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나리라, 극락에…전쟁 恨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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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나리라, 극락에…전쟁 恨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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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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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해인사, 6월 7일 수륙대재
한국전쟁 70주년 맞아 해원상생법석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봉행된 한국전쟁 희생자 수륙대재. 트럼펫으로 희생자들을 도량에 모셨다.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봉행된 한국전쟁 희생자 수륙대재. 트럼펫으로 희생자들을 도량에 모셨다.

누군가의 아비였고 어미였고 누나였고 오빠였고 형이자 동생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파란 눈동자와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이방인도 마찬가지였다. 노약자나 아이들은 전쟁의 불길에 휩쓸렸다. 아비와 어미와 누나와 오빠와 형 그리고 동생을 잃고 남겨진 자들은 시체를 부여잡고 울었다. 바다 건너 가족 하나 없는 한반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그마저도 사치였다.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138만여 명이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한국전쟁 희생자 영령들은 국군뿐만이 아니다. 북한군과 중국군, 참전했던 유엔군 그리고 민간인 모두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희생자였다. 70년이 흘렀다. 여전히 아팠다. 영령은 한반도에서 겪은 전쟁의 참상을 잊지 못했다. 해원(解寃), 원통함을 풀어야만 했다. 평화 염원을 담은 팔만대장경의 원력이 오롯한 해인총림 합천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에서 6월 7일 영령들을 천도하는 법석이 열렸다. ‘한국전쟁 70주년, 해원과 상생을 위한 해인사 수륙대재’다.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

희생자 영령들의 업장을 씻기는 관욕 의식.
희생자 영령들의 업장을 씻기는 관욕 의식.

해원 염원 공양받고 원통함 푸시길
수륙대재는 시종일관 엄숙했다. 해원과 상생을 바라는 오색 10만 추모등이 도량 전체를 장엄하며 138만 한국전쟁 희생자 영령의 천도의식을 지켜봤다. 해인사 대적광전 앞 정중탑(庭中塔)에 마련된 오로단(五路壇)에 한국전쟁 희생자 위패가 모셔졌다. 제불보살과 외로운 영혼들이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늘의 다섯 길[五路壇]을 열었다. 관음보살 감로수를 망자들에게 뿌려 누추한 몸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해인총림 전계사 무관, 산중원로 선룡, 해인총림 율주 경성, 팔만대장경연구원장 경암 스님의 관욕 의식은 정성이었다.

해인사 노전 종밀, 원당암 감원 능허, 길상암 감원 광해, 고불암 노전 만봉 스님이 한국전쟁 희생자 영령들을 도량으로 모셨다. 전쟁의 아픔을 소멸하고 해원과 상생으로 나악기 위한 법석임을 알렸다. 제불보살에게도 고했다. 신구의(身口意),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고, 맺힌 한을 풀어주는 진언을 사부대중이 함께했다. 모든 악한 일들을 참회한 희생자 영령들에게 오계를 수계하고, 윤회를 해탈하기 간절히 기원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영령들을 천도하는 법어를 설하고 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영령들을 천도하는 법어를 설하고 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희생자 영령들을 천도하는 법어를 공양했다. 원각 스님은 국민의 해원 염원을 담은 정성스러운 마음을 받아달라고 청했다. 스님은 “국군, 유엔군, 중국군, 북한군, 남북 민간인 위패가 함께하니 원수이건 친구이건 서로에게 걸림이 되지 않고 그 자리는 지위고하 구별이 없으며 동서남북 지역을 나누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온 국민의 해원 염원을 담은 정성스러운 수륙대재 공양을 받으시고 본심으로 돌아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여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을 누리시라” “이 인연으로 남북 동포들과 더불어 세계 사람들이 소통하고 상생하여 발전하며 나아가 세계 평화가 깃들길 축원드린다”고 설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위무했다. 스님은 어둠을 걷어내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많은 전쟁의 희생자를 천도해 새 시대로 나아가자는 불교계 다짐이자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야단법석이라고 수륙대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참전 희생자를 위로하는 지극한 발원으로 영령들을 고통 없는 열반으로 인도하고자 한다”며 “오늘 모두의 무량 공덕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시방 법계에 충만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한국전쟁은 역사의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한 김경수 경상남도 도지사는 “우리 민족이 사상과 이념 때문에 갈라져 서로를 겨누고 국내외 군인과 민간인 등 약 138만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다”며 “깊은 원한과 아픔을 모두 풀고 극락왕생하시길 기원한다”고 두 손을 모았다.

10만 추모등이 해인사 도량을 장엄했고, 한국전쟁을 잊지 말자는 사진전이 진행됐다.
10만 추모등이 해인사 도량을 장엄했고, 한국전쟁을 잊지 말자는 사진전이 진행됐다.

10만 등의 추모글 나부끼며
생활 방역과 거리두기를 준수한 이날 수륙대재에는 주요 내빈을 비롯해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운집했다. 도량 곳곳에는 ‘상흔을 보듬다’를 주제로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전이 진행됐고, 수륙대재를 찾은 대중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수륙대재 하루 전인 6월 6일에는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특히 터키, 프랑스, 콜롬비아, 태국, 네덜란드 등 한국전쟁 참전국 주한대사들이 전쟁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해 관심이 집중됐다.

주한터기대사 에르신 에르친은 “인류가 최고 명예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국극적인 목적은 전쟁 종식과 인간의 고통 해방이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참전용사들은 영원히 안식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프랑스대사 필립 르포르도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고국을 떠나 머나먼 곳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도 있었다”며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존경과 사의를 표하는 한편 한반도의 미래에 화해와 평화가 드리우길 소망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주한네덜란드대사 요안느 도너바르트 역시 “수륙대재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일뿐 아니라 더 나은 세상,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격려가 됐길 바란다”고 했다.

소전. 영령들의 업장도 함께 태웠다.
소전. 영령들의 업장도 함께 태웠다.

소전(燒錢), 위패를 살랐다. 고통스럽던 전쟁의 업장도 태웠다. 영령의 극락왕생 가는 길을 배웅하는 간절한 염원이 가야산 자락을 휘감았다. 염원이었을까, 마침 불어온 바람이었을까. 10만 등과 소원지에 적힌 추모글이 나부꼈다. 극락으로 돌아가길….

“가서 나리, 가서 나리, 극락세계 가서 나리. 아미타 부처님 친견하고 깨달음을 이루소서.”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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