에 든 모양인지 인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자가 물을 가져왔다.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알려줬다”는 시자의 말에 백장 스님은 탄식했다. “마음을 들켰구나.”

“욕망은 마음의 흔적입니다. 흔적이 남지 않아야 합니다. 수행은 자신의 욕망을 똑바로 쳐다보고 비워야 합니다. ‘나’라는 분별심, 욕망의 중심인 대상에서 전체의 드러남으로 바뀌는 수행이 바로 기도입니다. 맑은 물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추겠다는 암투병 중인 한 보살의 기도가 그것입니다. 나의 괴로움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비우고 전체를 드러냅니다.”

기도의 바른 방향은 뭘까. 원제 스님은 선배의 말을 빌려 “원력부터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도 4가지 원력을 세웠다. 방일하지 않고 정진해 일념삼매에 들며, 타인에게 자비하고 남의 허물을 보지 않고, 바른 선지식 만나 공부를 성취하며, 쓰임 받는 삶을 살겠다. 사미계를 받은 이후부터 하루 4번씩 반복했단다.

“올바른 기도란 원력의 다짐입니다. 오직 증명 법사는 부처님입니다. 우리의 일은 원력을 드러내고 다짐하는 것이죠. 기도는 욕망의 거래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는 분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은 기도가 아닙니다. 조건을 걸지 말고 단지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는 다짐의 실천은 언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런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내가 내 삶으로 증명하는 게 바로 기도입니다.”
 

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은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은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음소거’하고 내면의 자비와 만남
BTN 불교TV에서 포근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많은 불자에게 삶의 위로와 용기, 지혜를 전해주고 있는 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기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고 궁금한 부분을 짚었다. ‘어떻게 기도하는가.’

정목 스님이 꺼낸 반전은 객석을 순식간에 강연으로 흡입시켰다. 싸울 때 왜 목청을 돋울까. 화가 나서, 기선을 제압하고자, 내가 옳다는 주장을 하려고…. 정답은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다고 생각해서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 높여 싸우는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는 구만리라는 얘기다. 마음이 멀어졌다고 생각해서 악을 쓰면서 자기 소리가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기를 바라지만, 결국 만날 수 없고 더 소리를 지른다는 정목 스님의 설명을 모두가 수긍했다.

“기도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침묵합니다. 나지막한 소리로 구현하는 염원이, 그 목소리가 상대나 자신에게 가 닿도록 하는 방식이 기도입니다. 울부짖으면서 하는 기도도 있지만, 소리 없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과 만나는 기도가 좋습니다.”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한 정목 스님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선수행이나 명상을, 외향적인 사람에게 주력이나 절을 기도의 방식으로 권했다. 특히 감사, 정화, 통렌 등 세 가지 기도를 권했다.

“이것만큼 내 삶을 바꾸는 기도도 없다”고 정목 스님이 설명한 기도는 감사다. 스님은 “감사할 일이 없을 때도 저축하는 게 감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때문에 하는 기도는 감사기도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감사기도는 이유 불문, 무조건이었다.

“이 순간 나라는 한 존재가 있기까지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게 나 한 사람을 위해 존재했고 존재합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피로한 몸을 받아주는 요에게 감사하고, 내 몸이 차갑지 않게 덮어주는 이불이 감사합니다. 저는 이 기도를 20여년 했습니다. 물을 받아준 컵이 고맙습니다. 세상 모두에게 감사해질 때 내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정목 스님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기도의 힘이라고 했다. 기도가 어렵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배려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기도라고 했다. 법당과 교회에 가서 손을 모으고 읊조리는 것만 기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작은 생명 하나 헤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바로 기도의 힘”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당신은 어느 생에 내 어머니
정목 스님은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거나 상황을 판단하고 분별할 때, 주력처럼 할 수 있는 기도도 소개했다. ‘미용고사’다. 풀어쓰면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중요한 점은 상대에게 하는 주술이 아니다. 판단과 분별을 일으킨 자신을 바라보고 하는 주문(?)이자 기도다. ‘미용고사’를 설명하는 정목 스님을 향한 스마트 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정목 스님이 강추하는 기도는 통렌 기도였다. 티베트에서 오래오래 전해 내려오는 기도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기도다. 소위 기도의 끝판왕이었다.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한 아이가 어느 생에선가 내 어머니였을 수 있습니다. 자식의 고통을 모두 대신하려는 어머니처럼 들숨에 세상 모든 아픔을 들이마시고, 날숨에 대자비심을 냅니다. 자비가 세상에 햇빛처럼 퍼지길.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게 자비심입니다.”

정목 스님이 소개하는 기도는 한 가지 마음과 한 가지 기도문으로 압축됐다. 보호가 필요한 이의 보호자가 되고, 길 떠나는 이에게 안내자가 되며, 물을 건너는 이에게 뗏목이 되려는 마음이 기도였다. 그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랬다.

“한 마디 말이 꽃향기가 되고, 한 마디 말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고, 한 마디 말이 지친 사람에게 의자가 되며, 한 마디 말이 상처 입은 이에게 신비한 약이 되고,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어둠을 밝히는 등불 되게 하소서.”
 

이현주 목사는 직접 객석을 오가며 청중과 호흡하면서 강연을 이어갔다.
이현주 목사는 직접 객석을 오가며 청중과 호흡하면서 강연을 이어갔다.

기도, 길 찾는 이에겐 내비게이션
종교 울타리를 넘어 많은 이에게 삶의 도리와 바른 길로 향하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는 이현주 목사가 마지막으로 강단에 섰다. 불광출판사에서 발간한 틱낫한 스님의 책을 여러 권 우리말로 옮기기도 한 이현주 목사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를 강연했다. 매 순간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이현주 목사는 “일단 기도하라”고 했다. 얻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기에. 하지만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했다.

“비유를 들자면 처음 가는 길을 우리는 모릅니다. 보통 도로표지판이 있으면 보고 가죠. 요새는 표지판이 필요 없을만큼 내비게이션이 잘 돼 있어 처음 가늘 길도 겁 없이 잘 갑니다. 그러나 표지판도 없이 몇 가지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 닿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어도 내가 볼 수 없는 시선을 가진 존재에게 묻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길을 알았다면 그 뒤는 뭘까요. 기름이 떨어지면 길을 갈 수 없는데,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지 알았지만 생각대로 안 되고 역부족이고 기운이 없을 때, 주유소에서 기름을 충전합니다. 삶의 방향을 묻고, 힘을 얻는 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관념이 아니다. 논리적인 설명의 영역에 있지 않다. 이현주 목사는 “기도가 얼마나 좋은지 무엇을 얻는지는 경험의 영역이며 해 본 사람만 안다”고 했다. 그리고 붓다 빅 퀘스천 열 번째 마당에 마침표를 찍었다. “기도 하시라.” 

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경전의 첫머리에 붙는 말이다. ‘(나는)이와 같이 들었다.’ 기도를 묻는 질문에 답한 원제 스님과 정목 스님, 이현주 목사의 대답은 ‘붓다 빅 퀘스천’에 자리한 청중들에겐 어떤 여시아문이 될까. 부처님 가르침을 드러내는 삶이 그들에게 위로와 살아가는 힘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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